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4·10 총선의 역사적 의미

조송원 승인 2024.04.05 10:30 의견 0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치인이 달라져야 정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내용(제1조①항②항)을 가사로 만들어 노래 부르는 국민은 우리 말고는 전 세계에 없다. 이만큼 우리의 정치의식은 세계에서 독보적이다.

그렇다면 ‘정치가가 달라져야 정치가 달라진다는 생각’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국민이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 곧 주인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정치인은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임시로 위임받은 대리인, 곧 머슴이다.

머슴이 위임받은 권력으로 행하는 정치가 잘못되었으면, 주인의 탓인가 머슴의 탓인가. 소가 수레를 끈다. 수레가 나아가지 않으면, 수레의 잘못인가 소의 잘못인가. 팥을 심어놓고 콩을 수확할 수는 없다. 가시나무를 심어놓고 벚꽃 구경을 바랄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팥이든 콩이든, 가시나무든 벚나무든, 그들은 자아실현을 할 뿐이다. 잘못 심은 주인만 결과에 허망해할 뿐이다.

머슴을 잘 고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주인은 응당 머슴을 검증하고, 머슴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일 못지않게 주인은 머슴을 잘못 뽑은 판단에 대해서 반성하고, 판단 잘못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실패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결국 국민(유권자)이 달라져야 정치인이 달라지고, 달라진 정치인에 의해 드디어 정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인류의 대부분의 역사는 지배자/피지배자 관계였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우두머리는 그 구성원들의 권리를 임시로 위임 받은 대표자일 뿐이라는 사상이 실현된 지는 100년 남짓이다. 불과 서너 세대의 기간에 우리 사회관계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 몸(신체)은 1만~2만 년 전 수렵채집인의 진화 단계와 별반 다름이 없다. 우리의 마음(의식)은 얼마나 진화했을까? 수만 년의 지배자/피지배자 관계가 서너 세대 기간에 ‘평등한 관계’라는 의식으로 정착이 되었을까?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우두머리에 대한 신민의식(臣民意識)의 강고한 뿌리는 튼튼한 것 같다. 내가 권리를 위임해 준 대표자가 아니라, 타고난 지배자이다. 따라서 나는 그의 신하 혹은 백성이라는 의식이다. 특히 주권자인 국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은 나이에 비례해서 옅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열 또한 세계가 인정한다.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교육은 의식의 변화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한다. ‘민주공화국’을 안다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실현의 전 단계이다. ‘관념의 모험’일지언정, 알아야 언젠가는 ‘아는 그 내용’을 실현할 수 있는 법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가슴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잘났든 못났든 있든 없든, 인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가 아닌가.

문제는 ‘행복추구권’이 ‘선언적 권리’라는 것이다. 입법의 방침(방향)일 뿐, 직접 국가권력을 구속하지 않는 권리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국회에서 입법을 하면 행복추구권은 국가에 직접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4·10 총선은 ‘국민주권’과 ‘행복추구권’에서 대한민국 오천 년 역사에서 획기적인 분수령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는 잘못 뽑은 윤석열이란 ‘머슴’이 반면교사 역할을 똑똑히 했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주권이 호흡하는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조국 대표는 행복추구권이 선언적 권리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권리가 되도록 입법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거 하지 마세요.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마십시오. 종한테 주인이 절하면 종이 버릇 나빠져요. 농담이 아니고 진짜 그렇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4월 4일 부산 서은숙 후보자 지지 연설을 하려 할 즈음에, 젊은 지지자가 단상 밑에서 이 대표에게 큰 절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당황해 하면서 맞절을 하고 나서 한 발언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 정치인의 추종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특정 정치세력에게 지배받는 피지배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한 이 나라의 주권자이고, 정치인과 정치세력에게 우리의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달라고 일을 잠시 맡긴 것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부산시 롯데하이마트/2014.4.4.)

“여러분이 정치에 불신을 가진 거 이해합니다. 만족스럽지 않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치를 외면하면, 우리와 관계없는 일처럼 생각될지 몰라도, 정치는 우리 후배님들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의 일자리를 결정하고,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하고, 여러분이 자녀들의 미래를 통째로 결정합니다.

정치는 남의 일 같아도 이 사회의 자원과 기회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배분의 권한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바로 선겁니다.

(…)싫다고 외면하면 기존의 체제를 옹호하는 것입니다. 방관과 외면은 중립이 아닙니다. 방관하고 외면하는 것은 현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고, 현 체제가 계속되라고 응원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정치는 세상의 자원을 배분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관심한 자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걸 아는 소수의 정치인들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정치를 혐오하면 할수록 기회가 커집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중앙대학교/2014.3.26)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이재명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자 지지 연설에 수없이 반복·설파했다.

“검찰독재 조기 종식과 더불어 조국혁신당 양대 기준 중 또 다른 하나는 제7공화국 건설입니다. 제7공화국 핵심 내용인 사회권 선진국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권이란 표현이 생소하실 수 있습니다.

사회권이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누릴 권리를 말합니다. 그동안 복지는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도움이 필요한 국민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정책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은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국회 소통관/2014.4.4)

4·10 총선의 결과는 아마 200석, 아니 그 이상으로 야권이 압승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관견으로는 야권의 압승보다 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첫째로 ‘지배자/피지배자 관계’가 ‘대표자와 그 구성원 간의 평등한 관계’로 확고히 정착했다는 것이다. 주인/머슴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이는 지배자/피지배자 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표현일 것이다.

이 관계 변화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은 정치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다. 총선 결과에 관계없이 이 점,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 받을 것이다.

둘째로 행복추구권 혹은 사회권의 전면 등장이다. 사회권에 대한 조국의 진정성은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조국은 법학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제민주화 등 사회개혁을 이론적으로 꾸준히 추구해 왔다. 그것이 기득권 카르텔의 표적이 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기득권 카르텔의 장벽이 높을지라도 에스컬레이터에 일단 올라타면 뒷걸음질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조국 대표는 사회권을 에스컬레이터에 올려놓았다. 역사는 이 점에서 조국을 기억할 것이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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