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26)】 송정 바다에서 - 정의홍

조승래 승인 2024.02.15 12:03 | 최종 수정 2024.02.16 11:26 의견 0

송정 바다에서

정 의 홍

어느 태고적부터 살아
이제껏 숨쉬는 너는
생성과 소멸의 아득한 원점
네 앞에 서면
지구 저쪽으로부터
누군가의 울음소리
끝도 없이 밀려오는데
바다를 휘젓던 큰 고래가
부서진 조개껍질로 돌아오는 사이
만남과 이별의 굴레 속을 떠돌며
수 천 수만의 헤어짐을
홀로 감당하느라 너는
먼 억겁의 시간 뒤에도
그 울음 멈추지 못하겠구나

- 『시와 시학』, 2020년 겨울호

지구의 나이와 거의 동일한 바다는 더러는 꽁꽁 얼고 더러는 녹아가면서 “이제껏 숨 쉬는” 바다는 수증기로 증발하여 하늘로 갔다가 구름 만들어 바람 따라 유람하다가 산에다 벌판에다 비를 쏟아놓는다. 실개천이 강이 되고 또 되돌아오는 바다는 “생성과 소멸의 원천”이다. 바다에서도 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물을 섭취하고 번식하고 소멸하는데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은 없다.

“네 앞에 서면 지구 저쪽으로부터” 들려 온다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끝도 없이 밀려오는데” 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측은지심도 생긴다. 바다에서 최고 큰 동물인 고래가 “바다를 휘 젓다가” 후손을 남기고 소멸하고 그 후손은 또 대양을 마음껏 다니다가 수명이 다하여 어느 생물의 먹이가 되고 은빛 “조개껍질로” 부서져 해안으로 쌓여서 “먼 억겁의 시간 뒤에도” 반복될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너무나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한 번의 이별도 견디기 어려운데 “수천 수만의 헤어짐을” 겪으며 살아가는 숙명은 어떠한가. 만남의 기쁨에도 이별의 슬픔에도 나오는 눈물이 어찌 바닷물처럼 짜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처럼 그리움과 한을 “홀로 감당하느라” 바다는 “먼 억겁의 시간 뒤에도” 여생을 “그 울음 멈추질 못하겠구나” 송정 바다여,

수명이 유한한 시인이 “생성과 소멸”, “만남과 이별”의 아픔을 불멸의 바다가 겪어야 할 억겁의 숙제로 남겨 놓았다. 하지만 바다는 일상으로 겪는 일이고 달이 있는 한 파도를 멈출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냥 그렇게 살으라 한다.

강릉에서 안과 원장으로 활동하는 시인의 안광은 태평양 건너 지구 저쪽 우주에까지 가 있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취미생활로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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