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비판한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비판한다㊤

조송원 승인 2018.04.14 00:00 | 최종 수정 2018.04.15 00:00 의견 0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11월 미국의 시민상인 '자유의 메달'을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설립자인 빌 게이츠 부부에게 수요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니콜 애쇼프/황성원

학교 교육에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자본가는 최고의 투입물과 생산 공정을 이용하여 가장 많은 이윤을 뽑으려 한다. 교육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교육의 생산 공정(교사)이 더 나은 기술과 효율성으로 투입물(학생)을 바꿀 때, 교육의 생산품(시험 점수)가 향상될 것이다.

한때 교육이 사업처럼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업가 제이미 볼머(Jamie Vollmer)의 일화는 대단히 시사적이다. 볼머는 대단히 성공적인 아이스크림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이 회사가 만든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은1984년 미국 최고의 아이스크림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교사와 교육행정가, 교직원을 모아 놓고 학교 개선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볼머는 이들에게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듯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교사가 일어나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냐고 물었고, 볼머는 ‘슈퍼프리미엄’ 재료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교사는 또 물었다. “볼머 씨, 재료가 들어올 때 가보니 질 나쁜 블루베리가 한 차 들어와 있으면 어떻게 하세요?” 볼머는 대답했다. “되돌려 보내죠.” 교사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 블루베리를 결코 돌려보낼 수 없답니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블루베리는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부자이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재능이 있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고, 학대당하거나 겁을 먹기도 하고, 자신감이 넘치거나, 집이 없거나, 무례하거나 똑똑하기도 하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소아기류마티스관절염에 걸린 경우도 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도 있어요. 우리는 이런 애들을 모두 받아요! 모두요! 이래서 학교는 기업일 수 없는 거예요. 학교는 그냥 학교라고요!”

그러자 290명의 교사들과 교장, 버스 운전사, 수업 보조, 관리인, 비서가 모두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맞아요! 블루베리! 블루베리!” 볼머는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투입물이 아님을 깨달았다.¹⁾

빌 게이츠Bill Gates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기부금을 보유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자선단체의 영향으로 빌 게이츠는 ‘무자비하고 탐욕스런 독점가’에서 ‘선善을 위한 전 세계적인 힘’을 가진, 진지하고 소탈한 사람으로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빌 게이츠가 이 자선 단체를 만든 속내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데이비드 뱅크David Bank는 게이츠가 1988년 이전에는 자선단체에 몇 억 달러 정도를 기부했지만, 연방정부가 마이크로소프를 상대로 반트러스트 소송을 진행하던 1999년과 2000년에 기부금이 경이적으로 늘어난 것을 지적하면서, 게이츠의 기부금을 ‘반트러스트 배당금’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므로 빌 게이츠의 자선활동을 긍정적인 눈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빌 게이츠가 가진 부富의 ‘정당성’과 ‘결과의 균등’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통찰을 빌려야 한다. 촘스키는 47세에 ‘인스티튜트 프로페서’(Institute Professor. 하나의 독립된 학문기관에 상응하는 존재)가 되었고, 현재 89세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모든 문제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세계의 석학이다.

먼저 빌 게이츠가 가진 막대한 부가 정녕 게이츠의 것이냐는 ‘정당성’ 문제이다. 그가 재산을 축적하고 권력을 얻게 된 근거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연방 정부이다. 최초의 연구개발에는 공적자금이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현재 민간항공산업은 에어버스와 보잉이라는 두 거대 회사가 양분하고 있다. 우리가 두 회사의 비행기로 여행한다면, 십중팔구 민간용으로 개조한 군용 화물기나 폭격기를 타고 여행하는 셈이다. 자동차 산업도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대부분의 신기술이 군軍에서 개발된 후 개인 기업으로 이전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힘은 컴퓨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컴퓨터는 원래 군에서 항공방어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발전한 것이다. IBM이 타이프라이터나 생산하는 기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가 재정 지원한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용역 받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이런 개발자금 전부가 공공 분야에서 지원한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의 테크놀리지에서 최첨단 영역은 공공 분야가 전적으로 재정을 떠맡고 있다. 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 대부분의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공공 분야에서 지원한 연구의 산물이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30년 동안 인터넷에 관련된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개발, 자금과 용역이 공공 분야에서 나온 것이다. 웹도 공공 분야가 지원한 연구로 완벽하게 정리될 수 있었다.

1995년 인터넷이 민간 기업으로 이전된 과정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공공 분야의 창의적 발상으로 공적자금으로 개발된 이 모든 것은 당연히 공공의 재산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민간 기업에 양도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결국 공공의 재산이 민간 기업으로 양도된 것인데, 그 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걱정하고 있다. 특히 일선 연구자들의 걱정은 대단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경제 전문가와 지식인이 가장 큰 위선자들이다. 우리는 매일 신문에서 시장경제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을 극찬하는 기사를 읽는다. 하지만 실상은 모든 경제가 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니콜 애쇼프의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표지.

첨단 테크놀로지 분야의 연구에서 미국을 선두에서 끌어가는 기관은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이다. 인터넷을 개발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요즘 DARPA는 생명공학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항생물질을 견디어낼 수 있는 박테리아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곳도 바로 이곳, 정부기관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획기적인 결실을 얻어낸다면, 앞으로 20년 내에 제약업계는 엄청난 이익을 거둬들일 것이다.

나노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이다. 공공자금이 나노테크놀로지의 연구에 대폭 투자되겠지만, 그 열매는 민간 기업의 차지가 될 것이다.²⁾

다음으로 ‘결과의 균등’ 문제이다.

뉴욕 헌법권리센터 소장인 론 다니엘스Ron Daniels는 현 상황을 달리기 선수에 비교했다. 한 선수는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만, 다른 선수는 결승선에서 불과 1.5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에 대해 촘스키는 적절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핵심을 찌르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국에 기회의 균등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더라도 그 시스템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선수가 똑같은 지점에서 출발하고, 똑같은 운동화를 신었다고 하자. 하여간 모든 조건이 같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한 선수가 먼저 결승선에 도착할 것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중에 도착한 선수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현대 정치이론의 근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을 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목표는 ‘공익’(the common good)이어야 한다.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평등, ‘적절하면서도 충분한 재산’, 그리고 구성원 모두의 ‘지속적인 성장’이 보장 되어야 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친 부자와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이 병존하는 사회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칭하는 사회일 수도 있겠지만, 금세기에 이룩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극단적인 형태의 복지국가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회의 균등보다는 모두가 거의 똑같은 경제적 조건에 살아가는 결과의 균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많은 사상가들이 결과의 균등을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의 궁극적 목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가 시장을 옹호한 이유는, 완전히 자유로운 조건이라면 자유 시장이 궁극적으로 결과의 완전한 균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아담 스미스는 결과의 완전한 균등을 꿈꾸었으니까.³⁾ (곧 ‘하편’이 이어집니다.)

※1)니콜 애쇼프/황성원 옮김,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펜타그램, 2017), 194~196쪽. 2)노엄 촘스키/강주헌 옮김,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시대의창, 2002), 73~81쪽. 3)노엄 촘스키/강주헌 옮김,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1』(시대의창, 2004), 19~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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