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28)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36)

이득수 승인 2024.04.17 08:00 의견 0

“꼭 그런 건 아니야.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옛날의 젊음도 없고 미모도 사라진 두루뭉술한 중년이 되어서 말이야. 딱 한 가지 여유 있는 것이 돈이니 돈이나 한 푼 보낼 수밖에.”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마음으로만 받을 께.”

“그래. 하는 수 없지. 배고플 텐데 어서 내려가서 식사하세요. 복국을 먹든, 떡국을 먹든.”

“알았어요. 당신도 끼니 거르지 말고.”

14. 송도와 진주여자(36)

이튿날 정병진씨까지 셋이 모여 표지의 삽화를 구경하는데 윗줄의 동섬, 현인동상, 고래조형물, 갯바위낚시모습과 시루떡바위 또 가운데 줄에는 해안산책로와 다람쥐, 들꽃에 앉은 나비와 일곱 점 무당벌레, 사철나무의 푸른 잎과 붉은 열매가 그럴 듯 했다. 또 마지막 줄의 암남공원 숲길 세 장면과 남항대교의 야경과 황조롱이의 비상하는 모습도 그럴 듯 했다. 출판사직원이 디자인을 공부했는지 구성과 배치가 다 무난했다.

“잘 됐네. 이 표지가 이 책의 눈이라면 그 눈의 동자랄까 홍채가 될 결정적 한 판이 바로 책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인데 이건 어떨까? 찾고 싶은 명품 그린 웨이 말이야?”

열찬씨의 말에

“명품 그린 웨이라? 기가 막히는 데요. 저도 늘 그런 방향으로 생각은 했는데 단 한 마디로 압축내지 표현은 안 됐는데 기가 막히네요.”

다들 만족하는데

"정계장, 박창훈씨 이제 일이 다 끝난 것 같지만 사실은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해.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고 한번 역린(逆鱗)에 걸리면 그게 바로 죽음이라고 바로 이 작업과정의 용에 해당되는 민선구청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아니 그 보다 마음을 거슬리지 않도록 발간사를 쓰고 개인적인 홍보가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지.”

“예. 그게 사실 제가 가장 걱정되던 부분인데 기획실에 물어보니 연말이라 그간 구청장사진과 이름을 표시하는 출판물의 숫자가 다 소비되어 든 사진도 이름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 그럴수록 발간사를 잘 쓰고 또 어떻게든 구청장의 존재가 드러나도록 연구를 해야지. 자, 두 사람은 스토리와 삽화를 비롯한 전체내용을 최종교정토록 하세요. 나는 발간사와 또 무언가를 연구해서 종무식하루전날 만나도록 하지.”

그리고 며칠 뒤

“자, 이 발간사와 뒷면 표지 앞에 붙일 서구방문안내문에 중점을 두었네. 어차피 사진과 이름이 들어가지 못 하는 발간사는 좀 평이하게 하고 서구방문안내문에 구청장이 홍보될 변칙작전을 좀 쓰자는 말이지.”

설 이틀 전의 오후에 셋이 다시 만나 열찬씨가 작성한 인사문과 안내문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우선 창훈씨가 인사문을 읽어보게.”

“예. 찾고 싶은 명품 그린웨이 <송도해안 볼레길>을 찾아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1913년에 전국최초로 개장된 송도해수욕장은 백사청송의 바닷가와 온화한 기후로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면서 케이블카와 구름다리, 유람선과 다이빙대로 오랫동안 부산의 대표적인 유원지로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어린 곳입니다.

우리 구에서는 이 아름다운 해수욕장, 태고의 해안선과 숲길로 이어지는 암남공원일대를 연결한 <송도해안볼레길>에 스토리링의 옷을 입히기로 하고 송도해안산책로와 암남공원일주로, 암남공원대로와 송도해수욕장일원의 4개구간에 각각 지질과 암석,해안단층과 해안난대림, 패총과 장군산의 역사풍물, 해수욕장의 옛 추억과 새 모습등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 수록하였습니다.

서구는 위판량 전국제일의 부산공동어시장과 국제수산물류무역기지가 소재한 수산물집산지이며 4개의 종합병원과 대신공원, 구덕문화공원, 임시수도기념관, 동아대박물관 등 의료, 후양, 역사, 문화시설과 엄광산에서 구덕산,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남항이 있는 살고 싶은 행복도시입니다. 오늘의 탐방을 계기로 우리 서구를 더 살갑게 기억하시고 꼭 한번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서구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 1 서구청장

낭독이 끝나자

“인사문 자체로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합니다.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의 과거의 추억과 오늘의 현황을 단 몇 줄로 자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마지막의 여러 시설물안내도 좋고요.”

정병진 계장의 말에

“그런데 민선시대의 주역이자 명목상 이 책자의 발간인인 구청장개인에 대한 배려가 없잖아? 일반적인 행사에서 하는 기념사와 다름없는 소개에 구청장의 개인적인 정책이나 성과 또는 행정의지, 심지어 사진이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으니.”

