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아인슈타인의 과학 방법론
아인슈타인은 귀납과 연역적 방법을 조화롭게 사용한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상 그 어떤 과학자보다 물리학과 철학에 깊은 지식과 통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현상과 실험 결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뛰어난 물리적 직관과 철학적 통찰을 발휘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수립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특수상대성이론에 적용된 방법론과 일반상대성이론에서의 방법론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이후 통일장이론을 향해 매진할 때 추구한 방법론은 이전과 또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의 과학 방법론은 시기별로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 창안에 적용된 1단계는 경험론적이고 실증주의적 방법이 강조되었으며, 2단계는 일반상대성이론 수립에서 나타난 실험사실을 토대로 하되 물리적 직관으로 이론의 핵심을 통찰한 ‘아인슈타인의 가설적 방법’이며, 그 이후 3단계는 수학적 방법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 단계 - 실증주의 마흐의 영향
근대 과학 방법론은 가설(공준, 공리)과 논증 그리고 실험 등 3단계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갈릴레이가 정립했습니다. 즉, 자연의 일반적인 특성으로부터 이론의 기초이자 출발점이 되는 원리를 채택하고, 이를 연역적 방법으로 확장해 이론 체계를 세우고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실험을 통해 가설이 옳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뉴턴의 과학 방법론도 기본적으로 이와 같습니다. 그는 이론물리학의 체계인 ‘프린키피아’에서 “자연철학에서는 특수한 명제가 현상으로부터 추론되고 이것은 귀납을 통해 일반화된다. 현상으로부터 연역되지 않은 모든 것은 가설이다. 가설은 자연철학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뉴턴은 체계의 기본 개념과 법칙이 경험에서 유도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I frame no hypotheses, 라틴어 Hypotheses non fingo).”라고 선언했습니다. 뉴턴은 자연 현상과 경험에서 유도된 세 개의 운동법칙을 공리로 내세워 역학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여기서 뉴턴이 언급한 '가설'은 현상과 상관없는 관념과 직관에 의한 데카르트식 가설을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뉴턴 자신은 자연현상에서나 실험적으로도 확인될 수 없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가정함으로써 후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경험주의)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뉴턴의 이 방법은 ‘가설 연역적 방법’으로 불립니다. 논리적 연역의 출발점이 되는 개념이 가정(가설)으로 설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설정된 가정에서 올바른 논리적 연역을 통해 도달한 결론들이 감각 경험과 일치한다면 이러한 가정도 올바르게 설정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최초로 구축된 완결된 이론물리학 체계입니다.
19세기에 이를 체계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 과학사가인 마흐(Ernst Mach)입니다. 그는 이론물리학자들은 실험적인 방법을 통해 정확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어떠한 개념도 물리학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경험적 세계와 관련이 없는 개념은 물리학 이론에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마흐는 이런 관점에서 ‘가설’인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개념을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같은 마흐의 견해는 새로운 물리학의 발전을 견인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마흐의 철학에 경도되었습니다. 그는 우선 ‘가설적인’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비판한 마흐의 시각에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물리학은 철저히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실증주의적 자세를 받아들였습니다. 실증주의자들은 우리가 측정 같은 직접적인 작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물리적 실체는 우리 머릿속의 환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의 경험적 작업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새롭게 분석하면서 사용한 방법은 바로 마흐가 주장한 그대로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인슈타인은 ‘공간은 자 scale로 재는 것’이며, ‘시간은 시계로 재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정의했습니다. 측정에 직접 호소하는 이들 정의는 공간과 시간 개념에 드리워진 오랜 철학적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안하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물리학과 전자기학이 충돌하는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전자기파)의 전파법칙과 고전물리학의 토대인 상대성 원리(엄밀하게는 고전물리학의 속도합산 정리)가 외견상 양립하지 않는 것은 기존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문제가 있다고 간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분석, 실증적 분석을 시도해 딜레마를 풀었습니다. 이것은 마흐의 실증주의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양립 불가능해 보였던 빛의 전파법칙과 상대성의 원리를 이론의 출발점이자 기초가 되는 공준으로 채택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빛과 상대성의 원리에 대한 실험적인 사실들을 충분히 신뢰했던 것입니다. 당시 광속이 광원과 관측자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실험 사실이 많이 나온 상태였습니다. 절대 진리로 여겨졌던 고전물리학적 관점에서의 상식보다 이 같은 객관적인 실험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또 상대성의 원리도 물리적인 타당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신뢰했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실증론적인 분석을 통해 물리학계가 봉착한 딜레마를 해결했으며, 실험 사실에 근거해 서로 충돌하는 양쪽(빛의 전파법칙과 상대성의 원리)을 이론의 기본 토대로 삼았으며, 이를 수학적으로 연역해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 단계 - 직관적 도약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뒤 일반상대성이론을 수립하는 기간에 실증주의의 한계를 확신하고 이를 포기했습니다. 확실히 그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창안할 때의 과학 방법론은 특수상대성이론 때와는 크게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일반화를 추진하면서 1907년 ‘생애 최고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자유낙하 하는 사람은 몸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은 직관으로 중력과 가속도가 물리적으로 동등하다는 등가원리를 통찰한 것입니다.
