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오후 위쪽 차밭의 홍매가 피려고 꽃 몽우리가 조금 열려있다.
사진= 조해훈
겨우내 틈만 나면 차산(茶山)에서 일을 한다. 오늘은 2025년 2월 22일이다. 찻잎은 4월부터 따기 시작한다. 시간이 나지 않아 찻잎을 따지 못하더라도 차산 정리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억새와 묵은 고사리, 가시 등이 우거져 차밭에 들어갈 수가 없다. 낯선 사람이 차산에 올라가 찻잎을 따더라도 차밭 주인으로서 예의가 아니다.
오늘도 낫을 숫돌에 갈아 손에 들고 차산에 올랐다. 게을러 아직 위 차밭도 마무리를 다 하지 못하였다. 위 차밭의 홍매가 피기 일보직전이었다. 꽃 몽우리가 피려고 조금 열려 있다. 얼마 전 섬진강 건너 다압면 소학정마을에 가 매화 핀 걸 보았다. 몇 잎 피어 있었다. 날씨가 계속 추워서인지 아직 그 상태서 많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매화나무는 필자의 차밭 아래에 많다. 흰 매화와 홍매화가 섞여 핀다. 나무가 커 멋대로 피는데, 아직 피지 않았다. ‘가지치기를 좀 해줄까?’라는 생각은 가끔 한다. 그런데 몇 해 전에 구례시장에서 18만 원에 중고로 산 엔진톱이 고장 나 사용할 수가 없다. 새로 사려니 비싸다. 적어도 40여만 원은 줘야 한다.
오늘 작업할 필자의 차밭. 억새와 묵은 고사리 등을 낫으로 베어내야 한다. 사진 = 조해훈
차밭 가로 나 있는 억새를 먼저 벴다. 그런 다음 골을 따라 나 있는 억새와 고사리 등을 벤다. 차나무 사이에도 억새와 고사리 등이 많이 나 있다. 낫으로 하나하나 베어내니 금방 이마에 땀이 흘렀다. 그러면서 웃자란 차나무도 잘라준다. 웃자란 차나무를 베면 찻잎이 늦게 올라온다. 또한 겨울 동안 뿌리에서 영양분을 올려 첫 찻잎에 담은 기운과 맛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차나무 전체를 다 자르지는 않으므로 그다지 큰 지장은 없다. 왜냐하면 필자 혼자 따는 찻잎의 양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차밭이 좀 넓어 설사 다른 사람이 찻잎 딸 때 와 거들어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차산에서 작업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사진= 조해훈
개옻나무도 해마다 올라온다. 잘라도 뿌리가 남아 있어 끝없이 올라온다. 낫으로 자르면서 가능하면 뿌리를 낫으로 캐거나 양손으로 잡아당겨 뜯어 버린다. 그렇게 해도 남은 뿌리에서 해마다 자란다. 필자는 ‘10년 동안 차밭을 가꾸면 그나마 차밭 모양이 될 것이다.’라고 여기고 있다. 올해 9년째이다. 워낙 야생의 차산이어서 매년 키 큰 차나무를 잘라 모양을 만들고 골을 만들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차밭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차밭 모양이 됐다.
낫으로 잘라내는 종류가 여러 가지다. 가시는 또 왜 그렇게 많이 올라오는지 알 수가 없다. 산딸기나무 외에 망개나무도 많이 올라온다. 마치 차산이 해마다 필자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과연 이 지리산 산골에 들어와 수양을 제대로 하는지 검사받는 느낌 말이다. 다행히는 필자의 성격이 느리다. 게다가 필자의 집안에 ‘수양 DNA’가 조금은 있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낫을 던져버리고 “이런 차산 농사는 못 지어!”라고 차밭을 내팽개쳤을 수도 있다. 기계를 사용할 수도 없고, 경사가 심하고 다른 나무도 많아 남이 도와줄 수 없는 차산이다. 오로지 필자 혼자 낫으로, 온몸으로 무식하게 차 농사를 짓는다.
