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16) 인류의 미래는 기술 아닌 절제에 달렸다

진재운 승인 2024.04.04 12:46 의견 0

한때 게임은 놀이였지만 가상으로 빠져들면서 중독으로 변했습니다. 제 생각이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지나고 엔비디아의 earth-2를 접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3,100조,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입니다. 한 개 기업이 우리나라 코스피 전체 시총 2,200조를 훌쩍 넘어섭니다. 그만큼 엔비디아는 지금 세상의 무서운 아이콘입니다.

이를 수십 년간 이끌고 있는 CEO인 젠슨 황은 기술낙관주의자입니다. 기술이 인류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지요. 그가 내놓고 있는 earth-2를 구글의 earth를 넘어서 실제 지구를 그대로 복사, 복제해 가상의 지구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작업에 깊은 인사이트를 주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쨌든 젠슨 황이 earth-2를 기반으로 기상이 아닌 기후변화를 시뮬레이션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니 선언한지 2년이 지났습니다. 기존 AI가 1년 걸리는 작업을 1시간 안에 해결하는 기후모델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일명 FourCastNet입니다. 기상도 아닌 기후예측은 결국 파국적인 기후를 미리 내다보고 지금 무엇을 할지 말지를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단순하게 연결 짓자면 ‘게임이 지구를 구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 기상이 내다보는 5~6일보다 훨씬 앞서 1~2개월 먼저, 아니 1년을 먼저 거대 태풍의 발생과 북상을 예측한다고 해서 모든 대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몸과 지갑은 옮길 수 있을지언정 터전은 그대로 방치되고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답은 거대 태풍이 만들어지는 지구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인류 스스로의 절제가 답인 것이지요. 기술은 편리이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는 늘 그것을 증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늘 기술낙관주의에 이끌려 흘러왔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그렇고, 화성 이주를 추진 중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그렇고 젠슨 황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구는 멸망해도 인류는 살아남는다.’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희망적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섬찟한 말로 느껴집니다. 저는 젠슨 황의 이 도전이 자칫 인류 전체에 기술낙관주의를 과도하게 불어넣어 당장 줄이고 멈춰야 할 것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우를 범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면서도 기후변화를 예측하려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쨌든 게임을 인류애로 확산 시키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지금의 인류는 기술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것만은 분명합니다. 떨어지기 싫으면 등가죽을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늘어져야 합니다. 떨어지면 곧바로 뇌진탕이든지 아니면 호랑이 밥이 됩니다.

진재운 감독

<KNN 기획특집국장·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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