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슈마허(왼쪽)와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헨리 데이빗 소로(가운데),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치.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인 조너선 포리트(Jonathon Porritt, 1950~)가『작은 것이 아름답다』추천사에서 슈마허를 현대 환경운동사에서 최초의 ‘전일주의적 사상가(holistic thinker)’라고 평가했다. 슈마허가 여러 ‘전일주의적 사상가’의 정신을 내재화했다는 사실은 그의 저작 곳곳에서 드러난다.
슈마허는 인간과 과학기술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빨리, 보다 많이’라는 대량생산, 물량주의를 신봉하는 거대기술이 아니라 간디가 제창한 ‘대중에 의한 생산’을 신봉하는 민주적 기술, 적정기술을 제안했다고 본다. 조너선 포리트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슈마허의 저작을 읽다보면 그의 사상적 계보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미국 철학자이자 시인, 수필가인 소로는 숲에서의 삶을 기록한『월든(Walden)』(1854)에서처럼 물욕과 인습에 젖은 국가․사회에 항거해서 자연과 삶의 진실에 뿌리내린 성스러운 실험적 삶을 살았다.
부유한 집안에다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였던 그가 졸업과 동시에 산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2년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파격’이다. 그가 문명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란 아주 간단했다. ‘인생을 나의 의지대로 살아보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에 직면해 보기 위해서’였다. 소로는 숲 속의 생활에서 문명을 버린 인간의 생활에 대해 들려준다. 자기가 기거할 집을 손수 짓는 일부터 시작해 나무를 잘라 목재로 다듬고, 주위의 허름한 집에서 나온 자재들을 재활용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시장에서 구입한다. 집이 완성되고 그가 기거하는 동안, 사람과 멀어졌지만 그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가장 애착이 가는 벗은 월든 호수였다. 그가 월든 호수로 자주 산책을 나갔기에 숲속엔 길이 나고, 지금도 그 길이 남아있다. 소로는 일상화된 산책 중에 숲속의 친구들과 대화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고요한 가운데 책을 읽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당대의 인간들 속에서 비켜나 가난하고 누추하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자연 속에서 나름의 삶을 설계했다. 그 뒤 『월든』은 미국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간디다. 간디의 무소유 철학은 『월든』에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고 하겠다. 빠르고 세련되고 풍요로운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인간은 달려왔지만 그 자체가 행복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삶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대안 찾기에 고심했을 터이다. 이러한 간디의 무소유 사상이 바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한사람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스콧 니어링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반전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로 대학 교수직에서 해고된 뒤 부인 헬렌 니어링(Helen Niearing, 1904-1995)과 함께 메인주의 버몬트 숲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평생 집필과 자립적인 농경생활을 했고, 100살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함으로써 ‘조화로운 삶’ ‘소박한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는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in the Good Life)』(1997), 부부 공저의『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2000), 『스콧 니어링 자서전』(2000) 등이 잇달아 번역 출판되면서 생태주의 삶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밀레니엄을 맞는 2000년 전후에 나와 아내도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삶을 동경했다. 그래서 부산 근교의 시골집을 찾아 다녀봤지만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삶은 경쟁적인 자본주의 도시생활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급자족의 생태주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대안경제학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슈마허의 글에도 그에 대한 공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슈마허는『굿 워크(Good Work)』에서 ‘미래에 자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며 ‘비록 규모가 작고 스콧 니어링 같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뭔가를 해볼 수 있으며, 효과가 있을 경우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스콧 니어링의 삶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내 생각에 슈마허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와도 깊은 정신적 교감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나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피신했는데 슈마허도 나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통적인 삶의 역정을 가졌다.