베어낸 억새와 찻잎 등은 바닥에 깔아준다. 다른 거름을 별도로 하지 않아 그런 걸로 차나무 주변에 영양분을 만든다. 원시적인 농법으로 차 농사를 짓는다. 필자의 성격이 그렇다 보니 “인생을 왜 그렇게 사느냐?”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오늘 차밭 두 골을 말끔하게 작업했다. 베어낸 억새 등은 바닥에 깔아주었다. 사진= 조해훈
허리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팔도 아프다. 경사 탓에 몸이 비스듬한 상태에서 낫질을 하기 때문이다. 허리를 굽혀 낫질을 하면서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차산 위쪽을 본다. 멧돼지 때문이다. 필자의 차밭 위는 말 그대로 야생 그대로의 지리산이어서 멧돼지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큰 멧돼지가 필자를 향해 돌진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어서다. 안경을 벗어 땀을 닦으며 위쪽과 좌우를 둘러본다.
잠시 원두막으로 간다. 모자를 벗고 땀을 닦는다. 이런저런 일로 날마다 차산에 올라오지 못한다. 그리하여 올라오면 바삐 일한다. 원두막에 잠시 쉰다고 해도 2, 3분 될까? 쉬면서 차밭 전체를 눈으로 둘러보며 작업할 로드맵을 짠다. ‘다음에 올라오면 저쪽을 잘라 정리해야겠다.’라는 등의 일 계획을 세운다.
어둡기 전에 오늘 계획했던 일을 다 마쳐야 해 다시 억새와 잡풀 등을 베던 곳으로 간다. 차나무 사이를 헤집고 잡풀과 가시, 잡목 등을 베어낸 부분은 마치 이발한 듯 말끔하다. 필자가 했지만 보면 기분이 좋다. 손이 없어 찻잎을 따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원두막에서 바라본 필자의 앞 마을인 용강마을. 가로등이 켜져 있다. 사진= 조해훈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계획했던 두 골의 작업도 끝이 보인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난다. 추워도 마스크를 쓰지 못한다. 안경에 김이 서리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어둑하다. 마침내 오늘 계획했던 작업을 급하게 끝냈다. 제법 껌껌해졌다. 원두막에 와 앞 용강마을을 보니 가로등이 켜져 있다. 집 집마다 등불을 밝혔다. 하도 차산에 다니다 보니 정말이지 눈 감고도 다닐 정도이다. 하지만 멧돼지와 곰이 습격하면 곤란하니 얼른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필자 혼자 겨우 다닐 정도로 아주 좁다. 길이 없는 곳에 소로를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가파르다. 자주 미끄러졌다.
그런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멧돼지란 놈이 밑에서 필자가 다니는 소로를 따라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기침을 하며 낫으로 옆에 있는 참나무를 “탁! 탁!” 소리 나도록 몇 차례 쳤다. 그러자 멧돼지가 놀랐는지 오른편 윤도현 어르신 고사리밭으로 뛰는 게 아닌가. 그놈도 아무 생각 없이 오다가 필자를 만나 대단히 놀랐을 것이다.
급하게 필자의 움막 쪽으로 내려오니 완전 껌껌하다. 이곳도 험해 늘 미끄러지는 곳이다. 핸드폰 플래시를 얼른 켰다. 미끄러지면서 겁이 나 뛰다시피 김종일 씨 집 뒤로 내려와 마을 길로 들어섰다. 가로등이 밝혀져 있어 한숨을 돌렸다. 혹시나 집으로 따라오지나 않을까 싶어 급하게 뛰어왔다. 평상시에는 장화와 장갑, 낫을 창고에 넣어두는데 오늘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장갑과 낫을 현관문 앞에 두고 들어왔다. 심장이 좋지 않은 필자는 충격을 받으면 안 되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