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한 서생이 생존가치를 소홀히 하면서 존재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것일까?
유대 공동체에서 추방당하고, 경제적 곤궁 속에서 렌즈 연마로 생계를 유지한 스피노자와 같은 위인들을 역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넬슨 만델라, 마더 테레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도 일신의 생존과 안락보다는 각자의 대의(大義)에 따라 험로를 걸었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러시아, 1834~1907)는 빈곤과 학계의 냉대를 감수하면서도 주기율표를 창안하고, 현대 화학의 기초를 다졌다. 마이클 패러데이(영국, 1791~1867)는 가난한 제본공 출신으로 정규 교육조차 받지 못했지만, 전자기학의 기초를 세우며 생존의 어려움보다는 과학적 진리를 밝히는 존재 가치를 추구했다. 앨런 튜링(영국, 1912~1954)은 동성애로 인한 박해와 사회적 고립 속에서 현대 컴퓨터·AI·정보 과학의 기반을 닦았다.
프란츠 카프카(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83~1924)는 병약과 고독 속에서 무명으로 생을 마쳤으나, 인간 실존의 깊이를 드러내는 작품을 남겨 후세에 문학·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1853~1890)는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예술적 진실을 추구하며 생전에는 그림 한 점 팔리지 않았지만, 사후 그의 그림은 인류 보편 언어가 되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이탈리아, 1891~1937)는 파시즘에 저항하다 옥사했으나, 『옥중수고(獄中手稿)』를 통해 지적·정치적 유산은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안니 바티스타 비코(이탈리아, 1668~1744)는 생전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빈곤 속에 살았으나, 역사철학을 개척했다. 시몬 베유(프랑스, 1909~1943)는 노동과 고행, 금욕 속에서 약자를 위한 사유를 실천하다 요절했지만, 그녀의 사상은 후세에 깊은 울림을 남기며 존재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사람들은,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천재이거나 위인이라 부를 만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한미한 서생이 이들을 감히 같은 반열에 두고 좇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범한 소시민은 어떻게 사는가?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이익(不利益)은 못 참는다.’ 삶의 진실이다. 불의에는 참아야 한다. 진화는 생존과 번식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안온한 삶의 위협일 뿐 아니라, 당장의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인 이익을 주지 못한다.
반면에 불이익을 참아서는 안 된다. 불이익은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조건이다. 따라서 불이익을 참지 못하는 인간의 성향은 그 불리한 조건을 회피하려는 본능적 적응으로 볼 수 있다. ‘어느 날 古宮(고궁)을 나오면서’란 시에서 김수영(1921~1968)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시민을 노래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왕궁) 대신에 王宮(왕궁)의 음탕 대신에
五十(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데 욕을 하고
용졸하게 욕을 하고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이십)원 때문에 十(십)원 때문에 一(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성삼문(成三問, 1418~56)과 신숙주(申叔舟, 1417~75)는 세종 임금으로부터 가장 총애 받던 신하였다. 두 사람은 진관사에서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임금이 온천에 갈 적에도 이들을 따라오게 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형제간보다도 더했고,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지기(知己)였다.
그러나 세종이 죽자, 사정이 달라졌다. 수양대군이 김종서 일파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고, 이어 인심을 무마시키기 위해 집현전 학사들에게 공신칭호를 내렸다. 이에 학사들은 서로 돌아가며 축하연을 베풀었다. 신숙주는 새로운 발돋음을 위해 축하연을 즐겼지만, 성삼문은 축하연의 거절은 물론 울분을 털어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길을 달리한 것이다.
성삼문은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제거하려다가 그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몰살을 당했다. 온갖 회유를 뿌리치고 목숨을 바쳐 ‘충’(忠)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지킨 것이다. 신숙주는 이와 달랐다. 옛날의, 생사를 같이하자던 동료들이 형장으로 끌려갈 적에 그는 새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도승지라는 벼슬을 받는 등 재빨리 변신했다. 이후 신숙주는 6대 임금을 섬기며 영의정을 지내는 등 영화와 부귀를 한평생 누렸다.
출사(出仕)한 신하의 정언명령이 ‘충’인 유교국가에서 왕위 찬탈이란 엄혹한 시국에서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하여 역사 속에서 이 두 사람은 사뭇 양극의 평가를 받는다. 성삼문은 충신의 표본이 되었고, 신숙주는 변절자의 표본이 되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곰곰 따져 생각해 보자. 나는, 그대는 우리는 그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택했을까? 아니, 개개인의 선택은 일단 제쳐두고, ‘인간이란 종’에게 어떤 길을 택함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까? 니체가 말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택은 어떤 길일까?
이에 대한 논의에 앞서, 뭇 기개(氣槪) 장부의 심금을 울린 성삼문의 절명시(絶命詩)를 언급하지 아니할 수 없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둥둥둥 북소리 사람 목숨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머리 돌려보니 해 뉘엿뉘엿 저무네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황천에는 객점 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까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