이것은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물리적으로 등가라는 말인데, 이미 갈릴레이와 뉴턴에 의해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등가원리를 통찰한 것은 실험 사실에서 귀납적으로 추론한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 ‘도약’한 것입니다. 즉, 영감에 의한 직관으로 가설(등가원리)을 얻었는데, 그 물리적 타당성을 과거 갈릴레이와 뉴턴의 이론 그리고 실험사실로부터 확인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데카르트처럼 순수한 사유의 산물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반적인 특성에 바탕을 둔 ‘물리적 직관’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등가원리에서 또다시 직관적 도약을 통해 ‘중력이 곧 기하’라는 사실을 통찰합니다. 중력이 곧 기하라는 사실은 당시 물리학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실험으로 확인하거나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이전에 이 같은 개념적인 비약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에 기초한 사고실험을 통해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사실을 추론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빛이 휘는 것은 공간의 만곡 때문이며, 따라서 중력은 곧 공간의 만곡(기하)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두 차례의 직관적 도약을 통해 통찰한 것은 곧 일반상대성이론의 물리적 핵심입니다. 직관적 도약에 의해 창안한 등가 원리와 중력이 곧 기하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이론 체계를 세우고 특정한 결과(빛의 휨 현상 등)를 유도했으며, 이들은 모두 실험적으로 확인됐다. 결국 직관에 의한 가설적 원리와 개념이 옳았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 같은 방법은 ‘아인슈타인의 가설적 방법’으로 불립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인 철학자 모리스 솔로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과학 방법을 설명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직관을 통해 경험과 실험에서 직접 유도되지 않는 절대가정으로 비약합니다. 절대가정은 이론의 시발점과 기초가 되는 기본원리(공준)입니다. 절대가정이 경험을 초월하고 있으므로 경험으로부터 절대가설을 도출해 낼 수 없습니다. 단지 영감에 의한 직관만이 이 가설을 창안해 낼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창안해 내기 위해서는 단지 기록된 현상의 수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기에는 언제나 대상의 핵심을 찌르는 인간 마음의 자유로운 발상이 부가되어야 한다.”라고 한 말은 바로 그 뜻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과학 방법론을 여러 번 피력했습니다. 그는 이론과학 연구에서는 이론의 시발점이 될 보편적인 기본원리(공준, 가설)의 발견이 핵심임을 강조했습니다. 기본원리야말로 일반이론에 이르는 핵심적인 통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실험 사실의 종합뿐 아니라 영감에 의한 직관적 도약이 필요하다고 아인슈타인은 강조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18년 막스 플랑크의 생일 파티에서 행한 ‘연구의 원리들’이란 제목의 연설에서 원리 발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리학자의 최상의 임무는 순수한 연역에 의해 세계상을 구축하기 위한 시발점이 될 보편적인 기본법칙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에 도달하는 논리적인 경로란 없습니다. 단지 경험에 동조하는 직관만이 그것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 연설에서 ‘경험에 동조하는 직관’이란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직관이나 영감이라고 해서 실험사실과 동떨어진 관념에 그쳐서는 의미가 없으며, 또한 이것은 숱한 경험과 실험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1914년 프로이센 과학아케데미 개회 연설에서도 자신의 상대성이론의 방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론물리학자의 방법은 결론을 연역할 수 있는 일반적인 가정, 즉 원리를 기초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론물리학자의 작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그 원리를 찾아내고, 그 다음에 이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이 임무 중 두 번째 것을 위해 이론물리학자는 학교에서 훌륭한 무장을 갖춥니다. 그러므로 지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부지런히 노력하기만 하면 확실히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임무의 첫 번째 것, 즉 연역의 출발점이 될 원리를 확립하는 일은 전적으로 다른 본성을 갖습니다. 여기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배워서 확실히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과학자는 경험적 사실의 집합에서 정확한 공식화가 가능한 어떤 일반적인 특성을 인식함으로써 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연역의 토대가 될 원리가 발견되지 않는 한 개별적인 경험적 사실은 이론물리 학자에게 쓸모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는 경험에서 추출된 개별적인 법칙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연역적 추론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원리가 자신에게 드러날 때까지 그는 경험적 연구로부터 얻어진 개별적 결과들 앞에서 무력할 것입니다.*
*아이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홍수원·구자현 옮김, 중심, 2003. 264p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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