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9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4장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⑥
대하소설 「신불산」(59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4장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9.28 06:05
  • 업데이트 2023.09.27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⑥
다음 우리가 아까 1,2등급대상 한 건씩을 심사하는데 약 30분씩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러다간 밤을 새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일주일이나 그 이상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매 조사표와 진단서에 해당되는 의사, 약사, 물리치료사, 심리치료사 등의 전문가의견을 듣되 특별히 이상하거나 심각한 하자가 없으면 다른 위원들은 이의를 말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전공부분에 대한 검토의견을 낼 때도 건별로 시시콜콜 할 것이 아니라 맨 처음 한 건에 대비해 특별한 상이점만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능률적인 심사를 하느냐는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하니 대충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자, 그럼 1등급 두 번째 건입니다. 본 건은 정신신경과 의사선생님이 설명해주시지요.”

해서 설명을 듣고
 
“제 생각엔 심사의 키포인트가 우선 의식이 있느냐, 또 남의 말을 알아듣느냐, 치매가 있긴 하지만 가끔 정신이 돌아오느냐, 그 다음엔 스스로 일어서고 숟가락질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느냐가 보다 중요한 심사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좌중을 둘러보고
 
“자, 그런 시각으로 보아 아까 의사선생님의 설명과 주관부서의 의견을 들어 1등급으로 지정을 하는데 이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몇 몇의 동의와 암묵적 수긍으로
“자, 그럼 본건은 1등급으로 지정합니다.”
 
결정을 하고
 
“다음 건은 재활의학과 선생님 의견제시해주시죠.”
 
해서 의견을 듣고
 
“물리치료사의 입장에서는 어때요?”
“요양보호사의 입장에서는 이의가 없습니까?”
 
물어서 불과 한 5분 만에 한 건이 통과되었다. 이렇게 1등급 54건을 처리했다. 두 건은 2등급으로 하향 조정되고 나머지는 원안통과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여섯 시 퇴근시간이 가까웠다. 오후 2시에 시작해서 네 시간이나 걸린 것이었다. 게다가 2등급 80건, 3등급 65건 아직 145건이나 남아 있는 것이었다. 심사장에 들른 한정길 지사장이
“위원장님, 시간이 늦은데 저녁이나 시켜먹고 하는 것이...”
 
하며 말끝을 흐리는데 순간 심사위원들의 표정들이 모두 뜨악한지라
 
“조금 더 봐서. 일단 제가 한 번 밀어붙여보지요.”
 
하고는
 
“효율적인 심사를 위해 우선 5분간 휴식을 하겠습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도 한 잔씩 하고 5분 후에 모입니다.”
 
하고 자신도 바깥공기를 쐬고 온 후
 
“이제 2등급의 심사를 시작합니다. 심사건수도 가장 많은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담당 의사선생님이나 해당 심사위원들이 일일이 병세나 치유여부를 설명하지 말고 조사표의 기록상 이상여부만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2등급 두 번 째 건. 정신신경과선생님, 조사표상 이상 없습니까?”
“없습니다.”
“물리치료사 의견은?”
“이상 없습니다.”
“그럼 통과! 다음 세 번 째 건. 재활의학과선생님 이상 없습니까?”
“이상 없습니다.”
“통과!”
 
이렇게 2,3분에 한 건씩 수월하게 진도가 나가는데
 
“위원장님, 이 건은 제가 실제로 현장에 나가봐서 아는데 재산사항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가족사항도 조손가정이라 도저히 집에서는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가정형편상 약간의 가중치를 주어 1등급으로 시설수용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경 계장이 간곡한 어조로 말하는지라
 
“예. 그러니까 우리 위원님들의 휴머니즘이 발휘될 시점이군요. 장애등급보다는 약간 높게 1등급으로 지정해 시설에 수용하고 두 손자들은 소년가장으로 구청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무 이의가 없이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라
 
“자, 그럼 간사이신 박 부장님의 주최 측 의견은?”
“예. 여러 위원님들이 이의가 없으니 위원장님이 결정해주셔야죠.”
“알았어요. 자 본건은 가중치를 주어 1등급으로 상향조정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
“이의 없으면 통과합니다!”
 
