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견해
아인슈타인은 베른 특허청 시절 철학도 모리스 솔로빈, 콘라드 하비히트와 함께 ‘올림피아 아카데미’를 결성해 철학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 모임을 통해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주요 철학자들의 저작을 섭렵하고 토론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이라는 혁명적인 이론을 창안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근본 토대가 흔들리는 난관에 부딪쳤을 때는 물리학자들이 철학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학문의 체계가 잘 확립되어 근본적인 개념과 근본적인 법칙이 흔들리지 않을 때는 물리학자가 철학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의 기초 자체가 지금처럼 문제가 된 때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경험이 새롭고 더 확고한 기초를 찾도록 압박할 때 물리학자는 철학자에게 이론적 기초에 대한 결정적인 사고를 떠맡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신발이 어디가 불편한지를 가장 잘 알고 더 확실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1)
아인슈타인은 철학을 넓게 보아 가장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형태로서의 지식에 대한 탐구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모체라고 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방법론을 연구하지 않고, 지식이론(인식론)을 숙달하지 않고는 자연과학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예로부터 인류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철학의 오랜 주제 중의 하나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1) 세계는 인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통일체이다. (2) 세계는 인간적인 조건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이다.
이 주제는 근대에 이르러 인식론이란 이름으로 논의되어 왔습니다. 인식론(認識論 epistemology)은 인식의 기원과 본질, 인식 과정의 형식과 방법에 관해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입니다. 인식의 기원에 관해서는 경험론과 이성론, 그 대상에 대해서는 실재론(유물론)과 관념론이 대립해 발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인식론에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인식의 대상에 관해서는 실재론적 견해를 평생 고수했으며, 인식 방법에 대해서는 경험론과 이성론의 조화를 꾀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철학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인식론과 과학의 상호관계는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의존합니다. 과학과 접촉 없는 인식론은 공허한 것이 됩니다. 또 인식론이 빠진 과학은 소박하고 지리멸렬합니다.”2)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
아인슈타인은 인간을 둘러싼 세계는 우리의 의식과는 별개로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평생 고수했습니다. 그는 외부세계 대신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양자론 학자들과 벌인 논쟁의 핵심은 바로 ‘물리적 실재’가 인간의 관측행위와 별개로 존재하는가 여부입니다.
오늘날 사물이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대부분 갖고 있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철학사를 보면 반드시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실재론적인 입장은 인간의 의식이 사물에 우선한다는 관념론과 대립되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언제부터 어떻게 실재론을 믿게 되었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고대 유물론 철학자들인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저작을 섭렵하면서 사상적 기반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들의 사상이 2000여 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진 과학적 발견을 이미 예견했다는 점에서 경탄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이를테면 원자론이나 인과율에 대한 고대 유물론자들의 주장은 20세기 초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충격적이라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들이 주장한 인간의 의식 바깥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세계와 인과론 및 원자론 그리고 세계의 인식 가능성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30년 베를린 자택에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Rabindranath Tagor)를 초청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타고르는 이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실재는 우리의 의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며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에 대해 나는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책상을 만지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고 책상을 떠나면 나는 책상이 ‘존재했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즉 내가 책상에 앉아 있을 때에만 내가 책상을 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3)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조차 우리가 사용하는 물체가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예컨대 이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할지라도 책상은 여전히 그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4)
아인슈타인은 아일랜드 작가 머피(James Murphy)와의 대담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머피는 아인슈타인에게 “영국에서 간행되는 일부 출판물에 따르면 당신은 외부세계가 인간 의식의 산물이라는 철학에 동의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그것을 믿는 물리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는 아마 물리학자가 아닐 것입니다. 과학적인 의견과 그것의 문학적 표현은 구별해야 합니다. 별이 저기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별을 관찰하는 수고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외부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내가 지금 당신과 얘기하고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어떤 주관적인 관념론자라도 그 반대사실을 당신에게 믿도록 할 수 없습니다.”5)
아인슈타인은 마흐(Ernest Mach)와 버클리(George Berkeley), 데이비드 흄, 에마뉴엘 칸트의 철학을 연구하면서 한때 이들의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방법론은 수용했으나 이들의 관념론적 세계관에 대해선 시종 비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초기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안하는 시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마흐입니다.
