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87)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2)

이득수 승인 2024.08.30 16:40 의견 0

20. 평리부락 망향비(2)

마침내 제막식 날이 되어 열찬씨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언양으로 향했다.

“보소. 제막식 하고 기분 좋다고 너무 마시지 마소. 내가 물가에 아아를 세워 논 것처럼 안심이 안 되지만 현서때문에 갈 수도 없고...”

영순씨가 영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오늘 같이 의미심장하고 엄숙한 날에 내 그럴 리가 있나?”

하고 나온 것이었다.

언양버스정류소에 닿자 장터골목을 지나 고속도로 다리 옆 징검다리를 건너 언양병원을 지나 교동갈비 앞에서 박스 밑을 통과하자 허허벌판이 된 옛 버든마을자리가 나왔다. 박스의 위치로 보아 옛날 앞새매자리에서 자신이 자랐던 생가자리를 힐끗 한번 쳐다본 열찬씨가 텅 빈 부지의 말끔한 도로를 한참 걸어가니 벌써 소공원 앞에 세운 트럭에서 행사용 연대와 의자를 꺼내 식장을 설치하느라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앰프에서는 <고향의 봄>이 요란하게 울려나오고 있었다.

“친구 오나?”

“위원장님, 고생합니다.”

영관씨와 인사를 나누자

“형님, 저 유락임더.”

50대로 보이는 사내가 하나 꾸벅 인사를 하는 지라

“그래. 유락이라고? 인제 같이 늙어가네. 나이가 얼마고? 우리 백찬이 하고는 누가 위고?”

“아이고, 제가 한참 아랩니더. 아재.”

황급히 호칭을 아재로 수정했다.

“그래 내가 보낸 팩스 받았제? 행사진행을 자네가 할 것이라면서? 이벤트사 한다니까 진행은 잘 할 끼고 보자, 그럼 초청 인사를 정리해야지.”

하고 호주머니에서 식순을 꺼내 둘이 마주 보며

“위원장님, 혹시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누가 온답디까?”

“아니요. 면장님이 오신다는 것은 번거로울까 봐서 내가 정중히 사양했고. 아마도 허령시의원님이 오실 겁니다.”

“아, 허령선배가!”

열찬씨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아, 허령선배. 같이 삼남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중고등학교 2년 선배라는 이유로 업무는 물론 매사에 신경을 써주면서 술과 밥을 먹고 옥자씨와 공부를 하다 연애로 변질되며 좁은 바닥에 온갖 욕을 다 먹을 때 조용히 감싸주던 선배, 농업직의 전망이 어둡다고 산림조합으로 진출하고 다시 의료보험공단으로 전직해 타고난 성실함과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단번에 부산지사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 늘 농업고등학교의 동창회 일에 앞장서다 동기생 김모의원이 뇌물사건으로 공석이 된 울주군수로 출마함에 따라 우연찮게 시의원에 출마해 벌써 재선의원이 된 삼남면 제일의 인물이었다. 면사무소의 일, 동창회의 일로 늘 같이 부대끼던 사람, 사람 많은 곳, 사람만나는 일이 늘 번거로워 기피하는 열찬씨가 단 한 사람 절대로 무시할 수 없어 전화가 오는 데로 동창회지의 축시나 원고도 써주고 중학교교가 가사도 지어 보낸 절대로 무시하지 못 할 선배...)

하고 상념에 빠지는데

“아이고 이게 누고? 우리 이열찬 시인, 서구청총무국장님이 아니신가?”

어깨를 탁치며 손을 내미는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제 말 하면 나타난다는 호랑이처럼 허령 의원이 당도한 것이었다.

“형님!”

“아우님!”

한참이나 서로 눈을 들여다본 뒤

“제발 총동창회 좀 나오라 해도 절대로 안 나오더니 고향마을행사에는 나왔네?”

“예. 퇴직하자말자 총동창회장 맡으라고 연락이 왔는데 제가 그런 인물도 못 되고 재력도 부족하고 해서...”

“아이구, 겸양도. 그 기 아이고 글 쓰는데 지장 있을까 봐 그렇다면서?”

“예. 이래저래.”

한 뒤

“보자. <고향의 봄> 합창을 할 때 누가 지휘를 해줘야 하는데.”