“물론 현실적인 문제로 결재를 받으러가기가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 분의 인품이 그런 섭섭함을 나타낼 분은 아닌데. 아무튼 그래서...”

“...”

“이 별도의 관광안내문을 좀 보아.”

두 사람과 눈을 한번 맞추고

“상업용 안내전단, 소위 찌라시처럼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서구방문촉구 안내문을 싣는 거지. 주요시설을 간단명료하게 열거하고 서구에 오면 뭔가 특별한 재미나 이익이라도 있는 것처럼 작성하되 선으로만 그린 만화처럼 팔을 벌려 권총처럼 두 손으로 안내문을 가리키는 동그란 얼굴, 그 가운데에 구청장의 얼굴을 넣는 거지.”

“히야!”

“창훈씨의 감탄에

“그렇지만 청장님이 수용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현실적이인 분이라 새로운 시도나 모험에는 망설일 텐데요.”

“아무튼 아니면 말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한번 붙어보는 거지. 내가 젊어 현직에 있을 땐 민선구청장을 개인적으로 띠우는 일에 좀 심할 정도로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이제 퇴직을 하고난 입장에선 내가 몸담았던 서구와 그 기관장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 물론 개인적으로 나와 잘 통하기도 했지만.”

“예. 받아만 들인다면 참 파격적인 발상이 될 것입니다. 무겁고 딱딱한 관료로서 구청장이 아닌 편안하게 다가서는 도무미같은 구청장 말입니다.”

창훈씨의 말에

“그래 한번 읽어나 보게.”

“예.

부산 서구에 오시면...

0. 가장 싱싱한 생선과 삶의 활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전국최대의 위판장 공동어시장과 국제수산물물류무역기지와 충무동새벽시장, 해안시장이 소재

0. 역사와 교육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과 동아대박물관, 구덕문화공원의 민속생활관과 요육역사관이 소재

0. 문화예술과 휴식의 공간이 있습니다.

▶송도해수욕장, 암남공원, 대신공원, 구덕문화공원, 천마산조각공원, 엄광산, 시약산, 구덕산, 천마산, 남항등 휴식공간이 소재

0.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산대학교병원, 동아대학교병원, 고신의료원, 위생병원등 4개의 종합병원과 많은 전문병원이 소재

낭독이 끝나자

“하나의 사각형 속에 이렇게 잘 요약된 서구의 문화, 관광, 교육, 의료의 자원을 커다란 상품처럼 들고 안내하는 캐릭터의 얼굴에 바로 구청장의 얼굴이 들어가는 건데 어때? 그럴듯하지 않아?”

“예 상당히 획기적이기는 한 데 말입니다.”

머뭇거리던 정병진씨가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마지막으로 집필자의 소개인데 보통 관공서의 책자에 집필자의 이름을 따로 적지 않고 발행자인 구청장으로 대신하는데 이 경우는 문학적이고 창의적인 부분이 많은 만큼 작자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을 구청장님이랑 간부님들이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특히 집필자가 시인임을 명기하면 아름다운 스토리와 부합되는 점도 많고요.”

“그래. 좀 쑥스럽긴 하지만 내 스스로도 야간의 임금을 받고 쓴 업무적인 글이 아니라 자신의 애착과 감성이 그대로 담긴 글을 썼다고 자부하는 만큼 떳

떳하게 집필자를 밝히고 싶었어. 지금까지 인사문이나 발간사, 심지어 구정연설문과 용왕제, 산신제의 축문등 서구청장의 명의로 수백 건을 써왔지만 내 이름을 밝히기는 처음이네. 실로 감개무량하네.“

“예. 그러면 집필자약력은 어떻게 할까요? 서구총무국장, 시인(부산시인협회이사, 부산시공무원문인회회장)으로 기록된 것만으론 좀 아쉬운데 말입니다.”

“우선 시집 <비오는 날의 연가>등 4권, 수필집<달팽이와 부츠>같은 저서가 기록되고 총무국장 앞에 문화관광과장의 약력을 넣어주게.”

“예.”

“그리고 뭐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동아대 국문과출신임과 1994 <문예시대>등단도 넣어주게.”

“예.”

“그럼 아까 부산서구에 오시면의 구청장얼굴이 들어가는 캐릭터를 디자이너에게 부탁하면서 바로 인쇄에 들어가도록 하지. 연말이라 시간이 없으니 결재는 내일 종무식직전까지 받도록 하고.”

“예. 혹시 결재과정에 문재가 생긴다면...”

“정 계장. 보고회 때 보다 훨씬 화사한 지면으로 구성되어 우리 실무자도 놀라는 마당에 다른 사람은 두 말을 않을 거고 혹시 구청장이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게.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에 애착이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전력을 다한 만큼 웬만하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소기의 성과를 나타낸다고. 잘 하면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없는 가장 화려하고 유려한 스토리텔링집이 된다고 집필자자신이 자신한다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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