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CBS 과학 토픽】영화 ‘삼체’의 물리학, 그리고 페르미 패러독스

조송현 승인 2024.04.24 11:56 의견 0

Q1. 오늘은 최근 네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으는 SF 영화 ‘삼체’를 과학토픽의 소재로 가져오셨네요. 요즘 삼체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던데요, ‘삼체’의 물리학을 알아보기 전에 ‘삼체’에 대해 알아볼까요, 원작이 소설이라죠?

--> 예 그렇습니다. 『삼체』(三體)는 중국의 SF 소설가 류츠신(劉慈欣)이 2007년에 중국에서 출간한 장편 SF 소설이죠. 이 소설은 2014년에 미국에 번역되었고, 2015년에는 아시아 작품으로는 최초로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중국계 미국인인 켄 리우(휴고상과 네뷸러상, 월드판타지상 석권)가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처음으로 중국 과학소설을 출간, 한국에서는 2013년에 번역 출판되었고요.

Q2. 작가 류츠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1963년 중국 베이징 태생으로 1985년 화베이대 수리수력원 수리공정학과를 졸업하고 산시 냥쯔관 발전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읽고 SF에 빠져들어 1999년 「고래의 노래」로 데뷔했고, 같은 해 『그녀의 눈과 함께』로 SF 은하상을, 이듬해 『떠도는 지구(유랑지구)』로 SF 은하상 대상을 거머쥐며 단숨에 중국 과학소설계의 기대주가 되었다. 2006년까지 8년 연속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SF 문학상인 은하상을 수상했다. "훌륭한 과학소설이란 정신 나간 상상을 뉴스보도처럼 진실되게 쓰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 명성을 안겨준 『삼체』는 중국에서만 30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제18회 SF 은하상 특별상을 수상했답니다.

Q3. 대단한 작가의 대단한 작품이라고 인정을 받은 상태이네요. 이제 ‘삼체’의 내용을 알아볼까요?

--> 원작 소설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네플릭스를 통해 삼체 시즌1 ‘삼체 문제’ 8편 전편을 보았습니다. ‘왕자의 게임’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합니다.다고 삼체는 전체 3부작으로 2부작 ‘어둠의 숲’, 3부작 ‘죽음의 신의 영생’은 아직 미공개 상태입니다. 오늘 과학토픽에서는 네플릭스 드라마의 ‘삼체’ 시즌1 ‘삼체 문제 Three Body Problem’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핵심 줄거리는 지구로부터 4광년 떨어진 켄타우루스좌의 한 행성의 삼체인과 지구인의 본격 격돌에 앞선 전초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좀더 설명하면, 삼체인의 우주함대는 광속의 1% 속도로 항진 중이어서 지구까지 오는 데 400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지구의 과학기술 발전속도를 보니까 그 시간이면 지구가 자신들보다 더 강한 종족이 될 게 분명해보였죠. 그래서 오는 도중에 최첨단 초소형 AI를 지구에 미리 보내 지구의 기초과학기술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건들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초과학자 주로 물리학자들이 암살되는 사고가 벌어지죠. 드라마는 이 같은 의문의 과학자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엄청난 수준의 과학기술 수준에 지구인들은 좌절하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암시로 시즌1이 마무리됩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원제 – 천체물리학자, 삼체인의 지구침공 유발자
진청 – 옥스퍼드 5인방, 물리학자, 주인공
오거스티나 살라자르로(오기) - 나노 공학자
사울 듀랜드 – 옥스퍼드 입자가속기 연구원
잭 루니 – 중퇴, 사업성공, 후원자 역할
윌리엄 다우닝 – 대학교수, 취장암
베라 예 – 5인방의 대학시절 교수, 예원제의 딸
클래런스 시 – PDC 요원
마이크 에번스 - 희귀조류 보호가, 내몽골에서 예원제 만나. 삼체인과 직접 교신. 삼체 추종단체 교주
타티아나 하스 – 삼체 추종 조직의 일원
지자 소폰Sophon - NPC
토마스 웨이드 PDC 행성방위위원회

Q4.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러 온다. 오는 데 걸리는 400년 동안 지구의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사건을 벌인다. 흥미로운데요, 내용을 너무 자세하게 소개하면 스포이니까 자제하고 ‘삼체’의 물리학에 집중하도록 하죠. 먼저 삼체가 뭐고 삼체인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 소설 제목이자 네플릭스 드라마 시즌 1의 제목인 ‘삼체 문제’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핵심 키워드입니다. 삼체 문제는 물리학에서 Three Body Problem으로 아주 유명한 문제입니다.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세 개의 물체간 상호작용에 관해 처음으로 제기했고요, 그는 세 물체의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다고 했고, 19세기 수학자 푸앵카레가삼체 문제의 정확한 솔류션이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르면 고전역학에서 물체의 초기조건을 알면 미래의 운명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두 물체의 경우 인력이 상호작용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개의 물체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해 초기조건을 안다고 해도 미래의 상태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카오스가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이게 삼체문제의 기본 개념이고요.

소설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삼체인(Trisolarans)은 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태양이 세 개인 삼체 상태라는 겁니다. 우리 지구의 경우 태양이 한 개입니다. 그러니까 지구 입장에서 태양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죠. 근데 삼체인의 경우 세 개인 태양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뜨지 않는 암흑의 세월이 있는가 하면 태양이 한꺼번에 세 개가 뜨는 바람에 온 대지가 불바다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삼체인들은 살기 좋은 항세기와 살기 어려운 난세기를 번갈아 겪는데, 문명의 성쇠가 200번 이상 반복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조만간 자신들의 행성이 태양 중 하나에 빨려들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는 걸 알게 되어 보금자리를 떠나기로 한 겁니다.

