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4년 9월 1일 아침, 최후의 암컷 여행비둘기가 신시내티 동물원의 새장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비둘기 한 마리의 사망이었지만, 종(種) 전체의 사망이기도 했다.
여행비둘기(passenger pigeon)는 육상 조류 중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었다. 한때는 개체 수가 50억 마리에 달했다. 이동을 시작하면 해를 가려 사방이 어두워졌고, 그렇게 며칠 동안 창공을 뒤덮었다. 한번 머무른 곳은 초토화되었다. 거대한 나무가 부러지고, 땅은 배설물로 가득 찼다.
개척 시대 미국인은 여행비둘기의 고기를 좋아했다. 기름진 가슴살이 맛있었고, 게다가 잡기도 쉬웠다. 새 반 공기 반이어서 하늘에 대고 산탄총을 쏘면 여러 마리가 후두두 떨어졌다. 허공에 그물을 치면 수백 마리의 여행비둘기가 잡혔다. 곳곳으로 팔려나갔는데,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활어처럼 산 채로 거래되었다.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1870년대부터 개체 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여행비둘기는 점점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인간이 있는 곳을 피하기 시작했다.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뒤늦게 사냥을 금지하고, 보존대책을 세웠지만 이미 늦었다. 1900년, 한 소년이 비비탄 총으로 야생 여행비둘기를 잡은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이후 몇몇 동물원이나 동물학자의 새장에 남아 있던 녀석이 차례로 죽어가면서 종 전체가 멸종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이 부른 대표적인 멸종 사례로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최근까지 여행비둘기의 멸종은 인간의 탓으로 여겨졌다. 수많은 여행비둘기들이 사냥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아니, 아무리 사냥을 많이 했더라도 50억 마리가 죄다 멸종하는 것이 가능한가?”
2017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은 여행비둘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41개와 핵 유전자 2개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근연종(近緣種)과 비교해보았다. 여행비둘기의 유전적 다양성은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 이 뜻은 오랜 과거에는 여행비둘기의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뒷받침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여행비둘기를 비교적 최근에 먹기 시작했다. 예부터 여행비둘기가 많았고, 그 고기를 먹었다면 여행비둘기와 관련된 식문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 새와 관련한 다양한 관습과 언어, 이야기가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비둘기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동물에 비해 빈약했다. 왜 그럴까?
특정한 유전자가 확실한 선택적 이득을 가지는 경우, 소위 ‘선택적 일소’(selective sweep)가 일어난다. 해당 유전자가 동일종의 모든 개체로 널리 퍼지고 ‘연관불균형’에 의해서 그 주변에 있던 유전자도 어부지리로 널리 퍼진다. 이를 ‘유전적 히치하이킹’이라고 한다.
좀 어렵지만 ‘연관불균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 유전자에 있는 많은 변이는 근처의 다른 변이들과 ‘엮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집단유전학에서는 ‘연관불균형’을 이루는 변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세 변이가 연관불균형을 이룬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A 변이를 지니고 있으면 B와 C도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동시에 A 변이가 어떤 질병 발생 위험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면, B와 C도 자연스럽게 그 질병과 연관된 것으로 나온다.
연관불균형으로 인근 유전자가 번성하는 것과는 반대로, 불리한 유전자가 제거되면서 인근 유전자가 도매금으로 같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를 ‘배경선택’(backgrond selection)이라고 한다.
이 배경선택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줄이는 과정 중의 하나인데, 자연선택이 불리한 변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곧, 배경선택이란 불리한(생물체의 적응성을 감소시키는) 유전자 변이가 생기면, 이 변이를 포함한 개체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는데, 그 과정에서 인근 유전자도 함께 제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근 유전자는 히치하이킹으로 번성하며 기분 좋게 달리다가, 배경 선택에 의해 그 히치하이킹한 차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멸절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행비둘기는 오랜 세월 비슷한 환경에서 무리 지어 살아왔다. 그러면서 연관불균형과 배경선택으로 인해 혈통적 연관도가 점점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 크지 않던 균일한 개체군이 특정한 호조건을 만나 갑자기 수만 배의 크기로 불어난 것이다.
여행비둘기는 다른 새보다 우월한 ‘영장조’(靈長鳥)도 아니고, 궁극적인 진화의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진화가 최대로 이루어진 지점)도 아니다. 너무 높은 수준의 유전적 동일성은 일종의 유전적 병목 현상을 만들었고, 환경은 갑자기 늘어난 개체수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숫자는 많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모조리 죽을 수밖에 없었다.
구석기 말, 전 세계 인구는 약 400만 명에 불과했다. 가장 적을 때는 수천 명에 불과한 때도 있었다. 유전적 병목을 겪으면서 인류의 유전자는 비슷비슷해졌다. 그러나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 수는 무려 약 79억에 이른다. 이렇게 수가 폭증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전 지구적 한랭기였던 영거 드라이아스기(현재로부터 약 12,900년에서 11,700년 전)가 끝난 후 5000년 동안 인구는 불과 100만 명 늘어났다. 사실 인류는 오랫동안 지구 생태계의 말석에 겨우 명함을 내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약 200년 전에 10억 명을 넘었다. 그리고 100년 전에는 20억 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2020년 호모 사피엔스의 숫자는 전성기 시절의 여행비둘기보다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을 다 합치면 500억 명이다. 그런데 그 중 14퍼센트가 현재 생존한 인간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걸 인류가 우월한 덕분이라면서 터무니없는 착각까지 하고 있다. 19세기 초반, 오만한 여행비둘기가 이렇게 외치는 꼴이다. “우리가 바로 지구의 지배자다!”
인류가 곧 멸종할 수도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면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다. 어딜 가도 사람이 득실거리지 않는가! 하지만 갑작스럽게 성공했다면 갑작스럽게 실패할 수도 있다. 진화의 시간에서 보면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이 상석에 오른 것은 겨우 몇 분 전일 뿐이다.

인류의 유전자가 서로 아주 비슷하다는 과학적 사실은 인종차별론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훌륭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팩트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는 흔히 동일한 질병에 걸리고, 동일한 이유로 죽는다.
물론 인류의 미래는 인간 종의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생각하는 힘’이 인류가 여행비둘기의 운명을 극복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능력이 전쟁이나 기후 변화, 핵전쟁과 인공지능의 남용 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생각하는 힘이 희망일 수도 있으나, 인류 절멸의 방아쇠도 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이 특별히 예외적, 우월한 존재가 아니며, 생장도 절멸도 지극히 자연스런 일임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글은 박한선(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의 『인간의 자리』에 크게 힘입었음을 밝힙니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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