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29)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37)

이득수 승인 2024.04.18 08:00 의견 0

“정 계장. 보고회 때보다 훨씬 화사한 지면으로 구성되어 우리 실무자도 놀라는 마당에 다른 사람은 두 말을 않을 거고 혹시 구청장이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게.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에 애착이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전력을 다한 만큼 웬만하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소기의 성과를 나타낸다고. 잘 하면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없는 가장 화려하고 유려한 스토리텔링집이 된다고 집필자자신이 자신한다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서상균

14. 송도와 진주여자(37)

그날은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우회사무실에 들러 늦게까지 훌라를 치고 돌아오다 전화를 한번 해보려다 참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영순씨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만나서 반갑고 행복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세요.”

옥자씨의 문자가 왔다. 남이 보더라도 별 특이점이 없도록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참으로 미묘하고 복잡한 심정, 특히 미안하고 죄스러웠지만 달리 표현하기도 그렇고 해서

“감사합니다. 이하동문입니다.”

밋밋한 문자를 보내고 종일을 조용하게 보내고 모처럼 일찍 퇴근한 슬비와 김서방에 영서와 영순씨와 다섯이 돼지갈비집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의 정석이와 며느리와도 통화를 하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잠을 청했다. 그야말로 꿈같은 한 해, 다사다난한 한해가 지나간 것이었다.

2011년 새해는 열찬씨가 환갑을 맞는 해였다. 크게 내세울 것은 없어도 42,125Km 마라톤 풀코스를 일단 완주한 것 같았다. 요즘은 환갑을 안 해먹는 추세라 뭐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당신 환갑까지 살았네. 축하해요.”

“고마워. 당신덕분에.”

아내의 축하를 받았고 서울의 정석이로부터는 환갑잔치대신 무엇을 할지 구정에 내려갈 때까지 생각해놓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고 그새 영순씨는 해외여행이나 한 코스 더 하는 것이 무난하겠다고 슬비와 의논이 되어 한 오백만원이 넘는 경비를 아들딸이 분담해서 내놓겠다고 약속이 된 모양이었다.

<송도해안볼레길 스토리텔링>은 이제 원고작성이 끝난 만큼 따로 출근을 않아도 되지만 이미 1월말까지 열찬씨의 노임이 채무확정되었다고 해서 하루걸러 하루정도 구덕문화공원으로 올라갔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 등산사마 산이나 조금 타다 내려오고 현장에 간다며 송도새마을금고에 가서 김수생이사장과 바둑을 두다가 싱싱한 회와 매운탕, 소주를 즐기며 유유자적했다. 굳이 남은 일이라면 스토리텔링집의 삽화가 적절한지 더 좋은 사진이 없는지 검토하고 표지의 디자인이나 색도를 점검하는 정도였는데 그것도 젊은 출판사직원이나 박창훈씨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2,3일에 한 번씩만 들렸다. 옥자씨의 전화도 자주 오지 않고 어쩌다 통화를 할 때도

“난 잘 있어요. 날씨 추운데 당신 몸 관리 잘 하세요.”

간단히 한두 마디 하도 끊어 서로 부담이 없었다.

새해 들어 아무 걱정거리도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 환갑을 맞은 올해는 정말 태평무사한 한 해가 되어 그간 마음만 앞서 벼르기만 했지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을 다시 보고 오래 미루어온 장편소설, 아니 아버지로 부터 들은 이조 말에서 시작해서 일제와 해방을 거치고 보릿고개와 새마을운동을 거쳐 마침내 고속철부지로 마을이 사라지게 될 고향 버든마을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이 부산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온 이야기를 <신불산>이란 이름으로 써보겠다는 생각이 마침내 현실적으로 착수될지도 모르겠다며 아주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서두를 구상하기도 했다.

구정을 앞둔 어느 날 청장님의 전화라는 홍춘호비서실장의 들뜬 목소리에 이어

“아이구, 국장님. 고생했습니다.”

“예.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요?”

“예. 오늘 스토리텔링집이 나와서 지금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 예. 맘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름 하느라고 했는데.”

“예. 대성공입니다. 어제 제가 출장간 사이 미리 배포한 모양으로 의회와 동사무소는 물론 지역유지들이 멋지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송도주민들은 아주 경사가 났다는 표정이고요.”

“다 청장님 덕분입니다. 청장님의 복이기도 하고.”

“무슨 말씀? 우리 국장님의 송도에 대한 애착과 멋진 문장 덕분이지요. 사실 중간보고를 받을 때까지 그게 제대로 된 책이 되겠나 싶었는데 완성품을 보니 완전히 놀랄 따름입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어디서 그런 예쁜 사진들을 구해서, 참으로 아름다운 화보집 같기도 하고요.”

“예. 사진사 김종현씨도 고생했지만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인터넷으로 많은 부분을 보완했지요.”

“예. 아무튼 고맙고 식사 겸해 오랜만에 소주라도 한 잔 하입시다. 비서실과 일정을 조정해서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정병진 계장과 박창훈씨를 만나러 가는데 구청입구에서 만난 박기도씨가

“아이구, 국장님! 대성공입니다. 서구의 기획가 홍보, 출판의 역사에 새 지평이 열렸다고 난리랍니다.”

악수를 청하면서

“존경합니다.”

하는데 정병진 계장과 박창훈씨가

“국장님!”

하고 다가와

“고생했제? 두 사람. 평판이 좋다면서.”

“예, 감사합니다. 국장님. 저도 제 자신이 이렇게 아름다운 책자를 발간할 줄 몰랐어요.”

박창훈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책자 두 권을 건네주었고 표지부터 죽 훑어보는 열찬씨에게

“청장님, 부청장님이 대단히 만족하신 모양입니다. 과장, 국장님도 고맙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고요.”

“그래?”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들이지만 언제나 눈치가 빨라 중간보고의 반응이 시원찮자 어느 새 저만큼 물러서서 관망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청장실에 최종결재를 들어갔을 때 뒷표지 앞의 관광안내문을 보고 우리 청장님이 ‘아이구, 우리 가열찬시인께서 갑장이라고 날 끔찍이 생각해주시는군. 절대로 상업적인 글은 안 쓰시는 분이!’하면서 끌끌 웃더니 대단히 좋은 기획이지만 자기 얼굴만은 빼자고 했습니다.”

“그래?”

“또 부구청장님도 정말 이렇게 훌륭한 책, 멋진 선배는 처음 본다고 우선 스토리하나하나를 매달 한 건씩 1번부터 48번까지 서구소식에 연재하라고 지시하고 기회가 있으면 국장님을 따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하고 출판사에 들렀다. 관계자랑 같이 저녁을 하자고 약속하고 송도에 들어 김수생이사장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나 그도 책자가 참 아름답다고 탄복했다. 공무원퇴근시간에 맞추어 바둑을 끝내고 충무동의 횟집에 오니 정병진계장, 박창훈씨, 사진사 김종현씨외에 박기도씨와 이재식씨도 참석했다. 어차피 두 사람만 더 보태면 독수리 5형제가 다 참석하니 신년회사마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집이야기가 끝나자 이내 연말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재식계장이 아슬아슬하게 동장승진에서 밀려나 올해 하반기 7월에는 틀림없이 승진할 것이고 잘 하면 박기도, 정병진씨도 연내 승진희망이 보이며 어떤 변수가 생기면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식사 중에 각자 사무관이 되면 박창훈씨를 잘 챙기라고 하니 그러마고 했다. 노래방까지 마치고 택시를 타는데

“국장님, 아버지라고 생각할게요. 가끔 놀러 오시고 혹시 잔심부름 시킬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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