대하소설 「신불산」(590)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3장 늙은 농부의 죽음⑦
대하소설 「신불산」(590)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3장 늙은 농부의 죽음⑦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9.21 06:00
  • 업데이트 2023.09.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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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늙은 농부의 죽음⑦

“아이구, 우리 동장님, 열찬이시인이 오셨네!”

오래전부터 눈에 익은 왼 뺨에 붙은 새까만 점 하나로 친숙하게 다가오는데 열찬씨의 고추친구인 닭서리 잘 하는 경준씨의 삼촌이었다.
 
“아이구, 아재 왔능교?”
 
열찬씨, 백찬씨가 일어서는데
 
“백찬이 니는 넷째 시준이 친구니까 삼촌이라 캐도 둘째 경준이친구인 백찬이는 망인 종찬씨하고 나이차가 얼마 안 되니 마 형님이라 캐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대대로 터를 잡고 사는 농촌마을이 형의 친구가 친구의 삼촌이 되는 경우가 많아 같은 마을에서 살면서 두 살 차이까지는 친구로 지내되 동갑친구의 형이면 단 한살이라도 많으면 반드시 형님이라 부르고 8년을 마디로 해서 8살 이상이 많으면 큰형님이나 삼촌대접을 하고 16세 이상이 많으면 부모대접을 한다는 묵계에 따르면 열두 살이 많은 자신에게 반드시 삼촌으로 불러야하나 종찬씨와 자신이 둘도 없는 고추친구에 망인이 늘 자신에게 자랑하느라 입에 달고 살던 동생이니 삼촌이 아니라 형님으로 부르라는 설명을 했다.

“뭐, 우리 형님이 저를 자랑했다고요? 평생 한 번도 저를 칭찬하거나 잘 한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요.”
 
깜짝 놀라는 열찬씨에게
 
“동생도 자신에게 버거우면 함부로 말을 안 하는 법이란다. 동생 니가 싫어서 그런 기 아이고 너무 장해서 그랬겠지.”
“아인 거 같은데요.”
“아이다. 같이 술만 한 잔 묵으면 자랑이 늘어졌다. 공부 잘 하고 벼슬 잘 하고 글 잘 해서 책 잘 내고 우리 버든바닥에 그런 사람 있는 집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소리 탕탕 쳤다 아이가? 얼매나 기분이 좋았으면 자네 사무관 되었다고 자네 친구들한테 밤새 술을 산 기 송아지 한 마리 값이 다 들어갔다고 동네 소문이 다 났다 아이가?”
“...”
“그건 그렇고 자네 같은 사람이 집안의 수백관(首白官)이 되어 이렇게 턱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보기가 좋노? 그래 장지는 어데로 하고 출상은 몇 시에 한다 카더노? 진장 공동묘지에 자리는 잡았다 카더나?”
 
하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든에 정찬씨가 80이 훨씬 넘어 기동이 어렵고 80이 다 된 언양의 상찬씨도 아내가 중풍을 앓아 치매증세를 보여 한 시도 떠날 수가 없는데 동생이 죽은 악상(惡喪)이라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복만씨 말이 아니더라도 손위 어른인 자신에게 장례절차를 의논해야 하나 평소에 숫기도 말도 없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두 상주도 미망인도 도무지 무슨 말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친구 종찬이는 복이 많아. 이렇게 덩그런 동생의 배웅을 받고 가는데 나는 동생은커녕 장질마저 앞세우고 말았으니 옛날 어른들의 말이 하나도 안 틀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흉이라고 말이야.”
 
하면서 복만씨가 일어서는데 열찬씨보다 세 살이 많은 경준씨의 형인 큰 조카 철준씨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을 슬퍼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직도 살아남았음을 자랑하는지를 모를 묘한 말투였다.
 
문상객이 뜸한 틈을 타 백찬씨를 데리고 빈소로 들어가
 
“순우야, 관우야, 너거는 형님을 우째 모실 작정이고 통 말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열찬씨가 말을 꺼내는데 눈치를 챈 누님 넷과 영순씨도 따라와 비잉 둘러앉았다.
 
“그래 장지는 알아봤나?”
“...”
“하기사 집 앞이 산이고 마을공동묘진데 아무데고 좌향 만 맞으면 되지.”
“그, 그게 아니고...”
 
장남 순우가 더듬거리고 차남 관우의 얼굴이 벌개지는 게 수상해
 
“너거 혹시 화장할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늘공원에서 화장해서 가까운 절이나 납골당에 모시는...”
“...”
 
대답이 없지만 부정을 않으니 긍정인 것 같아
 
“하기사 상주 마음이지 사촌인 내가 무슨 권리가 있나?”
 
은근히 화가 난 열찬씨가 백찬씨를 바라보자
 
“저, 우리 형제가 아직 아무도 장개를 가지 않아 언제 아들을 낳아 대를 잇고 진장을 지킬 지도 모르고...”
 
장남 순우가 약 먹듯이 한 마디를 던지고 방바닥으로 눈을 돌리고
 
“형수는요?”
 
미망인을 쳐다보자
 
“내가 뭐로 아나? 저거 알아서 할 내기지.”
 
상남댁, 명촌댁으로 이어지는 집안며느리들의 말투가 여지없이 이어져오는 것이었다.
 
“그라면 너거들 알아서 해라. 내나 동생이 뭐 특별히 할 일도 없겠네.”
 
빈소를 나와 다시 술상을 차리게 하고
 
“아이구, 형님! 형님과 둘이 늘 음복을 같이 하다가 인자 형님 초상술을 다 묵네. 인자 형님 없으면 누구하고 음복을 할는지 모르겠네.”
 
