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대신 근로장려금?

'최저임금 1만원' 대신 근로장려금?

조송원 승인 2017.10.31 00:00 | 최종 수정 2017.11.01 00:00 의견 0

정부와 여당에서 속도조절론, 근로장려금제를 제기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유야무야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조짐이다.

30일 국감에서 여당이 먼저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온 데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는 식으로 “연착륙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 근로장려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으니 하는 말이다.

야당에서도 쌍수를 들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은 “최저임금 재정지원이 이대로 가면 5년간 40조 원이 소요된다”면서 “근로장려금 방법을 고려하고 최저임금 정책은 재검토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동연 부총리와 여야 의원들이 언급한 근로장려금은 최저임금 제도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제도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물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당에서 먼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온 데는 아무래도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비정규직 안전망 강화와 영세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서는 사회적 지출을 늘려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지 않은가.

이런 정부와 여당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세금을 대폭 올리지 않고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한 사회적 지출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세금 인상이 아니라 정당한 과세 집행만으로 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철강업계 3위인 세아그룹의 오너 3세들이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주식을 매각하고 있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변칙 상속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2013년 회장 고 이운형의 갑작스런 별세로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을 물려받아 상속세가 1400억~15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역대 상속세 납부 1위는 신용호 교보생명 명예회장 유족의 1830억 원이다.

이에 반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삼성 그룹을 지배하기 위해 납부한 세금은 단돈 16억 원이다. 이뿐 아니다. 2008년 특검이 삼성 전・현직 임원 486명 명의로 된 주식(4조1000억 원어치)과 현금(3000억 원) 등 4조5000억 원 규모의 차명계좌를 찾아냈다. 실명전환할 경우 많게는 조 단위로 추정되는 과징금과 세금을 납부해야 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명의변경을 통해 온전히 차명 재산 전액을 찾아갔다.

사조그룹의 오너 3세는 내부거래로 자산 3조 원을 꿀꺽하고는 세금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사조의 수법은 재벌 대기업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주로 써먹은 편법 상속 수법 그대로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자료를 보면 오뚜기, 농심, 한미사이언스, 넥센, 풍산, 에스피시, 한일시멘트, 고려제강, 영원무역, 녹십자홀딩스, 동서, 한샘 등 자산 5조 원 미만의 웬만한 중견기업은 대부분 이런 의혹을 받고 있다.

이렇게 공정한 과세 집행만으로도 사회적 지출 재원은 차고 넘치는 데다 부동산 보유세를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만 적용하면, 시급 1만 원을 넘어 전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

이다지도 뒤틀리고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넘어 돈으로 환산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사고를 해보자.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들 하는 인재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어떻게 하면 광고를 클릭하게 할까 고민한다. 월 스트리트에선 파괴적인 금융상품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그 대가로 상상을 초월한 임금을 받는다.

자기 자식들을 희생해 가면서 남의 아이들을 돌보는 가사도우미, 모두 잠든 깊은 밤에 생활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미화원, 과로로 쓰러지는 동료들을 위로할 새도 없이 밤낮으로 뛰는 택배 기사들, 그러나 이들의 최저임금은 내년에 겨우 7530원이다.

누가 더 공공선에 기여하는 이들인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요상한 신화가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졌다. 좋다, 그럼 일을 할게. 단, 일을 하니까 제 몫은 달라, 이게 무리한 요구인가? 지금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고소득자의 풍요로운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일하지 않는 고소득자들이 즐비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시급 1만원이 적니 많니 하고 시시비비할 게 아니다. 일하지 않고도 호화 생활을 하고, 일에 비해 턱없이 높은 임금을 받거나 턱없이 초라한 임금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는 게 우선순위라는 말이다. 이른바 적폐청산이다. 공정 과세는 적폐 청산 우선순위의 맨 앞자리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6년 대한민국의 1인당 GNI는 2만7561달러로 전년에 비해 1.4% 증가했다. 환율을 줄잡아 1달러 당 1120원으로 계산하면 30,868,320원, 얼추 3100만 원이다. 그러므로 4인 가족 기준으로 가구당 소득은 1억2000만 원쯤 된다는 말이고, 맞벌이 부부라도 아내와 남편이 각각 6000만 원 이상의 연소득을 올린다는 계산이 된다.

주위에서 이런 사람을 얼마나 보았는가? 이 많은 소득은 누구의 몫이 되었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상위 10%가 총소득의 45%를 가져간다. 아시아 어느 국가보다도 부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의 쏠림은 지난 20여 년에 걸쳐 급격히 진행되었다. 이는 고소득자의 임금이 저소득자보다 더 많이 오른 탓이다.

이러한 불공정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일이다. 자영업자와 중소 영세기업이 채산성 악화로 고용을 줄이거나 도산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지출 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증세는 곧 정치적 부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적폐청산 차원의 공정과세라는 정공법도 있다. 이를 외면하고 근로장려금이란 꼼수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입막음하려는 것은 더 큰 부담을 자초하는 일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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