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0. 계성과 유경④

박기철 승인 2024.04.17 15:16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10-4. 영적 대결을 벌이는 유경

내가 딱 그렇게 한 거지. 정말 네 말대로 지금도 나 말고도 그렇게 나처럼 하는 사람들은 많아. 인간세상에 그런 사주와 선전선동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그렇게 당해서 궁지로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고 앞으로도 많을 거야. 아무튼 그 정도는 약과야. 남의 땅 뺏는 거에서 더 나아가서 나는 시집간 나라 백성들의 신앙마저 바꾸려고 했지. 신앙을 바꾸게 한다는 건 여간 해서는 되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에서 믿는 신을 믿도록 했어. 남편부터 내가 믿는 바알신을 믿도록 했지. 그는 결국 바알 숭배자가 되었어. 나는 백성들도 바알 신을 믿게 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바알 신전을 짓고 바알 동상도 세웠어. 저들이 굳건하게 민든 신이 있는 마당에 내가 바알신을 믿자고 설치니 반대가 많았지. 그래도 나는 밀어 부쳤어. 나도 참 깡다구 쎈 여자였지.

종교인 신앙의 문제를 건드리면 안되는데… 너 참 겁없는 여자였구나. 네가 아무리 잘 사는 나라에서 시집온 왕비였더라도 그렇지… 네가 뭔데 기존의 신앙을 억지로 바꾸려고 했을까? 미련한 거 아니야?

미련하다? 그래 미련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사람은 대개 자신이 믿는 게 최고라고 여기지. 나도 그랬어. 내가 모시는 바알신이 저들이 믿는 신보다 좋다고 여겼어. 그렇게 믿고 세게 밀고 나가니까 그런 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거같았어. 그런데 나한테 아주 강력하게 반대하는 놈이 나오더군. 내가 시집간 나라 백성들은 그를 선지자로 부르더군. 내가 보기엔 그냥 노인네였는데… 그 노인네가 나한테 싸움을 걸어왔어. 영적 싸움 말이야? 내가 믿는 신과 그 노인네가 믿는 두 신들끼리 대결을 벌이자는 거야. 난 그러자고 했지. 우리가 믿는 신이 이길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야. 드디어 대결 장소와 날짜, 그리고 대결 방법이 정해졌어. 대결 방법이라는 게 지금 네가 들으면 좀 황당할 거야. 우리가 믿는 바알신 제단과 저들이 믿는 하나님 신의 제단을 쌓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어느 제단에 먼저 불이 붙느냐의 대결이었어. 불도 붙이지 않은데 어떻게 불이 붙냐고? 신이라면 그런 불가능한 게 기적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긴 거지. 한마디로 신의 기적을 바랬던 거지. 결국 어느 신이 더 센지 인간이 벌인 신들의 대결이 벌어졌던 거야. 대결의 결과는 어땠을까?

아니 어떻게 그런 황당한 대결을 벌이자고 할 수 있지? 우리네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 허! 어처구니가 없네. 나는 참 어이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어디가 이겼다는 거야? 네가 믿은 바알신이 내려와서 먼저 제단에 붙을 붙여 주었나?

어느 쪽이 이겼을 거 같아? 일단 우리 쪽에서는 850명이나 사제들이 제단에 가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어. 우리의 기도에 불로서 응답하시라고… 아침부터 처절하게 기도했지만 점심 때가 되어도 불은 오지 않았어. 저 쪽 제단도 마찬가지였어. 우린 좀 기도의 기력이 떨어지나 싶었는데 저 쪽에서는 끈질기게 기도를 계속하더군. 그러더니만 저녁 때 즈음에 불이 저들의 제단에 내렸어. 저들의 하나님이 응답했던 거겠지. 제단은 불타 올랐어. 이에 감흥받은 사람들은 신명이 났지. 그런데 저들의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다더군. 저 이방신을 믿는 사제놈들 850명을 하나도 남김없이 살리지 말고 죽이라고… 그렇게 도망도 못가고 우리쪽 850명은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어. 물론 나도 이 사건 이전에 저들 선지자를 많이 죽이기도 했지만 저들처럼 한꺼번에 무참히 죽이지는 않았어. 그 살해극은 영적 대결 승리에 이은 처참한 복수극이기도 했어.

아니! 영적 대결에서 이겼다고 그렇게 사람을 마구 죽일 수 있지? 저들의 하나님이 그렇게 죽이라고 시켰나? 그건 아니잖아? 지도자가 영적 대결에서 이겼으니 죽이라고 시킨 거잖아. 그런데 너도 신앙적 이유로 사람들을 많이 죽였구만. 제국의 군주였던 나도 정복전쟁을 벌이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종교적 신앙적 이유로 사람을 마구 죽이지는 않았지. 우린 아주 단순무식했어. 우리한테 더 이상 덤비지 말라며 죽인 거야. 우리에 대해 두려움과 무서움을 가지도록… 권력적 이유로 죽인 거지. 종교나 신앙은 문제되지 않았어.

넌 그랬겠지. 아무튼 나는 그 기도와 살해의 현장에 있지 않았어. 그냥 왕궁에 있었어. 남편인 왕이 제단이 놓인 산 아래서 영적 대결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지. 그러다 영적 대결의 승부 여부와 우리 쪽 사람들이 850명이나 무참히 살해당한 사실을 알고 놀라며 나한테 와서 보고해서 알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솟더군. 영적 대결에서 우리가 진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쪽 사람을 죽인 저들의 만행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살해 명령을 내린 그 지도자 노인데 수배 명령을 내렸어. 나 또한 잔인하게 복수하며 응징하고 싶었지. 과연 나는 그를 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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