중얼거리며 돼지수육이에 소주를 마시는데
 
“야야, 니가 오늘 술이 과한 거 아이가?”
 
순찬씨가 걱정스레 바라보더니
 
“하기사 오늘 같은 날 안마시면 언제 마시노? 술꾼들이냐 없는 핑계도 만들어서 마시는 판에. 그라고 보이 죽은 너거 자영 생각이 나네. 구시골 김서방, 명촌 박서방, 종수, 금춘이 체각이랑 사우들이랑 어울려 닭서리 하고 쌀 빼내서 언간이도 마셨다 아니가? 복님이신랑 허서방에 작은님이신랑 김서방에...”
 
골똘히 추억에 잠기는가 싶더니
 
“그라고 보니 그 사람들이 다 죽었네. 쌍수정 김서방이나 살았는가 몰라도.”
 
하는데 얼굴이 새까만 복님씨와 같은 마을 박수택씨에게 시집가서 인도엄마가 된 평촌댁이 기출씨가 들어오며
 
“오나?”
“왔나?”
 
상가 측 딸들과 모처럼 만의 해후를 하고 손을 잡더니 진장만디의 술꾼콤비로 소문난 허서방네 복님씨와 이미 전주가 있었는지 빈소를 보고 나오자말자
 
“열찬이 니는 출세를 했다고 이 누부야가 눈에 비지도 않나?”
 
복님씨가 눈이 게슴츠레해 시비조로 나오는 지라
 
“누부야, 내가 와 연산동 2공구에 누부야 집에 가서 고물고물 기는 아아들 하고 보리쌀 전배기로 삶아서 밥 묵던 일을 모리겠노? 누님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정구 형은 히도 한 번 못 펴보고 고생하다 죽어뿌고...”
 
연산동시절을 회상하며 살갑게 대하자
 
“그래. 오랜만에 니캉 내캉 한 잔 하자.”
 
하고 주고받고 동갑내기 순찬씨와 귀남씨도 이야기가 늘어지고 귀가 쫑긋한 귀찬씨, 금찬씨도 끼어드는데
 
“허서방 자영이 그래 쉽게 갈 줄 몰랐네. 큰엄마 산소에 벌초를 가면 옆에 있는 자영한테도 꼭 술을 한잔 붓고 오는데 언제 처남 왔나 말도 한 번 없더라.”
“그래. 고맙다.”
 
어느 듯 밤 열 시가 넘어 관우와 사귀는 처녀와 회사손님들까지 문상객이 모두 떠나고 본가 식구들만 남았다. 영순씨가
 
“당신은 내일 출근을 안 해도 되능교?”
 
하는 말에
 
“일단 출근은 해야지. 출상 때 다시 오든지.”
“그러면 우리는 일어섭시다.”
 
눈치 빠른 영순씨가 화장을 하게 되어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일어서자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귀찬씨 쪽을 보며 눈을 찡끗 하는지라
 
“서울 누부는 어데서 잘 끼고?”
“언양서 자고 야들은 내일 올라가고 나는 온 김에 삼우까지 보고 갈 끼다.”
하면서 가방 속에 봉투하나를 꺼내 주면서
“누부야, 얼마 안 된다. 서울 가면서 밥이나 묵어라.”
“뭐 하러 이런 걸 다 주노? 내 돈 있다.”
“아이다. 내 휴가 때 자형도 없을 때 천 원짜리 하나 주던 거를 생각하면 이건 돈도 아이다.”
“그 말은 와 또 하노?”
 
눈시울이 붉어진 귀찬씨에게
 
“집사람은 아마 출상 때 올 끼고 나는 사무실 사정 봐서 오든지 하께.”
 
하자
 
“우리도 마 갔다가 출상 때 오자!”
 
금찬씨, 덕찬씨도 일어서고 귀찬씨 가족과 순찬씨는 상찬씨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시 한 편을 구상해 부산에 도착하자 말자 기어이 컴퓨터로 작성하고 자리에 들었다.
 
輓歌
- 이종찬 4촌 형님을 보내며
 
수더분한 얼굴에 평소에 말수 적고
시원찮은 월급 치곤 주말에도 노상 바빠
벌초도 묘사도 심심찮게 불참하던
당질(堂姪) 한 놈 안보여서 속절없이 허전한
영안실의 밤 열한시 향불연기 가라 앉는
영정 속 4촌 형님 술에 째린 붉은 얼굴
때 절은 반소매 위로 순한 미소 여전한데
성급히 털어 넣던 평생반려 됫병소주
드디어 끊었는지 이제 잔도 비지 않는
혼백은 방에 머물까 벌써 멀리 떠났을까?
 
주름살투성이의 허리 굽은 노파들이
40년 전 시집올 때 앞집아재 떠올리며
죽은 자 사진보다도 더 찌그러진 노인네와
이제는 내외도 없어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 평생 골병뿐인 가난한 농부의 삶
비디오로 돌리다가 되감아서 또 돌리며
슬픈 기억 하나씩을 보석으로 재생하며
이제 앞들두렁 누구랑 참을 먹고
시나브로 털털대던 오토바이 새워놓던
진장만디 지나갈 때 허전해서 어찌 할꼬?
 
그 많은 소와 돼지 누가 사료, 여물 주고
송아지 낳을 때는 누가 받아 낼지 몰라
호랑이 제 말 하면 벼락같이 온다는데
저승서 묘를 심나, 비육우 뿔을 자르나
그 급한 불뚝성질의 형님은 왜 말이 없나?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