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양자역학
아인슈타인 이래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란 평판을 얻은 노벨물리학상(1965년)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양자론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양자론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양자론의 대부인 닐스 보어(Niels Bohr)도 “양자론에 쇼크 받지 않는 사람은 양자론을 모르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이들 두 물리학자의 말은 결국 양자론이란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양자론은 매우 성공적인 이론일 뿐 아니라 현대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초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폭넓게 응용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양자론이 태동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인류의 삶의 방식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양자론이 없었다면 컴퓨터가 생겨날 수 없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주장은 뒷받침됩니다.
양자론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기둥입니다. 특히 양자론은 상대성이론과는 또 다른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문명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양자론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론은 태동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수용하기를 주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론적으로 불완전하거나 수학 공식이 난해하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 매우 명료하게 서술되며 그 이론은 완벽하다고 단언할 만합니다. 실험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입증되며, 기술적 공학적 응용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왜 양자론이 논란거리가 될까요? 그것은 양자론이 우리의 상식과 정면으로 대립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양자론은 우리의 상식과 직관을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양자론은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관(기계론적 우주관)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나아가 양자론은 새로운 자연관과 우주관을 제시합니다.
이제부터 놀라운 양자론의 세계를 여행하려고 합니다. 양자론이란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이론, 나아가 미시세계에서 시작하여 자연계 전체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나타낸 사고방식 혹은 사상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양자역학’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는 미시세계에 대한 수학적 기술을 포함한 역학 체계를 일컫습니다. ‘양자론’은 물리 법칙뿐 아니라 철학적 의미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양자역학’보다 더 포괄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앞으로 문맥에 따라 두 가지 용어를 병용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양자(quantum)'란 무엇이고 미시세계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양자란 ‘얼마나 많이’(how much)란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현재 영어단어 양(quantity)과 관계있는 단어입니다. 즉, 이것은 일정량의 덩어리, 에너지의 덩어리를 일컫습니다. 에너지가 일정 크기의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양자론의 시초이며, 이 단어의 유래입니다.
'일정 크기의 덩어리'란 말은 정확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배터리가 닳아 없어질 때 그 에너지는 일정량에서 0에까지 연속적으로 감소되지 않고, 0이 되기 직전의 최후의 한 덩어리가 남고 그 다음에 곧바로 0이 된다는 뜻입니다. 에너지 0과 '한 덩어리' 사이의 에너지 값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를 물리적인 용어로,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양자론이 적용되는 미시세계란 일반적으로 원자 이하 크기의 물질, 즉 전자, 양성자 등으로 이뤄진 세계입니다. 이제부터 양자론의 탄생과 성장의 과정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양자론의 서막, 혼돈의 시대
19세기 후반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모든 신비를 벗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전물리학의 양대 기둥인 뉴턴역학과 맥스웰 전자기이론의 강력한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뮌헨대학에서 처음에는 철학을 공부했던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지도교수인 욜리(Philipp von Jolly)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욜리 교수는 플랑크에게 물리학에서는 모든 본질적인 것들이 이미 연구되었고 남은 것은 세부 사항을 설명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리학에는 이제 더 깊이 탐구할 영역이 남아 있지 않으니 다른 분야를 찾아보라는 충고였던 것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세기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 켈빈 경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은 미국 볼티모어에서 가진 ‘열과 빛에 관한 역학적 이론에 드리워진 조각구름’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물리학의 하늘은 작은 조각구름 두 점이 떠 있을 뿐 대체로 맑다.”며 낙관론을 폈습니다.
켈빈 경이 언급한 두 점의 조각구름은 ‘에테르 속을 움직이는 지구의 운동을 설명하는 문제’와 ‘흑체복사 문제’입니다. 당시 켈빈경은 이 작은 두 점의 조각구름이 20세기 물리학 혁명의 씨앗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들 조각구름 중 에테르와 관련된 문제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발전한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나머지 하나, 흑체복사 문제는 플랑크의 연구와 더불어 양자역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양자역학은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거의 완벽하게 설명하면서 원자물리학과 핵물리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이들 학문은 반도체 연구를 비롯한 전자공학의 발달을 촉발시켜 컴퓨터로 대변되는 첨단 전자문명의 폭발적인 진보를 가능케 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고전물리학의 눈부신 발전을 감안하면 켈빈 경이 물리학의 궁극적 완성이 멀지 않았다며 낙관론을 가진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1847년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는 가장 고전적인 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을 완벽하게 증명했으며, 10년 뒤 클라우지우스(Rudolph Clausius)에 의해 열역학 제2법칙이 제시되었습니다. 그 후 맥스웰의 전자기학 이론, 맥스웰과 볼츠만의 기체운동론이 완성되었습니다. 뉴턴역학을 제외한 고전물리학의 핵심 요소들은 모두 19세기 후반의 약 50년 사이에 탄생한 셈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켈빈 경의 낙관론은 성급한 것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과제가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원자의 실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895년 11월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Wilhelm Rontgen)은 사람의 피부를 통과해서 그 속에 감추어진 뼈의 영상을 만들어주는 투과력이 있는 새로운 빛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알 수 없는’ 빛을 X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듬해인 1896년 프랑스의 앙리 버크렐(Henri Becquerel)은 방사선을 발견했습니다. 우연한 발견이었지요. 그는 검은 종이로 싼 암석 하나를 사진판을 보관하는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며칠 후에 서랍은 열어본 버크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사광 때문에 사진판이 못 쓰게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암석 조각은 다량의 우라늄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4년 후에 마리 퀴리(Marie Curie)는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와 함께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했으며, 원자의 자연 붕괴 사실을 확인해 원자핵 물리학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또 1897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물리학자 J.J. 톰슨(Joseph John Thomson)은 전자를 발견했습니다. 톰슨은 이 공로로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들 J.P. 톰슨(Joseph Paget Thomson)은 '전자의 파동성' 발견으로 193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지요. J.J. 톰슨은 전기 방전관에서 만들어지는 음극선이라는 새로운 빛이 사실은 전하를 가지고 있고, 원자보다 훨씬 작은 질량을 가진 입자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입니다.
X선, 방사선, 그리고 원자 구성 입자라는 전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함으로써 물리학은 혼돈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전자를 발견함으로써 원자 구조 연구는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20세기 벽두에 출현하게 되는 새로운 물리학, 양자역학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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