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 - 빛의 이중성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빛의 입자-파동 논쟁은 아이작 뉴턴 시대(17,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뉴턴의 빛에 관한 연구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빛을 입자의 흐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반해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하위헌스(Christian Huygens)는 빛이 파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에는 뉴턴의 명성이 워낙 높던 터라 빛의 입자설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다가 1802년 영국의 의사이자 아마추어 물리학자인 토머스 영(Thomas Young)이 그 유명한 ‘영의 실험’을 통해 빛의 입자설에 치명타를 날렸습니다. 빛이 파동의 강력한 증거인 간섭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실증해 보인 것입니다. 게다가 19세기 중후반 맥스웰이 전자기이론을 정립하자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인 파동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벽두인 1905년 아인슈타인이 광양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광전효과’의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빛의 입자설을 부활시켰습니다. 이로부터 18년 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증명한 콤프턴의 X선-전자 산란(콤프턴 산란) 실험에서도 빛은 입자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빛은 정말로 입자일까요? 그렇다면 빛이 파동임을 입증한 ‘영의 실험’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제 영의 실험을 살펴보겠습니다. 영의 실험은 요약하면 <그림1>과 같이 2개의 틈(면도날로 한 번 그은 정도의 가느다란 틈)이 난 막에 빛을 비추면 그 뒤에 있는 스크린에 간섭무늬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단순한 이 실험은 빛을 넘어 확실한 입자로 여겨졌던 전자마저 파동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입증해줌과 동시에 불확정성 원리까지 확인해주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역학의 모든 것이 이 실험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자, 이제 이 실험의 내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이를 주목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입자로 여겨졌던 빛과 전자의 파동성을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을 바탕으로 광전효과의 메커니즘을 말끔하게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빛이 광자(입자)라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9세기 말 당시 빛은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에 의해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 자신도 빛의 파동성을 근거로 광속불변의 원리를 공준으로 내세워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또다시 빛이 입자라니,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영의 실험을 재음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파동의 성질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자기파의 일종인 빛(물론 입자 성질도 있지만)과 음파, 물결파는 대표적인 파동입니다. 빛은 매질이 없어도 진행하는 반면 음파와 물결파는 매질이 있어야 진행한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간섭(interference)이란 독특한 성질을 갖습니다. 간섭현상은 파동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물결파를 상상해보겠습니다. 고요한 연못 두 곳에 돌을 던지면 원형의 물결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각자 진행합니다. 그러다 이 두 물결파가 만나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두 물결파의 마루끼리 만난 부분은 파고(마루의 높이, 파동의 진폭)가 높아집니다. 즉, 개개의 파고를 더한 값이 됩니다. 반대로 골끼리 만나면 골이 더욱 깊어집니다. 그리고 마루와 골이 만나면 파고가 감쇄되거나, 만난 마루의 높이와 골의 깊이가 꼭 같다면 파동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이 같은 간섭은 파동 특유의 성질입니다.
빛을 이중 슬릿을 향해 쏘는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역시 스크린에는 간섭무늬가 나타납니다. 실험자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빛은 파동이 확실하군.’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빛이 확실한 파동이라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입자임이 명백한 물 분자가 서로 모여 파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입자인 빛도 여러 개가 모이면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반론을 펴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반론에 대해 영의 실험을 조금 변형해 해보았습니다. 빛 입자들이 모여 파동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빛을 ‘초당 한 개씩’ 발사하는 것이다. 광자가 하나씩 날아가기 때문에 물처럼 분자들이 모여 파동을 형성하리라는 예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실험은 1915년 미국의 물리학자 테일러(G. I. Taylor)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습니다.
