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32)】갑열촌장2 - 신원철

조승래 승인 2024.03.28 08:00 의견 0

갑열촌장 2

신 원 철

교정을 들어서면
멀리서 소나무들이 나를 알아보네
현수막도 펄럭이네
그 옛날에는 한참을 걸어 다녔던
건물도 사람도 한적한 백령골 강원도 캠퍼스
어슬렁거리며 나도 늙었어

지나간 세월 40년
돌아보니 한순간, 이제는
자동차들이 굴러다니고 새 건물이 번쩍이지만

여전히 푸른 도서관 앞의 미루나무,
이불 보따리 하나 지고 집 나섰던 나를 따라온
고향마을의 친구
잘도 자라
그 앞을 지나가면 반갑게 손을 흔들며

- 백령골 촌장 오셨냐고
- 이젠 정말 머리가 희어졌다고

- 『시와 소금』, 2021년 겨울호

삼척시에 있는 강원대학교에서 정년이 되도록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갑열‘이라는 사람이 ‘교정을 들어서면’ 오랜 친구 같은 ‘소나무들이’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현수막도’ 반가워서 ‘펄럭이네’. 되돌아보니 캠퍼스 구석구석 ‘한참을 걸어 다녔던’ 거기 건물이나 사람이나 그새 키가 훌쩍 자란 나무들이 있지만 ‘한적한 백령골‘에서 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곁에 두고 그도 늙었음을 알았다.

교편을 잡고서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과거는 어째서 ‘돌아보니 한순간’이 되는 것인가, 잔잔히 과거 같은 자전거가 한두 대씩 다니는 사이로 ‘자동차들이 굴러다니고 새 건물이 번쩍이지만‘ 변함없이 ’푸른 도서관 앞의 미루나무‘가 그대로 건재하고, 도서관에는 꿈을 키우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눈을 초롱초롱 밝히고 있을 것이다. 달랑 ‘이불 보따리 하나 지고 집 나섰던’ 그를 따라온, 추억에 젖은 ‘고향마을의 친구’는 잘도 자라서 ‘그 앞을 지나가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변함없이 반겨준다.

그리고 초로의 그를 보고는 ‘- 백령골 촌장’ 어서 오셔요 하고 ‘- 이젠 정말 머리가 희어졌다고’ 하면서 한순간 세월을 순탄히 지나온 족적에 공감한다. 어느 생명은 여전히 푸르고 어느 생명은 검던 머리카락도 탈색이 되었다.

그러나 머리가 희면 늙었다고 할 것인가, 백령골 푸른 소나무 그대로이고 지난 세월의 기억은 그저 엊그제 같은 갑열 촌장의 마음 아직 푸르러라. 함께 세월을 감아온 시인은 소나무처럼 청정하게 그의 곁을 바라본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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