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상대성이론이란?
일반상대성이론은 물리적 직관과 수학적 기교 그리고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불세출의 이론이 탄생하게 된 데는 아인슈타인의 남다른 물리적 직관과 철학적 통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상대성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의미와 이 이론이 드러내는 우주관, 그리고 이것이 인류의 세계관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물질(에너지)이 우주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짓는다고 간단명료하게 선언합니다. 뉴턴은 물질과 시간, 공간을 독립적인 물리적 실체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이 세 가지 물리적 실체가 결코 독립적이지 않음을 밝힙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은 긴밀히 연결돼 있는 시공간(space-time)의 형태로 존재할 뿐 아니라 한결같은 속도로 흐르는 절대시간과 절대 부동의 절대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이 같은 본성을 갖는 시공간의 형태는 물질의 분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에너지와 물질도 더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E=mc²). 상대성이론이 20세기 초 세계에 던진 이 같은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과 공간 개념의 혁명
아인슈타인은 1921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여행하는 곳곳에서 기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했습니다. ‘상대성이론이 뭐냐'고 한 기자의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물질적인 모든 것이 우주에서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이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과 함께 시간과 공간도 사라집니다."1)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두 범주가 서로 깊이 연관돼 있고 물질과도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물질의 존재형식일 뿐이라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객관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감각경험이라는 관점에서 공간 개념이 발전해온 과정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체들의 존재를 직접 경험하며, 이들은 공간적으로 격리되어 공간적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로부터 공간의 개념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바라보면 공간은 고체와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드러납니다."2)
인류가 탄생하고 인류의 경험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수십억 년 전에도 공간으로서의 자연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시간과 공간이 인간 사유의 주관적 형태라는 관념론적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를 입증해줍니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인식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절대적인 의미를 박탈했으며 서로를 별개의 고립된 것으로 보는 관점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이 상호 연계돼 있을 뿐 아니라 물질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들(시간 공간 물질)을 각각 별개로 본다면 그들은 상대적인 위치에 있지만 시간-공간-물질이라는 연계개념으로 보면 절대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에서는 이들 개념 하나하나가 객관적인 속성을 상실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또 관찰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그들의 실재성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과적인 절대성, 즉 영향을 주기만 할 뿐 무엇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 성질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뉴턴이 당시에 알려진 법칙들을 정식화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에 대해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성질입니다.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개념 부여
상대성이론의 가장 큰 철학적 물리적 의미는 종전의 물질 개념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일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은 장(field)이라는 개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은 물질(물체)의 운동을 다루는 것이었고, 그 물질은 입자적인 성격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성격인 장의 출현은 물리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 장을 물질의 범주(물리적 실체, physical reality)로 보았습니다. 물리적 실체의 범주를 확대한 것입니다.
장이 물질이라면, 그것은 특유의 속성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장도 곧 물질이며, 그렇다면 장도 물질처럼 속성을 갖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아인슈타인의 물리적·철학적 통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전자기파의 일종인 빛도 물리적 실체의 하나로 보았고, 광속불변의 원리도 바로 빛이라는 물질의 속성으로 파악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실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전자기장은 그러한 물리적 실체의 하나이며, 따라서 전자기장은 물질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성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물리적 실재에 대한 믿음이 곧 새로운 이론을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가는, 푸앵카레가 물리적 대상에 대한 관념론적 철학을 견지하는 바람에 상대성이론의 문턱까지 먼저 도달했으면서도 최후의 일보를 내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의 새로운 존재형태 즉 장을 발견한 것이 물리학 발전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새로운 실재, 새로운 개념, 즉 역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기술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 나타났습니다. 갖은 논쟁 끝에 장의 개념은 서서히 물리학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현재 가장 기본적인 물리 개념들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질의 개념과 관련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유도된 에너지-질량 등가 식은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즉, 에너지와 질량은 상호 변화한다는 것으로 고전역학의 에너지보존법칙과 질량보존법칙은 에너지보존법칙으로 통합됩니다. 그 이전까지 물리적·철학적으로 에너지와 질량으로 구분되어 있던 이원론은 상대성이론에 의해 폐기된 것입니다.
인과론적 결정론과 역동적인 우주
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의 인과론적 결정론을 계승합니다. 고전역학이 내포하고 있는 심오한 철학, 즉 ‘어떤 물체의 현재 상태를 알면 과거와 미래의 상태까지 알 수 있다’는 인과론적 결정론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대성이론에서는 고전역학에서와 달리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이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을 따름입니다.
상대성이론은 또 우주가 법칙성을 띠고 있고 인간은 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뉴턴의 신념을 더욱 강화해주었습니다. 즉 상대성이론은 고전물리학이 했던 것보다 훨씬 깊이 있게 우주가 법칙성을 띠고 있다는 걸 드러내보였습니다. 더욱이 별개이던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이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상대성이론에 의해 우주론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이론은 우주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 질적으로 거대한 일보를 내디딜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사이의 기간에는 우주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진전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 우주는 정지해 있으며 활동도 없고 변화하지도 않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가 동적인(급속히 팽창하는) 것임을 보여주었고, 실제 관측 결과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우주론에 대변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우주 역시 비록 동적이긴 하지만, 주어진 운명대로 진화하고 있는 결정론적인 우주입니다. 게다가 그 우주는 인간과 관계없이(상대성이론에서 물리적 대상은 인간의 의식과 관계없이 실재한다.) 머나먼 여정을 묵묵히 밟아갑니다. 다만, 상대성이론은 태초에 우주를 생기게 한 (빅뱅 우주론에서 빅뱅을 일으킨) 힘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힘의 주인공을 ‘스피노자의 신’, 즉 우주적인 신으로 보았습니다. 우주는 그 이후 인간과 관계없이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상대성이론은 천명합니다. 이는 가끔 시계태엽을 감아주듯 신이 우주의 혼란을 바로잡아주는 뉴턴의 우주(신학적 우주)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1)데니스 브라이언, 승영조 옮김, 아인슈타인 평전, 북폴리오, 2003. 250p
2)D. P. 그리바토프, 이영기 옮김,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견해와 상대성이론, 일빛, 1992. 321p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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