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22)】 하루살이 - 한상호

조승래 승인 2024.01.18 11:18 의견 0

하루살이

한 상 호

동안거 하안거
물속 삼 년을 일러
유충이라 하더니

바랑 하나 걸머지지 않은
허공 만행 단 사흘을
성충이라 부르는구나

퇴화한 입,
먹지도 않고
말없이 죽으니

팔십 넘도록 길 찾던 한 화상
미물인 나를 불러
아득한 성자*라 하네

* 조오현 시인의 시 제목
- 한상호 시집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 책 만드는 집 2023년


불가에서는 동안거(10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와 하안거(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로 나누어 바깥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몰입한다. 시인은 하루살이 유충이 물속에서 성장하는 동안을 수행 기간으로 보았다. 반면 물 밖의 하루살이 시간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수행하는 만행이라 하였고 그동안의 개체는 성충이라 부른다. 종류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사흘 사는 동안 ’퇴화한 입, 먹지도 않고 말없이 죽으니‘ 종족 번식에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지상에서의 생애가 너무 짧다.

’팔십 넘도록 길 찾던 한 화상‘은 무산 조오현 스님의 구도 길에 대한 묘사이다. 그 스님 시인이 한상호 시인을 불러 ’아득한 성자‘라 했다. 도를 찾는 시인은 스스로를 미물이라 칭하면서 찾아가는 그 길 끝까지는 참 아득하다고 한다. 경지에 오른 사람들 간의 대화일 것이다. 시, 아득한 성자를 인용해 본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무산 조오현 시인의 〈아득한 성자〉 전문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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