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21)】 집사람 - 윤범모

조승래 승인 2024.01.11 09:34 | 최종 수정 2024.01.11 11:58 의견 0

집사람

윤범모

백년해로하다 상처하고
먼 길을 돌아온 노인
그에게 위로와 함께 향후 거처를 질문했다

글쎄, 아내가 없으니 마땅히 돌아갈 집도 없구료
그동안 아내가 살고 있던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우리 집이 없어졌어요
자기 부인을 왜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지
마누라 잃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구료

집사람 잃은 노인
집까지 잃다

- 『시와 소금』, 2021년 봄호

윤범모 시인의 시를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로 선정한 이유는 세간의 초관심사인 주택문제를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 점과 허무감에다 아쉬움으로 시의 마지막 연에서 울림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아내를 안해라고 한다. 집 안에 있는 햇님 같다는 말이다. 햇살은 빛을 비추어 어둠을 밝혀주고 따스하게 해 주고 그래서 만물이 때 맞춰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생을 함께 하고자 ‘백년해로 하다가 세상을 먼저 떠나보내고 ’먼 길을 돌아 온‘ 노인에게 ’위로와 함께 향후 거처를‘ 물어 보았다.

대답은 ‘글쎄,’다. 희로애락을 같이 한 ‘아내가 없으니’ 아내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닌 것 같아서 ‘마땅히 돌아갈 집도 없구료’라고 했다. 집을 두 사람 공동의 개념으로 ‘그동안 아내가 살고 있던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된 것이고 비바람 막아주던 따스한 두 사람의 공간 속에 둘이 아니라서 ‘우리’는 추억만 남기고 사라졌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돌아갈 집도 없다고 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집을 가득 채우던 한 사람의 존재감이 그리 크다. 외출하고 귀가하면 반겨주던 사람이 없으니 ‘자기 부인을 왜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지 마누라 잃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적막함을 토로한다.

‘집사람 잃은 노인’은 상실감에 주저앉고 싶은데 ‘집까지 잃다’로 압축 표현한 시인은 노인의 절망을 대신 표현했다. 백년해로 해도 함께 떠나는 일은 드물고 부부 중 한 사람은 더 늦게 가게 되고 더러는 우리 집을 떠나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뒷방에 홀로 있는 연세 드신 분을 뒷방 늙은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따스한 눈길 많이 보내도록 해야겠다.

민달팽이가 홀로 찾아가는 그늘, 그 얼마나 멀고도 깊겠는가,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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