테일러는 스크린을 사진필름으로 대체하고, 실험 장치 전체를 외부의 빛을 완전히 차단한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필름을 꺼내 현상했습니다. 그동안 광자는 하나씩 사진 필름에 도달하여 특정한 장소를 검게 변색시켰습니다(사진 필름은 빛을 쐬면 검게 탄다. 그래서 필름 현상 작업을 암실에서 한다). 1~2주 동안 실험을 계속하자 필름에는 검은 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검은 점들의 분포는 어떠할까요? 틀림없는 간섭무늬였습니다! 빛을 광자(입자)로 여긴 상황에서 이 같은 실험 결과는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임에 분명합니다. 초당 1개씩 발사되어 순차적으로 스크린에 도달한 광자들이 대체 무슨 수로 간섭무늬를 만들 수 있단 말일까요? 빛이 입자임이 분명하다면 직진성에 의해 모든 광자는 왼쪽 아니면 오른쪽 슬릿을 통과할 것이므로 <그림4>와 같은 무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실험결과는 <그림5>처럼 간섭현상을 보였습니다.
다시 비슷한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오른쪽 슬릿 한 개만 열어두고 광자를 쏩니다. 그러면 스크린에는 <그림2>와 같은 모양이 생길 것입니다. 이제 반대로 왼쪽 슬릿만 열어두고 광자를 쏘면 <그림3>처럼 위치만 바뀔 뿐 스크린에 빛이 비춰진 모양은 <그림2>와 꼭 같습니다.
이제 슬릿 두 개를 모두 열어놓고 빛을 쏘면 어떻게 될까요? 광자가 입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결과는 위의 두 그림을 합친 <그림4>와 같은 모양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리 <그림5>처럼 생생한 간섭무늬가 나타났습니다.
광자를 입자로 가정하고 이 실험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간섭무늬 중 밝은 띠는 이들 입자가 많이 도달한 지점이고, 어두운 곳은 입자가 도달하지 않은 곳입니다. 위의 실험에서 보듯, 슬릿이 하나 열려 있을 때와 둘 다 열려 있을 때 광자가 도달한 지점은 분명 다릅니다. 하나가 열려 있을 때 밝은 곳(입자가 도달한 곳)이 둘 다 열려 있을 때는 어둡게 변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볼 때 광자는 슬릿의 개폐 상태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슬릿을 통과하는 입자가 아래 슬릿이 열려 있는지 아니면 닫혀 있는지를 안다는 말일까요? 아무런 인식 능력이 없는 광자가 슬릿을 통과하면서 다른 슬릿의 개폐 상태에 따라 행동을 달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건 마치 먼저 출발한 광자가 다음 광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상쇄되거나 다른 곳에 함께 가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그러므로 광자를 입자로 본다면 간섭현상은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파인만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빛이 오른쪽 아니면 왼쪽 슬릿 중 한 곳을 통과한다는 고전적인 관념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파인만은 “개개의 광자들은 두 개의 슬릿을 ‘모두’ 통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총에서 발사된 광자는 스크린에 도달할 때까지 ‘모든 가능한 경로’들을 ‘동시에’ 지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그림6)
독자들은 “말도 안 돼! 광자 하나가 어떻게 두 개의 구멍을 모두 지나갈 수 있단 말이냐?”고 반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쨌든 파인만이 이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정립한 ‘경로적분(path integral) 이론’은 실험사실과 잘 맞아떨어져 양자역학 해석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중슬릿 실험의 결과로 볼 때 빛은 파동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에서 아인슈타인과 콤프턴이 빛의 입자성을 확인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합니다.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함께 갖고 있다.’ 물리학계는 이를 ‘파동-입자의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이라 부릅니다.
빛은 입자 아니면 파동이라거나 입자와 파동은 배타적이라는 고전물리학에 기초한 이분법적 사고는 이제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뒤에서 다루겠지만 빛뿐 아니라 입자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전자와 같은 물체들도 파동성을 보인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미시세계에서는 입자성과 파동성이 한 물체에 공존하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파인만의 발언은 이처럼 미시세계가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수학적으로 명료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실험결과를 놀라울 정도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미시세계의 존재들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갖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까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림1~그림6 : 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승산, 2005.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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