그런데 마흐의 철학은 인식의 방법론적으로는 경험주의자(실증주의자)이면서 인식의 대상에 관해서는 관념론의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마흐는 직접 경험하는 감각 요소만 실재하며, 지식의 원천은 오직 경험적인 사실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그가 말하는 경험적인 사실이란 감각과 지각이지 객관적인 실재는 아닙니다. 이는 ‘존재하는 것은 곧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버클리의 극단적인 관념론과 일맥상통합니다. 버클리는 외부세계를 우리들의 지각에 의존하는 관념의 집합체로 보았습니다. 마흐의 철학 역시 사상적 선배인 버클리와 마찬가지로 관념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한때 마흐의 철학에 경도되었지만 나중에는 결별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마흐 철학의 관념성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실험적인 방법을 통해 정확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어떠한 개념도 물리학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마흐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수용했습니다.
특히 마흐가 『역학의 발전 - 그 역사적·비판적 고찰』에서 뉴턴의 ‘가설’인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개념을 통렬하게 비판한데 대해서도 공감했습니다. 마흐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해 뉴턴역학의 많은 개념과 원리들의 절대성을 비판하고 상대성으로 재해석하자 아인슈타인은 이에 공감하여 수용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가속운동은 우주 전체의 질량분포에 대해 상대적’이라는 마흐의 원리를 지지했습니다. 이 같은 마흐의 상대주의적 관점은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동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고 상대성이론을 창안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객관적 법칙과 객관적 진리 그리고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마흐의 관념론 철학의 실체를 확인하고 더는 그를 사상적으로 추종하지 않았습니다. 마흐가 뉴턴의 가설적인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비판한 것은 실재론 입장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였습니다.
이를테면 마흐는 시간과 공간 같은 물리적 실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관념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즉 물리적 실재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관점입니다.
마흐에게 물리학은, 어차피 객관적인 실재가 없으므로 이상적인 사물을 탐구하는 것인데 반해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물리학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실재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이란 인간의 관찰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실재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시도”라고 언급했습니다.
마흐는 또 감각과 경험적인 요소 외에 이성행위(사유)가 지식의 원천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인과율과 같은 규칙성을 내포하는 모든 이론을 부정했습니다. 세계는 의식의 총체이며 인간의 지식은 감각과 경험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어차피 그 같은 이론에 도달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흐는 또 감각으로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원자론과 분자운동론(당시에는 원자와 분자를 직접 관찰할 수 없었다)을 부정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감각과 경험적인 요소 그 너머에 외부세계의 사물, 혹은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자료는 이런 객관적인 실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감각 정보를 토대로 종합과 추론 등 사유를 통해 객관적인 실재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신념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46년 쓴 『자전적 노트』에서 마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고전역학의 도그마를 뒤엎은 사람은 마흐입니다. 그의 저서 ‘고전역학의 역사’는 학생시절 나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인식론적 입장도 젊은 시절 내게 영향을 주었으나 지금은 본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유, 특히 과학적 사유에 대한 구조적이고 추론적인 본질을 올바른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구조적이고 추론적인 특성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이론, 예를 들어 원자의 동역학이론에 대해 비난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6)
# 1)아인슈타인, 옹수원·구자현 옮김, 중심, 2003. 340p '플랭클린연구소 발행 정기 간행물 221권 기고문(1936년 3월)
2)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견해와 상대성이론, D.P. 그리바노프 지음, 이영기 옮김, 일빛, 1992. 147p
3), 4) 같은 책 138p
5)같은 책 159p
6)같은 책 145p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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