Q5. 아, 삼체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런데 삼체인들은 왜 하필 지구를 침공하게 되었나요? 아까 등장인물 소개 때 예원제가 지구침공 유발자라고 소개해주셨는데, 예원제가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이 영화는 의외로 중국의 문화대혁명부터 시작합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0년 동안 벌어진 중국의 친위 내란사태죠. 이때 젊은 전도유망한 천체물리학자였던 예원제는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더구나 교수였던 어머니가 대중 앞에서 아버지를 고발하는 장면도 목도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죠. 사상분자의 딸로 내몽골 벌목장에서 노역을 하다 ‘우주 메시지 전송 프로젝트’(역사적 사실은 아니고 소설적 장치)에 참가합니다. 어느 날 예원제는 인류 최초로 외계인의 메시지를 수신하는데 그 내용은 “응답하지 말라.” 그것은 삼체인 중 평화주의자가 보낸 메시지였는데, 지구가 전파를 보내 노출되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애정어린 경고였던 것이죠. 그러나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인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예원제는 “지구를 접수하라, 내가 돕겠다”는 내용의 전파를 보냅니다. 삼체인들은 이 전파를 접수하고 함대를 지구를 향하게 됩니다.

Q6. 삼체인의 우주선은 광속의 1% 속도여서 지구에 도착하는 데 400년이 걸리고, 그래서 미리 뭘 보내 지구를 감시하고 과학발전을 저해하는 사건을 벌인다고 하셨는데, 어떤 과학적인 장치가 등장하나요?

--> 바로 여기에 삼체인 과학기술을 정수가 나타납니다. 바로 지자 智者, 영어로 Sophon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자신들도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양성자 크기의 초소형 AI입니다. 그런데 이 지자는 11차원의 물체인데 2차원으로 펼치면 지구 하늘 전체를 감쌀 수 있을 정도로 면적이 넓고, 그 표면에 초슈퍼AI컴퓨터가 새겨져 있는 물체입니다. 이 지자는 모두 쌍둥이 두 개(모두 4개)인데 각 쌍둥이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삼체인은 두 개를 지구에 보내고 이들의 각 쌍둥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감시한 모든 내용을 실시간으로 쌍둥이 지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첨단 양자물리학인 얽힘entanglement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Q7. 이런 초소형 슈퍼AI컴퓨터라는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겠는데요, 어떤 일을 벌이나요?

--> 우선 기초물리학을 망가뜨립니다. 가속기에 들어가 실험데이터를 엉망이 되게 만듭니다. 가속기 연구원들이 물리학에 회의를 품고 포기하거나 자살을 합니다. 물리학자들 눈에 붉은 글씨의 숫자가 나타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됩니다. 중요한 실험을 하려는데 숫자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거의 미쳐버리는 거죠. 연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겁니다. 심지어 지구 하늘이 윙크를 하거나 전체 하늘이 암흑으로 뒤덮혀지기도 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예원제가 설립한 삼체인 추종단체가 과학자를 살해하기도 합니다. 또 온 세계 전광판에 ‘You are Bugs 당신들은 벌레야’를 띄워 지구인들을 겁에 질리게 합니다.

Q8. 흥미진진하군요. 여기에 맞서 지구의 행성방위위원회가 어떻게 대응해나느냐가 궁금한데, 이건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생략하기로 하죠. 지금까지 삼체 소개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드네요. 만약 외계 전파를 수신한 예원제가 답신을 보내지 않았으면 지구가 위험에 처하지 않았을텐데...

-->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삼체 시즌2 ‘어둠의 숲’의 주제입니다. 작가는 "우주는 어두운 숲입니다. 모든 문명은 유령처럼 나무 사이를 맴돌며 길을 막는 나뭇가지를 부드럽게 밀어내고 소리 없이 밟으려고 노력하는 무장한 사냥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제기한 ‘페르미 역설’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 역설은 ‘우주가 넓고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에 대한 증거를 발견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역설의 해답으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게 바로 ‘어둠의 숲’ 가설입니다. 우주에 외계문명이 실존하지만 다른 외계문명에 파괴당할 것을 우려해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숨어 있다는 추측입니다. 마치 어두운 숲속 사냥꾼처럼 몰래 숨어 있다가 낯선 게 나타나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면 먼저 공격해 제거하는 상황에 비유되죠. 이건 두 외계문명이 만나면 파괴적 결말이 난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도 “콜럼버스가 원주민들에게 한 짓을 보면 지적 외계 생명체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 진화한 외계 생명체는 새로운 행성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드는 유목민과 같을 것”이라고 경고했죠.

Q8. 이렇게 보면 예원제의 답신이나 ‘외계인 찾기(SETI)’ 프로젝트는 바보 같은 짓이군요.

--> 그러나 ‘어둠의 숲’ 가설은 다분히 다윈의 적자 생존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숲은 어두운 숲과 같지 않고, 공진화가 일어나는 시끄러운 곳, 생물은 혼자가 아닌 상호 의존 속에서 함께 진화하는 곳이라는 거죠. 기생충은 숙주에 의존하고, 꽃은 수분을 위해 새에 의존합니다. 숲의 모든 생물은 곤충에 의존합니다. 상호 연결은 불쾌하고 잔인하며 짧은 만남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형태도 취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세계의 숲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예원제가 젊은 시절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나오는 ‘자연에는 아무것도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새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은 벌레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텍스트이죠. 여기서 우리는 삼체 삼부작의 우주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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