하고 주위를 살피는데

“형님!”

멀쑥하게 차려입은 신사하나가 인사했다.

“보자, 니가 용해제? 내 친구 용경이 생질?”

“예.”

“그래. 부산에서 니 동생 구해, 동해를 만났는데 개들은 나를 보고 아재라카던데.”

“예. 그럴 수도 있지요. 외삼촌친구니까. 그런데 나는 동생 백찬이친구 아잉교?”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니는 신수가 훤하네. 요새 뭐 하노?”

“김해에서 작은 공장 하고 있심더.”

“그래 외삼촌은 자주 만나고?”

“예. 가끔 만나면 형님이야기 합니더.”

“그렇구나. 그런데 니 <고향의 봄> 지휘를 할 수 있겠나? 체격도 복장도 아주 제격이구나.”

“예. 한 번도 안 해 봤는데요.”

하더니

“형님, 그게 3/4박잡니까? 4/4박잡니까?”

“나도 음악은 문외한이다. 손으로 연습해보면 자연히 알게 될 기다.”

하니 몇 번 손짓을 해보더니

“예. 4/4박자네. 연습하면 할 수 있겠습니더.”

한 뒤 다시 영관씨를 보고

“참, 전주호가 산림조합장이 되었다면서?”

“그렇지. 울주군이 아니고 울산시 산림조합장선거에 걸렸으니 구시골에 인물이 난 거지.”

“그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오늘 참석한다 카더나?”

“응. 온단다.”

“그럼 문제가 달라진다. 당연히 내빈소개에도 넣어야 하고 또 다른 역할도 하나 줘야 하는데.”

하고 위원장 영관씨의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본 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진행은 조덕래, 경과보고 전주호조합장, 대회사 엄영관추진위원장, 비문낭독 가열찬, 축문낭송 노야 김영만, 축사 허령시의원, <고향의 봄>지휘 신용해.”

“그래. 그럴 듯하네.”

“그리고 또 망향제에 잔을 올릴 초헌관, 아헌관이 필요한데 초헌관은 당연히 위원장 엄영관이고 보자 아헌관은 누구로 한다?”

하다 저쪽에서 전주호산림조합장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부위원장 종석이 온다더나?”

“아니. 하필 그 시간에 송아지 놓는단다.”

“저런? 그럼 아헌관은 전주호 산림조합장이 하되 만약 사양하면 신용해 사장으로 하자.”

“알았어.”

“유락씨, 다 받아 적었제?”

하는 사이 주호씨가 도착해 인사를 하는데

“아이구, 우리 아우님들 고생이 많네.”

한복을 차려입고 유건(儒巾)까지 쓴 노야선생이 나타났다.

“아이구, 형님!”

모두들 굽실거리며 인사를 마치자

“우리 이열찬 시인이 있어 비문이고 행사고 아무 걱정이 없네. 이 늙은이가 제(祭)만 따로 집행할 테니 잘 해보더라고.”

마침내 개최시간 11시가 다가오자

“보자. 참석자가 얼마나 되나?”

“한 25명 정도. 그리고 저게 둘러 선 아지매들까지 전부 한 30명 되겠네.”

연락처가 있는 데는 모두 다 알렸는데 떠날 때 형제간에 싸우거나 이웃하고 얼굴을 붉힌 사람도 많아 생각보다 참석자가 적다고 했다. 또 송아지를 받는 종석씨처럼 정말 사정이 있어 못 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주 당시 이미 절반가까이가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이라 겨우 1,20년을 살다 들어올 때 보다 몇 배가 되는 땅값, 집값을 바다 높다란 아파트를 사서 떠난 사람들이 공장에 다니거나 소를 키우고 살던 버든마을이 뭐 그리 그리울 것도 없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종석씨나 죽은 종찬씨네처럼 고속철부지에서 빠진 진장과 각골의 과수원이나 축사를 가진 집이 여남은 쯤 되었지만 대부분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 망향제란 것이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남의 일이라 단지 호기심 많은 중년부인 서너 명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기념타월 안 했나? 미리 한 장씩 풀면서 저 아지매들도 식장 앞으로 오라고 하지.”

하고 타월을 주욱 돌린 뒤

“자, 시작합시다. <고향의 봄> 볼륨 좀 줄이고.”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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