이렇게 속도를 내어 여덟 시경에 2등급의 심사를 마치자
 
“자, 나머지는 3등급입니다. 3등급은 어차피 시설수용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경미한 장애인인 만큼 심사를 좀 단순화하겠습니다. 지금부터 10분간 여러분들이 각자 명단을 죽 살펴 이상이 있어 보이는 사람의 조사내용을 재검토 한 후 나중에 전체위원의 이상 유무를 물어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하고 자연스레 화장실과 커피와 휴식을 겸하게 하고 10분 뒤
 
“자, 3등급 첫 번째 건입니다. 이의 있는 분?”
“...
“이의 없으면 통과합니다! 다음 건?‘
 
이렇게 진행하니 두건 정도만 간단한 이의가 있고 천편일률적으로 통과 되어 40분 만에 종결이 되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의사, 약사, 간호사에 하다 못 해 가정주부인 심사위원들이 모두 황황히 떠나고 눈치를 보던 이미경계장도 한정길위원장과 담소중인 열찬씨에게
 
“국장님!”
 
같이 갈 건지 아니면 자기만 먼저 가도 되는지 자동차 키를 흔들어 보이는데
 
“계장님, 먼저 가십시오. 위원장님은 오늘 제가 모십니다. 모처럼 언양국민학교 동창회를 가집니다. 단 두 명의 동창회.”
 
하더니 박부장과 셋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이거.”
 
열찬씨가 심사수당이 든 봉투를 박 과장에게 내밀었다. 아주 오래전 동사무소의 투표구간사를 하면 지역유지투표구위원장이 늘 위원수당을 고생하는 실무자들에게 돌려주던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점잖은 위원장이 되어 위원수당을 실무자에게 던져주겠다고 생각했던 그 위원장을 평생 처음 해본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위원장님 수고하셨는데 다만 교통비라도.”
 
박 부장도 받지 않고 한정길지사장도
 
“선배님, 그러면 제가 뭐가 됩니까? 불러다 실컷 고생만 시키고. 박 부장! 절대로 받으면 안 됩니다.”
 
하는지라
 
“그럼 다음 심사 때 내가 저녁을 내지요. 다음 심사 때는 위원들께도 미리 만찬을 한다고 알리고 식당도 예약하세요.”
 
하고 불고기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지사장님, 지금까지 심사를 마친 구중에서 우리구가 가장 빨리 끝난 최단시간소요사롑니다. 위원장님 밀어붙이는 카리스마에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권위도 똘똘 뭉친 의사, 약사가 아무 말 없이 따르는 것을 보고요.”
“이 사람아, 보면 모르나 이 부산바닥에서 소수정예라 카면 어디까지나 언양국민학교 동창들이지. 허령부산시지사장에 우리 국장님에 또 한 모 서구지사장에...”
“지당한 말씀입니다.”
 
둘이 죽이 척척 맞는데
 
“부끄럽구로 와 이라노? 내가 저녁 값 내란 말이제?”
 
“아, 아닙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열찬씨도 결코 싫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와 한정길 지사장이
 
“박 부장, 노래방 예약했나?”
“예. 아주 미희들까지.”
 
한정길 이사장이 옆구리를 끼며
 
“자, 선배님. 고생하셨는데 긴장 좀 풀고 가시죠?”
 
하는데
 
“어이, 후배님. 이기 뭐꼬? 꼭 총무과장 때 내가 구청장 눈치 보며 기관장들 모시던 꼴 아이가?”
“예. 맞습니다. 그 때 머리가 허령 선배님이 남의 눈치 보며 굽실거리는 것이 후배 된 입장에서 하도 기가 차서 말입니다.”
“뭐로 이 사람아. 먹고살자면 누구나 하는 일이지.”
“아니지요. 그래도 언양바닥에서 알아주는 선배에 시인인데 말입니다.”
“씰데없는 소리!”
“아입니더. 오늘은 형님이 구청장이고 왕입니더. 함부로 소리 지르고 마음대로 해도 됩니더. 어서 가입시더.”
“...”
 
재래시장 살리기의 일환으로 주차장을 정비하고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대규모공사를 마친 동대신동 골목시장의 준공식 날이었다. 하필이면 구청장은 예기치 않았던 구청장, 군수협의회가 있었고 부구청장은 또 다른 일이 있어 부득이 주민복지국장인 열찬씨가 참석하여 구청장을 대신하여 축사를 하도록 변경이 되었다.
 
