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는 상대성이론을 대중에 알린 기념비적 영화다. 이 영화는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토대로 제작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은 이 영화의 각본을 쓰기 위해 물리학자 킵 손 교수에게서 4년간 상대성이론을 공부했을 정도. 특히 블랙홀의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술논문 2편이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물리적 개념을 형상화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인터스텔라’는 ‘블랙홀 이론을 모두 녹여낸 완벽한 영화’, ‘상대성이론 교과서’라는 평을 듣는다.
블랙홀은 그 이름처럼 신비로운 개념이다. 블랙홀은 상대성이론으로부터 도출됐는데, 정작 상대성이론을 창안한 아인슈타인은 블랙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을 정도다. 그 사연을 짤막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블랙홀, 슈바르츠쉴트가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발견한 '마술의 구(magic sphere)'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명의 천체물리학자로부터 편지(논문)를 받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정작 자신도 풀지 못했던 방정식의 깔끔한 풀이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논문의 결론이었다. 강한 중력을 가진 어떤 별에서는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래서 그 별은 암흑처럼 검게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혁명적인 예언을 한 아인슈타인도 이 주장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무명의 천체물리학자는 독일의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쉴트(Karl Schwarzchild)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참호 속에서 중력장방정식을 풀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낸 후 1년 만에, 답장을 받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슈바르츠쉴트는 별의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별 주위에 ‘마술의 구(사건의 지평선 event horizon)'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부근에서는 시공간이 엄청나게 휘어져 있고, 마술의 원 속으로 빠지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마술의 구 안은 들여다볼 수 없는 그야말로 어둠의 심연이라고 밖에 상상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53년 뒤인 1969년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가 마술의 원을 ‘블랙홀’이라고 명명했다. 단순히 ‘검은 구멍’이라는 뜻을 넘어 ‘실체를 알 수 없는 의혹의 심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어 1971년 블랙홀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나 그 실체는 아직도 신비에 싸여 있다.
블랙홀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휠러의 절묘한 작명 덕분이다. 킵 손의 스승인 존 휠러, 마술의 구를 '블랙홀'로 명명 거장인 휠러는 ‘시인을 위한 물리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난해한 현대물리학의 개념을 쉽고도 함축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덕이다. ‘웜홀’ ‘다중우주’란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도 그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조나단 놀란에게 상대성이론을 가르친 킵 손 교수의 스승이 바로 휠러다.
휠러는 형이상학적인 심오한 질문을 간결한 문구로 던진 사람으로 유명하다. 우주의 근원이 비트(정보의 기본단위)라는 통찰로부터 ‘비트에서 존재로?’라는 물음은 한 예다. 휠러는 2008년 9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소립자에서부터 블랙홀과 온 우주를 무대로 한 사유의 여정을 마치고 비트로 돌아간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안했는데, ‘시간과 공간 개념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이런 찬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일반상대성이론 수립에 착수했다. 그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특히 그는 중력장을 기술할 수학을 찾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특수상대론조차 이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이라고 친구에게 말했을 정도.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했을 때 그의 육체는 완전히 탈진했으나 정신은 환희에 휩싸였다. 중력이론인 일반상대론의 결정체인 중력장 방정식 논문이 발표되자 일부 눈 밝은 물리학자는 그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즉각 알아보았다. 독일의 막스 보른은 “한 편의 예술작품 같다. 자연에 대한 인간 사고의 위대한 향연이며, 철학적 통찰과 물리적 직관, 그리고 수학적 기교의 놀라운 결합”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1915년 11월의 일이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이 시간의 개념을 새롭게 바꿨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 개념의 혁명을 일으켰다. 즉, 특수상대성이론은 가속도와 중력이 없는, 특수한 물리적 환경에서만 성립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가속도와 중력이 존재하는 곳에서도 성립하도록 ‘일반화’시킨 이론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일반상대성이론, "자연에 대한 인간 사고의 위대한 향연"
일반상대성이론은 간단히 중력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어져 있고, 이 공간을 지나는 빛은 자연이 휜다고 예언한다. 중력장 방정식을 풀면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놀라운 예언은 영국 에딩턴 경이 일식 때 빛의 경로를 관측함으로써 사실로 증명됐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에서 도출된 물리개념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블랙홀이다. 당시 과학적 상식으로 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슈바르츠쉴트가 예언한 지 55년 후인 1971년 미국 NASA의 X선 천문위성이 천체 백조좌 근처에서 엄청난 중력으로 다른 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발견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리 우주의 운명도 예견한다. 중력장 방정식을 풀면 밀도에 따라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거나, 팽창하다가 다시 수축하거나, 아니면 무한히 팽창하여 평평해진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우주가 정적이고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주는 태초에 한 점에서 폭발해 시작되었다는 빅뱅 우주론은 우주론의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오늘날 우주론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 특히 물리학 개념이 대중의 대화 소재가 되는 일은 드물다.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황우석의 줄기세포는 사건에, 우주로켓 나로호는 이벤트에 매몰됐다. 사람들은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목록에 과학은 넣지 않는다. 반면 정치, 경제 분야에는 평론가, 학자 뺨치는 수준이다.
위기라는 인문학은 그나마 최근 부흥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문학 강좌는 질을 따질 정도가 된 반면 과학 강좌는 아직 얘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지식의 양극화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양극화는 사회통합을 해치고 사회 갈등의 요인이 된다. 빈부 격차 같은 경제적 양극화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간의 벽이 엄존한다. 빈부·계층·이념 간 갈등에 이어 또 다른 ‘두 문화(이공계·인문사회계)’ 간의 갈등 요인이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는 셈이다.
두 문화(이과와 문과) 간의 소통 징검다리 '인터스텔라'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갈등의 요인을 미리 해소해야 한다. 여기에는 소통이 기본 처방이다. 소통은 대화에서 출발하고 대화를 하려면 공통의 화제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인터스텔라’의 의미는 엄청나다. 비프팝콤에서 확인했듯이 ‘인터스텔라’는 우리 사회 ‘두 문화’ 간의 소통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블로그의 ‘인터스텔라의 물리학적 분석’ 기사 아래 이런 댓글이 눈에 띄었다. ‘문과라서 모르겠다’. 단언컨대 이공계 출신도 극소수 전공자를 제외하면 상대성이론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인터스텔라의 열기는 식었지만 그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한 상대성이론에 대한 호기심을 문과 출신이라고 해서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다. 100년 전에 탄생한 그 이론이 ‘자연에 대한 인간 사고의 위대한 향연’이라지 않는가.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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