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백서’를 ‘전두환 회고록’ 쓰듯 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백서’를 ‘전두환 회고록’ 쓰듯 해서는 안 된다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7.04.17 18:53
  • 업데이트 2017.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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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백서’를 ‘전두환 회고록’ 쓰듯 해서는 안 된다

사고 3년 만에 인양돼 목포신항 철재부두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5·18 광주민주화운동단체인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전두환 씨가 최근 낸 회고록에서 ‘자신은 씻김굿의 제물이었다’는 데 대해 “살인마가 희생자라고 절규하는 희대의 망발”이라고 비난하고 ‘전두환 회고록’ 판매 중단을 촉구했다.

(사)오월어머니집 회원들도 이날 오후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은 회고록 판매를 즉시 중단하고 광주학살과 역사왜곡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회원들은 또 “정부는 5ㆍ18에 대한 공식보고서를 작성하고 5·18을 폄훼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 광주에서의 무차별 학살에 대한 책임자는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지 3년이 지난 2017년 4월 16일. 세월호는 인양돼 목포신항에 거치돼 미수습자 등에 대한 본격 수색 작업을 앞두고 있다. 세월호정부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박근혜 정부의 끊임없는 방해공작으로 지난해 11월에 사무실을 철거하고, 종합보고서 대신 중간점검보고서만 내놓고 활동을 접어야 했다. 침몰 원인을 포함한 진상 규명은 미제로 남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선체조사위)가 지난 11일 가동돼 침몰 원인 규명에 주력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선체조사위의 활동 기간은 최대 10개월. 아직은 실질적인 조직과 예산·시행령 등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체조사위는 특조위에 부여되지 않았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졌다니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런 와중에 정부 차원의 ‘세월호 백서’가 올 연말 발간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 백서는 세월호 인양업체 선정 절차·인양 과정·선체 조사 과정 등에 관한 내용만 싣고, 정작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고 원인과 책임자 처벌 등의 내용은 뺀다고 한다. 해수부 측은 사고 원인 등은 해수부가 밝힐 수 없는 부분이라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선체 인양 과정만을 ‘백서’라는 이름으로 발간하겠다는 발상에 기가 찬다. 백서란 사고 원인과 대응체제의 문제점을 샅샅이 밝혀 교훈으로 삼기 위해 발간하는 게 아니던가? 엄중한 국가적 재난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회피와 무신경 그리고 기록 정신 부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조사, 기록과 관련해 일본의 최근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2011년 3·11 후쿠시마원전 참사 발생 1~2년 후 일본에서는 민간, 도쿄전력, 국회, 정부가 각각 주체가 된 조사위원회가 잇달아 꾸려져 4개의 보고서가 나왔다. 주체가 다른 4개의 조사위가 각기 나름의 관점으로 조사해 보고서를 만든 것이다.

이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이 2012년 2월의 민간 사고조사위원회 보고서다. ‘일반재단법인 일본재건 이니셔티브’가 만든 것으로 6명의 위원과 30명의 전문 인력이 300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해 400쪽으로 정리했다. 이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사고를 인재로 규정했다. 그러나 조사 경비의 출처를 밝히지 않아 신뢰성에 의문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오히려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다음은 그해 6월 나온 것이 도쿄전력의 보고서이다. 현장 상황에 밝은 당사자의 원인 규명에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모든 것이 예상 외의 쓰나미 때문이며, 도쿄전력은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무책임한 자기변명으로 일관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세 번째는 그해 7월 상순 나온 국회 보고서로 국정조사권을 바탕으로 10명의 위원과 관련 전문 인력이 15억 엔(약 15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모두 1000여 명을 인터뷰해 640쪽으로 정리했다. 국회보고서는 사고를 ‘인재’로 규정했고, 최대의 원인은 원자력안전보안원 및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규제기관이 전력회사의 포로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주원인을 쓰나미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손상의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았다. 국회조사위는 또 총리와 내각이 현장 지휘명령계통의 혼란을 초래한 점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같은 달 하순에 정부 보고서가 나왔다. 10명의 위원과 약 40명의 전문 인력이 4억 엔(약 40억 원)의 예산으로 80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사고의 배경으로 안전문화의 결여를 들었으나 원인 규명엔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쿄전력의 초기대응의 부적절, 정부의 피난 지시나 정보발신의 혼선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2013년 1월 일본과학기술저널리스트회의는 ‘4가지 원전사고조사위원회를 비교·검증한다’는 책자를 내놓으며 이 4개 보고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고의 원인이 지진인지 쓰나미인지 직접적인 원인이 불명확하다 △노심용융의 진상을 알 수 없고 발표의 혼선에 대한 실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고대응 컨트롤 타워의 미숙에 대한 책임 추궁이 미흡하다 △원전마피아의 온존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이 없다 △주민에 대한 피난정보 전달 지체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 △방사선 피폭정보에 대한 오해와 혼란 발생에 대한 원인과 분석이 보고서마다 제 각각이다.

작은 교통사고나 공장 화재사고에서도 형사책임이 따르는데, 엄청난 원전 참사에 어느 한사람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진다.

세월호 조사가 형식적이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보고서가 무책임한 변명일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선체 인양에 이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세월호의 진실을 끌어내는 일이다. 이제부터 새로운 진실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더는 ‘전두환 회고록’같은 것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말이다.


<yb5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