늘 호의적인 서규수부구청장이 열찬씨에게 서기관국장이 되어 처음으로 구청장을 대리하여 참석하는 대외행사인 만큼 가분을 한번 내어보라고 국장용의 승합차가 아닌 부구청장용의 검은 승용차와 기사까지 내어주는 바람에 그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 자신이 대독할 축사를 읽어보다 그는 묘한 감흥에 빠졌다. 바로 전형적인 재래시장인 언양장터에서 고춧가루와 무배추의 씨앗과 미꾸라지를 팔던 어머니와 신평 큰누님, 콩나물을 길러 팔던 큰엄마, 장터에서 시골아주머니가 이고 오는 수탉을 뺏다시피 흥정하는 키 큰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이어 조그만 지게를 받쳐놓고 김장배추의 시래기를 줍고 있는 조그만 소년, 바로 자신의 유년시절이 떠오른 것이었다.
 
 
마침내 행사장에 도착해 식순에 따라 경과보고와 상가번영회장의 대회사가 끝나고 구청장축사순서가 되자 사회자의 소개를 받은 단상에 섰다.
 
제가 구청장을 대신해 참석한 이열찬 국장인데 이 좋은 자리에 우리 구청장님이 직접참석하지 못 하고 제가 와서 대단히 아쉽고 송구스럽다, 구청장을 대신해서 제가 이 새롭게 단장한 시장과 여러분의 그동안의 노고에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원고를 읽어가던 그는 갑자기 발칙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읽던 원고를 덮고 잠시 숨을 고르고는 분위기를 바꾸었다.
 
여러분, 저도 사실은 언양장날 고춧가루와 무, 배추씨앗과 미꾸라지를 팔던 어머니와 닭장수를 하던 아버지의 아들로 자라난 장돌뱅이소년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서구청의 국장이 되어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축사를 하게 된 것도 사실은 우리 어머니가 장날마다 열심히 고춧가루를 팔아서 공부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5일 장날이 올 때마다 우리 어머니와 누님들과 제가 그 좁고 더운 디딜방앗간에서 그 매운 고춧가루를 빻느라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운을 떼자 갑자기 분위기가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지더니 장내의 모든 시선이 뚫어질 듯 열찬씨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처음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과 시장골목을 지냐면 저는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쭈그리고 앉은 우리 어머니가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무덤덤해졌고 어쩌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주는 일원짜리 한 장으로 사과나 눈깔사탕을 사먹는 것이 너무 좋았고 장사가 잘 되어 술이 얼근히 취한 아버지가 물이 조금 갔지만 양이 많은 갈치나 가자미나 삼마라고 불리는 꽁치를 넉넉히 사와 온 가족이 모처럼 생선찌게를 실컷 먹는 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어쩌다 어머니가 사오시던 강냉이박상도 좋았지요.
 
언젠가 한번은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빨간 5원짜리 지폐를 주셨는데 너무나 기분이 좋아 이마에 붙이고 다니다 그만 바람에 날려가 잃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울던 저는 지금도 그 빨간 5원짜리를 생각하면 너무나 아깝고 원통해서 속절없이 눈물이 날 지경이랍니다.-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코를 훌쩍이는 사람도 있었다. 슬며시 사방을 둘러보는 열찬씨의 눈가에 이슬이 촉촉해지더니 잠시 뜸을 들여 조금 추스르고는
 
여러분은 상인(商人)이라는 말의 상(商)자가 어디서 왔으며 무슨 말인지 그 정확한 뜻을 아십니까?
 
뭔가를 사고파는 장사라는 뜻의 이 상자는 남의 뜻을 헤아려 서로의 이해와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 있어 난상(爛商)토론이라는 말이 생겼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찮고 값싼 물건이라도 그걸 사고파는 일은 두 사람의 입장과 이익이 맞아떨어져야 된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사란 자기의 입장만 강조해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는 막장토론과는 반대가 되지요. 그러니까 장사 즉 협상이라는 말도 일방적인 이익추구의 설득과 반대가 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이 개념이 되지요.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