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35)】 포도알마다 씌워줄 보라색 털모자를 뜨겠습니다 - 김선아

조승래 승인 2024.04.18 08:00 | 최종 수정 2024.04.30 16:03 의견 0

포도알마다 씌워줄 보라색 털모자를 뜨겠습니다

김 선 아

지난여름, 당신이 오신단 소식 듣고 냉장고에 쟁여두었던 청포도. 여태껏 먹지도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달큼하고 싱그럽던 당신. 문 열 방법 없는 북천 안에서 저체온증 앓고 계신 건 아닐까 겁났습니다.

당신 오시지 않을 거란 소식조차 끊기자,

내 몸속에 우박 내리고 숨소리마저 매얼음 씹은 듯 자꾸 설컹거렸습니다. 싱싱고를 그 북천 문전으로 배송하고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 기다려 볼까 합니다. 포도알 체온 되살아나기를 끝끝내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 『동행문학』, 2023년 겨울호

시인의 기다림은 ’지난여름‘부터 시작되었다.
당신 오신다는 소식에 준비한 청포도가 냉장고 안 가득, 아직까지 먹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온다는 믿음이 더 컸다.

달큼하고 싱그럽던 당신이 냉장고 안에서는 문 열 방법 없는 청포도처럼 ’문 열 방법 없는 북천안에서 저체온증‘으로 앓고 있을까 겁났다.

못 온다는 기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시지 않을 소식조차 끊기자‘ 내 몸속에 얼음덩어리인 우박이 내리고 꽁꽁 언 얼음 씹듯 숨소리도 설컹거린다.

이제 시인은 당신이 있는 그 북천으로 싱싱고를 배송해 볼 셈이다. 이심전심 마음이 전해져서 기적같이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기다리기로 했다.

’포도알 체온 되살아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인이 말하는 끝은 생애 마지막까지가 아니겠는가, ’달큼하고 싱그럽던 당신‘ 인데.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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