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7 가을의 노래 - 대봉감 다는 날

이득수 승인 2021.10.18 00:36 | 최종 수정 2021.10.18 00:47 의견 0
사진 왼쪽은 싱싱한 대봉감, 오른쪽은 이미 홍시가 된 놈, 가운데는 갈퀴에 낫을 매단 채취기구.
왼쪽은 싱싱한 대봉감, 오른쪽은 이미 홍시가 된 놈, 가운데는 갈퀴에 낫을 매단 채취기구.

집주변에는 부모는 늙고 자식들은 떠나버려 묵어버린 논밭이 많고 그런 밭둑에는 의례히 감나무나 엉개나무가 같이 버려지기도 합니다.

추석이 지난 뒤부터 산책길 옆에는 그런 주인 없거나 있어도 딸 엄두를 못 내는 감나무에서 빨갛게 홍시가 익어가기 시작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이에 태풍에 가지째 부러지기도 하지만 일찍 홍시가 되어 떨어지거나 까막까치나 직박구리가 부리로 여기저기 쪼아 먹은 감들이 흔히 눈에 띱니다.

이사 온지 5년 차,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어느새 자동관리자가 되다시피 한 제가 큰맘 먹고 대봉감을 따러 가서 한 40, 50개 따 무겁게 들고 왔습니다.

이제 아내가 크고 싱싱한 놈들을 골라 창고에 저장해 겨울에서 봄까지 익는 족족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장 때 팔순의 장모님이 오시면 무엇보다 좋은 군입거리가 되겠지요. 이만하면 산골노인이 겨울준비가 넉넉한 셈입니다.

대봉감과 누른디호박

위 사진은 함부로 옮기면 썩어버리는 누른디호박과 함께 안방의 탁자에 늘어놓은 대봉감홍시들. 당뇨가 있어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아침마다 가장 잘 익은 놈 하나씩을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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