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슈퍼맨과 빛의 달리기 경주
장(field)이라는 새로운 물리적 개념에 기반한 맥스웰의 전자기장 이론은 뉴턴역학과 충돌을 빚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뉴턴역학으로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뉴턴역학을 우주의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였던 당시 물리학자들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뉴턴역학에 익숙한 물리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린 핵심은 전자기파(빛)의 속도였습니다. 빛의 속도 문제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를 말합니다. ‘일정하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어떤 기준계에서 보더라도 그렇다는 뜻입니다.
‘진공 중에서의 빛의 속도 c는 일정하다.’ 이것은 오늘날 초등학교 학생들도 알고 있는 ‘빛의 전파법칙(the law of propagation of light)’입니다. 흔히 ‘광속불변의 법칙’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아마 물리학 책에 나오는 법칙 가운데 가장 간단한 법칙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어떻게 물리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뉴턴역학과의 충돌을 야기했다는 것일까요? 그 이유와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빛의 속도는 누가 보더라도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아본 뒤 그것이 뉴턴역학의 어떤 기준에서 미스터리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이 공식화된 것은 1864년 발표된 ‘맥스웰 방정식’에 의해서입니다. 맥스웰 방정식에 의하면 빛의 속도는 상수(c)로 표시됩니다. 상수라는 것은 일정하다는 뜻입니다. 계산해보니 빛의 속도 c=30만km/s(정확하게는 299 792 458m/s)였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잘 아는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이 속도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일까요? 맥스웰 방정식은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기준 없이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깐깐하기로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황당해한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누구보다 그 기준에 대해 깊이 고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16세 때 품었던 ‘빛과 함께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라는 유명한 상상을 통해 맥스웰 방정식에서 빛의 속도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의미를 심각하게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처음엔 자신이 충분히 빨리 달리기만 하면 빛을 따라잡을 수도 있고, 빛과 나란히 달리면서 보면 빛은 ‘파동 사진’처럼 보일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취리히 공대에서 맥스웰 방정식을 배우고 난 후에 아인슈타인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맥스웰 방정식의 해(풀이) 가운데 ‘정지한 빛(파동)’이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때부터 ‘빛은 뭔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속도의 기준이 없음’이 빛은 우리의 상태에 관계없이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진행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이 청소년 시절 상상과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빛의 속도' 정체에 한발짝 다가갔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빛과 슈퍼맨의 경주’를 소개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베른의 시계탑 앞에서 빛과 슈퍼맨의 달리기 경주를 시켰습니다. 달까지 10번 왕복하는 경주입니다. 결과는 물론 빛의 승리였습니다. 경주를 주관한 아인슈타인은 풀이 죽어 돌아온 슈퍼맨의 등을 두드리며 “조금만 속도를 더 냈으면 빛을 따라잡을 수 있겠던데”하며 격려를 해줍니다. 그러자 슈퍼맨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는 빛의 상대가 아예 되지 못해요. 아무리 속도를 내봐도 빛은 그만큼 더 멀찍이 달아나버리던 걸요.”
아인슈타인과 슈퍼맨은 한 사건을 다르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볼 때 빛은 초속 30만km로 달렸고, 슈퍼맨은 초속 29만km의 속도로 빛을 추격했습니다. 속도의 차이는 초속 1만km이므로 슈퍼맨이 좀 더 분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다고 아인슈타인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정작 슈퍼맨의 얘기는 달랐습니다. 슈퍼맨은 초속 29만km로 빛을 뒤쫓았는데 빛이 자신보다 초속 1만km 더 빠른 속도로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지해 있을 때와 꼭 같은 초속 30만km의 속도로 달려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도를 초속 29만9900km로 거의 빛과 같은 수준으로 높였는데도 빛은 역시 자신보다 초속 30만km나 더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리더라는 것입니다.
빛의 이 같은 성질은 아인슈타인과 슈퍼맨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틀림없습니다. 여태까지 지켜본 세상의 모든 속도 경쟁 상황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빛은 가만히 있는 아인슈타인에게나 초속 29만km 속도로 달리는 슈퍼맨에게나 여전히 초속 30만km라는 ‘일정한 속도’로 달려간다는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맥스웰 방정식에서 빛의 속도가 아무런 기준 없이 상수(초속 30만km)로 제시된 것은 이처럼 빛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관계없이 일정한 속도를 갖는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통찰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를 주목한 것은 맥스웰 방정식이라는 이론적 사실을 통해서뿐만 아닙니다. 그는 빛의 속도는 관찰자나 광원의 상태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실험들도 주목했던 것입니다.
그즈음 네덜란드 천문학자 빌렘 데 시테르(Willem de Sitter)가 이중성(double stars)을 관측한 결과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시테르는 빛의 속도가 그 빛을 방출하는 물체의 운동속도와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주 공간에서 빛은 일정한 속도로 진행하며 이 속도는 광원의 운동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주목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실험적 사실은 그 유명한 마이컬슨-몰리 실험(Michelson-Morley Experiment)이었습니다. 이것은 빛의 매질, 에테르(ether)를 찾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실험이 실패하면서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빛의 속도가 관측자나 광원의 상태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명제가 당연하게 느껴진다면 여러분은 이미 현대물리학에 익숙한 분입니다. 19세기 말 당시 이 명제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물리학자에게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같은 '빛의 속도' 정체성이 뉴턴역학의 토대가 된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principle of relativity)'를 위배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상황은 다음 편에...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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