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장전입’이라는 말, 이제는 좀 없애버리자. 도대체 구시대의 유물 같은 이 국가주의적 용어를 언제까지 쓸 것인가? 거주이전의 자유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위장전입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거주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곳에 나의 주소지를 정하면 된다.
'위장전입'은 대체로 실제 살지 않는 곳에 주민등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법상의 주소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 주민등록의 문제는 국가가 주민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순수하게 국가 행정상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쁘게 말하면 국가에 의한 주민감시의 수단에 불과하다.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곳을 공법상의 주소로 삼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이 거주지를 정할 수 있게 하였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곳에 거주할 수 있으며, 또 자기가 원하는 곳을 자신의 주소지(주된 거주지)로 할 수 있다. 이를 조금만 확대하면 누구나 자신의 사법상인 주소지와 공법상의 주소지를 달리 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부산에 거주하면서 국가행정과 관련된 경우에는 나의 주소지를 서울로 정하는 것도 나의 기본권 중의 하나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공법상의 주소를 실제의 거주지와 달리 함으로써 어떤 다른 법률을 위반한다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주민등록을 달리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한다면 그건 법 규정에 위반하여 비거주자가 거주자인 것처럼 꾸며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면 된다. 혹은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실제 살지도 않는 곳에 주민등록을 했다면 실거주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학군에 관한 교육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하면 된다.
이 경우들은 모두 실거주자를 중심으로 규율하고 있는데, 누가 실제 거주자인지 파악하기 귀찮으니까 일단 주민등록법상의 주소를 중심으로 그걸 판단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건 주민등록을 그곳에 했기 때문에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민등록을 이용하여 다른 법률을 위반하였기 때문에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의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민등록을 어디다 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주민등록을 하여 어떤 법률을 어떻게 위반하였는가를 따져야 한다. 여기에 ‘위장전입’ 운운 하면서 그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는 따지지 않은 채 그저 주민등록법상의 주소가 어디였느냐 라는 것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정말 가당찮은 일이다. 제발 국가와 행정의 편의를 중심으로 보지 말고, 사람을 중심으로 그리고 우리의 인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기왕에 말 나온 김에, ‘위장전입’ 문제를 몇 차례에 걸쳐 비판해야겠다. 박정희의 망령이 사라진 지 55년이나 지난 이 대명천지에 문재인 대통령의 발목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발목을 잡아 흔들고 있어 정말 화가 나기 때문이다.
1962년 제정된 주민등록법은 원래 ‘위장’ 전입-허위신고에 대해서는 3천원이하의 벌금에 처했다가 1968년 이 규정은 2중으로 주민등록한 자가 허위신고를 한 때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월남전 등으로 정치적 불안을 느낀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긴급조치와 같은 살벌한 통치체제를 만들어낸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 ‘위장전입’을 다시 형사 처벌하도록 한 주민등록법의 개정이었다.
실제 1975년 7월 주민등록법의 개정을 통해 강력하게 부활한 위장전입 처벌조항은 곧이어 제정된 민방위기본법과 함께 국가를 완전한 병영체제로 장악하려는 박정희의 의도가 노골화된 입법이었다. 그 처벌수준을 예비군 허위신고와 마찬가지 수준인 3년 이하 징역 또는 15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상당히 무거운 벌칙(제21조 제2항 제1호)으로 만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거기다 이 주민등록법은 사법경찰이 ‘간첩의 색출, 범인의 체포 등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민의 신원 또는 거주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때’에는 언제든지 주민등록증의 제시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추가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간첩이 아님-부랑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정 이유는 간단하다.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주민등록을 거주사실과 일치시키고 민방위대, 예비군 기타 국가의 인력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총력전 태세의 기반을 확립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마치 유신헌법이 그러했고 긴급조치가 그러했듯 이 주민등록법상의 위장전입에 대한 처벌조항은 간첩을 잡는다는 명분하에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을 수색하여 잡아들이거나 그들이 도망갈 곳 없이 만드는 것, 그래서 국민들을 철저하게 복종하는 무력한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이 주민등록제도는 그 자체 전대미문의 엄청난 국민감시체제를 구성한다. 지금이야 그냥 주민센터만 가면 간단히 전입신고 되지만, 한동안 반장-통장의 확인도장이 있어야 전입과 퇴거신고가 가능했다. 최말단의 행정단위인 반장의 대면 확인이 있어야만 전입하고 또 퇴거할 수 있었던 셈이다.
주민등록을 하고도 오랫동안 반장과 통장의 시선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공민권 자체를 상실하고 만다. 또는 주거부정자가 되어서 조그마한 범법사실에도 그냥 유치장에 끌려가고 또 쉽사리 구속되는 일종의 호모 사케르 비슷한 지위에 빠져 버린다.
박정희의 통치가 18년까지 이어지고, 부마사태가 그렇게 치열하였음에도 궁정동에서 시바스 리갈 마시며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치밀한 국민감시체계가 존재하였고 그것을 권력의 피라미드를 따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때의 위장전입 처벌은 민주인사 탄압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부동산 투기나 학군 위반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 운운하는 것은 별로 의미 없다. 그때에도 ‘자녀들의 학군을 위반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전화를 놓기 위해, 부동산매매를 위하는 등 주로 위법·탈법 등의 수단으로’ 위장전입이 흔해 행해져 왔다는 비판은 있었다(동아일보, 1975. 6. 19). 지금이랑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목적을 위해 위장전입이 횡행했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문제’의 핵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학군 판정 기준이나 신분 확인의 방법, 전화 가설이나 부동산 매매 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사람을 일정한 지역(주소-보다 정확히는 주민등록지)에 묶어두고 그것을 떠날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봉건적 제도에 있다. 마치 농노를 땅에 묶어두고 그 땅을 벗어나면 처벌하였던 중세처럼, 이 주민등록법은 사람을 주민등록지에 붙박아두고 그 규제를 벗어나면 중형에 처하는 또 다른 농노제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형사처벌은 물론 심지어 자녀의 취학, 전화 가설, 부동산 매매 등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주거미상자가 되어 사법경찰관에게 잡혀가기도 했다.
박정희는 이런 제도를 바탕으로 18년을 집권하였다. 그 이후 전두환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 폭력성은 조금씩 희석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우리는 이 주민등록법에 순응하면서 국가의 명령에 알게 모르게 순치되어 간다.
(이 칼럼은 한상희 교수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한 교수의 승낙을 받아 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