일리치는 195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도 교황청이 아닌 미국 뉴욕 빈민가의 보좌신부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대학교의 부총장이 됐고, 1966년 멕시코에 대안학문공동체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해 당시 전 세계가 숭배하던 ‘개발’ 이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 찾기에 주력했으며, 1969년에는 교회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일리치는 슈마허의『작은 것이 아름답다』보다 2년 앞선 1971년에『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를 발표했고, 그 뒤『공생을 위한 도구(Tools for Conviviality)』(1973),『의학의 한계(Medical Nemesis)』(1975) 등을 통해 특히 학교, 교통, 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뿌리에 있는 도구적인 권력, 전문가 권력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 그는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자립과 자율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현대 산업문명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슈마허와 마찬가지로 신랄하게 제기했다. 적어도 이 두 사람은 당시 서점에서 서로의 저서를 사서 읽어보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슈마허인가? 왜 나는 슈마허를 다시 읽는가? 독일 태생의 영국경제학자인 슈마허는 무엇보다 경제학자로서 GNP 또는 GDP로 나타내는 기존의 국민소득과 성장률에 기반한 경제지상주의의 허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슈마허는 “경제학이라는 것이 국민소득이나 성장률 같은 추상개념을 넘을 수 없다면, 그리고 빈곤, 소외, 사회질서의 와해, 정신적 죽음과 같은 현실의 모습을 다룰 수 없다면 그러한 경제학은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는 없는가?”라고 물었다.
1970년대 슈마허가 제기한 이 물음은 오늘날 경제성장지상주의와 세계화, 양극화로 치닫는 세계 경제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그의 경제학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도 이미 슈마허가 간디에 이어 ‘영속성(Permanence)’이란 개념을 통해 강조했다. 주류경제학에 대놓고 ‘경제학의 존재이유’를 묻고, 인간의 모습을 한 경제를 강조한 학자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인물로 슈마허 같은 사람을 꼽기가 쉽지 않다. 슈마허는 통계학자, 경제학자, 공무원, 기업가, 언론인, 작가, 사상가로 두루 넓게 삶을 살았다. 슈마허는 실제로 영국 토양협회 고문을 거쳐 스코트바더사(Scott Bader)에서 경영진으로 참여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해서도 괄목한 성과를 보였다. 종업원지주제와 종신고용제 또는 사내임금격차 해소 등 오늘날에도 시도하기 어려운 진보적인 경영실험을 했고, 모두 성공했다.
100년에 가까운 기업의 역사를 가진 스코드바더사가 지금도 ‘소규모’로 글로벌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울 뿐이다. 요즘같이 공룡이 돼버린 대기업과 재벌 총수들의 윤리경영․지속가능경영의식이 극히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슈마허의 ‘작은 기업’ ‘착한 기업’의 실천은 오늘날 기업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1974년 독일에 등장한 ‘검은 것이 아름답다’ 광고 포스터, 세실 앤드류스의 『Slow is Beautiful』 표지, 생태주의 삶을 산 스콧 니어링 부부의 『Good Life』 표지. 출처: 위키피디아
슈마허는 1973년『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향후 오일쇼크와 세계화를 예고하고, 원전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했다. 그 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은 흑인인권운동을 상징하는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와 패스트푸드에 반대하고 슬로푸드를 중시하는 ‘느린 것이 아름답다(Slow is Beautiful)’와 더불어 ‘아름답다’ 시리즈를 낳을 정도로 한마디 말이 주는 사회적 파급력이 강력했다. 슈마허를 읽다보니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 선생이 떠오른다. 원주의 한살림운동을 주도하면서 생명사상을 실천한 분으로 특히 호를 무위당과 함께 ‘좁쌀 한 알’이라는 뜻의 ‘일속자(一粟子)’를 썼던 분이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가장 가까운 분으로 와닿는다.
『환경과 생명』 편집주간 장성익은 2005년『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대해 “더 빠른 성장과 더 커다란 경제와 더 많은 소유에 대한 맹신이 종교적 확신에 이른 듯한 오늘날, 이 책은 경제와 행복에 대한 획일화된 주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숭배하는 대다수 현대인의 뒤통수를 내려치는 통렬한 죽비소리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슈마허 사후에 생긴 다양한 ‘슈마허 서클’의 존재는 슈마허의 사상이 단지 이상만이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슈마허가 제시한 대안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상에 머물고 있는 것도 많지만, 확인되고 검증된 또한 많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진정 슈마허를 다시 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왜 슈마허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인생후반전을 시작하는 마당에서 우리시대의 좌표를 새롭게 보고, 내 삶의 대안을 찾기 위한 나침반으로서, 우리시대, 우리 삶의 멘토로 슈마허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yb5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