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5)】 접시생각 - 김미숙
【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5)】 접시생각 - 김미숙
  • 조승래 조승래
  • 승인 2023.09.22 07:25
  • 업데이트 2023.09.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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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생각

                               김 미 숙

 

 

식탁 위를 가만히 본다
잔은 깨지고 홀로 남은 받침 접시
버리기는 아깝고 쓸 데는 없다

- 화려한 디자인 비싼 안료와 금빛으로 채색된
순수 영국산 본차이나 -

바다 건너 파란 눈의 도공이
땀범벅 만든 아름다운 너를
도대체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사람보다 명함이 더 화려해야 보이는 세상
머릿속 생각보다 번드레한 치장이 더 눈부신
이승에서 나는 잠시 흔들린다

저 많은 사람 속에서
과연 어떤 접시가 되어 누구를 떠받들고 살지

- 『시와 소금』, 2020년 가을호

 

시인의 눈은 식탁 위에서 홀로 남은 영국산 본차이나 접시를 보면서 한 때 예쁜 잔과 세트로 무척 잘 어울리었는데 이가 빠진 잔을 버렸고 남은 존재의 용도에 대해 접근한다. 용도 폐기한 것 하나, 용도 개발해야 할 것 하나에 시상이 접근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땀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 고급 다기의 생명은 끝난 것인가, 아닐 것이다.

마치 후견인처럼 앞날을 살펴 주겠다는 마음에서 버리지는 않고 가치를 높일 방법을 궁리한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명함을 먼저 보고 내면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입고 있는 의상으로 평가하는 세상사를 지적하며 잠시 갈등을 하게 된다. “이승에서 나는 잠시 흔들린다.” 그게 다 이승에서의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남보다는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을 보지만 나를 낮추어서 남을 높여주고 남을 떠받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접시에 빗대어 시인은 말한다. 과연 어떤 접시로 남의 아픈 가슴을 받쳐주고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어떤 접시가 되어 누구를 떠받들고 살지” 화두를 던진다.

어디에서든 쓰임이 있어야 함을 설파하며, 시와 교육, 음악 등 여러 영역에서 왕성하게 사회지도자로 활동하는 김미숙 시인의 겸손한 마음이 아름답다.

그 접시를 언제나 받들고 있는 식탁도 이 세상의 퍼즐로 아름다운 것처럼.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chosr51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