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07) 거미줄, 장동빈
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07) 거미줄, 장동빈
  • 손현숙 손현숙
  • 승인 2023.11.11 11:44
  • 업데이트 2023.11.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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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장동빈

 

집을 지었습니다

인생을 한 올 한 올
줄을 그어 방을 만들고
하늘을 지붕 삼아
울타리를 쌓지 않아
바람이 지나고
비가 방울방울 불을 밝히는
그런 누구나의 집을

지나던 구름도 들여다 보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아
언제든 떠나도 미련이 남지 않을

이곳저곳 마음을 기대며
기둥을 세우고
마음속으로 점점 작아지며
균형있게 시간을 메워
누군가엔 치명적이고
누군가에는 휴식이 될
집을 지었습니다

장동빈 시인

 

장동빈 시인

장동빈의 시집 「시간현상소」을 읽었다. ‘문화발전소’ 2023.


포식자의 자세로 먹이를 구하는 거미를 본 적이 있다. 아슬한 이 한 장면이 고독해 보였다면 당신은 이미 늙은 사람. 먹이를 구해야 하는 숭고, 그러나 쓸쓸한 사람. 위의 시에서 화자는 거미줄에서 시간을 차용해 온다. “아무것도 들이지 않아/언제든 떠나도 미련이 남지 않을”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일갈한다. 시인은 저 투명하고 아름다운 집 속에 마음을 기대 보겠지만, 그것 또한 누군가에겐 휴식 또 누군가에게는 치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짓는 시인의 속내는 사람과 사람 사이 울타리를 치워버리고 싶은 염원이다.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sonhyunsu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