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케렌시아 - 손현숙

손현숙 승인 2024.08.03 16:27 의견 0

케렌시아*
손현숙

대퇴골 부서져서 누워있는 엄마랑 영상 통화한다 면회도 안되고 간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팬데믹이어서 딸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질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반 평짜리 지구 위에 누운 극노인의 안부를 캔다 최대한 밝게 최대한 높은 톤으로,

틀니 뺀 입술로 ‘이상 무’,를 오물거리는 30초, 사실 다른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명료하게 들려오는 ‘이상 무’ 엄마가 괜찮다면 뭐, 괜찮은 거다

꼭꼭 씹어 밥을 먹고 분홍색 패딩도 한 벌 사고 미장원에서 보브컷으로 멋도 부렸다 밀린 빨래와 친구랑 긴 통화도 하면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나쁜 년이니?” 다이어트 앱을 깔고 스쿼트 쌍, 십팔을 마쳤다

박경애 여사와 딸 손현숙 시인

*투우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어가는 곳

-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중 -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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