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6)
다시 삽을 들었지만 일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일단 부면장이 해결을 하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해결은 나겠지만 뭔가 찜찜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났지만 일단 이장부터 찾아가 단판을 벌인 후에 면사무소로 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정작 물이 해결된다고 하니 이제 이장이나 마을사람과 얼굴 붉힐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 한참이나 엎드려 땅을 파는데
“외삼촌!”
시꺼먼 얼굴의 또식씨가 나타나 벙글벙글 웃으며
“면사무소에서 연락왔심더. 네 집 다 수돗물 준다고 말입니다.”
“그래? 니 새이하고 면에 갔는데 우찌 니가?”
“면사무소고 지서고 그래도 명촌 등말리라 카면 이 박또식이 아입니까? 청년회도 나가고 의용소방대에도 나가고 또 면사무소에 후배들도 많고...”
“그래서?”
“우리 후배 면직원한테서 연락이 왔심더. 명촌이장하고 일단 이번 네 집까지는 물을 주기로 말입니다. 대신 집집이 돈을 한 백만 원씩 내어야 된답니더.”
“돈을?”
“예. 말하자면 권리금 또는 가입비지요.”
“너거도 집 지을 때 냈나?”
“예. 엄마 집처럼 처음부터 있던 집을 빼고 들어온 집은 다 냈는데 우리는 그 때 50만원을 냈지요.”
“그래. 가입비야 내는 기 문제가 아니지. 요는 물을 묵을 수 있나 없나가 문제지.”
“아무튼 외삼촌 참 대단합니다. 그 골 아픈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다니요.”
“그 기 무슨 말이고?”
“우리 이장님이 상북면전체서도 알아주는 유집니더. 이장을 할 사람이 어중간해서 하지만 무슨 기념식이나 졸업식 같은 거 하면 꼭 참석해서 표창도 하고 인사말씀도 하시고.”
“그렇구나.”
“그런 어른을 단 한 방에.”
“마, 시끄럽다. 내 생이 전화해라. 점심이나 묵으러 가자.”
“형님은 지금 잘 낀데요.”
“뭐 잔다꼬?”
“예. 밤새 주유소 알바하고 아침에 형수 식당에 들러서 아침장사 정리하고 또 외삼촌 동네일 봐 주고...”
“아이구, 내가 괜히 와서 우리 생질들을 잡는구먼.”
“아, 아입니더.”
둘이 언양까지 점심을 먹으러가는 김에 오늘은 부산 집에 가기로 하고 미리 짐을 챙겼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인부하나를 데리고 들이닥친 또식씨가 열찬씨를 기다리다가
“외삼촌 수도공사 끝나고 수도꼭지 개통식하면 점심 사달라고 할라캤는데 마침 오시네요.”
하며 여기저기 물을 틀어보였다. 열찬씨가 영순씨에게 전화를 하자
“내가 내일 외숙모 오시기 전에 공사 마친다고 얼매나 서둘렀는데.”
하고 빙글빙글 웃더니
“외삼촌 더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점심 묵어보고 하지요.”
“그래 가자. 내가 밥 사꾸마.”
“아임더. 우리 공장에 갑시더.”
해서 산전리 공장으로 갔는데 작업장 한구석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 하나가 드럼통 위에 얹혔고 호동씨와 영감이 하나는 전선을 감았던 심으로 만든 둥근 테이블에 뭔가 상을 차리고 하나는 도마 위에 고기를 썰고 있었다.
“야! 한 마리 했나?”
“야. 날도 덥지만 삼촌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몸보신을 좀 해야지요.”
활짝 웃는 얼굴의 검은 빛이 순간적으로 개기름이 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며
“그래 여름철 보신은 왕왕 이상이 없지.”
제일 맛있는 갈비 살을 한 점 찍어먹으며
“자 영감님.”
연변영감님과 건배를 하는데
“외삼촌, 마지막 희소식입니다. 오전에 준공허가가 났답니다.”
“뭐라? 수고했네. 이 사람아.”
“뭘요. 설계사가 고생했지요.”
하는 순간 젊고 여릿여릿한 설계사 경일씨가 코를 킁킁거리며 들어섰다.
일요일 아침 영순씨가 부엌살림을 가득 싣고 오는데 기어이 자신들도 따라온다면서 장모 순란씨와 처형 미혜씨가 따라나서며
“고모는 참 아무데나 잘도 나서제? 원래 딸내미 이사하는 데는 안 가는 법이다.”
“야, 그기 어느 나라 법이고 니가 몸이 아파 정신이 해까닥 하나?”
오랜만에 만난 고모와 조카사이에 재미사마 서로가 서로를 놀리는 것이었다. 가져온 물건을 정리하고 부엌을 깨끗하게 정리하자
“여가 부산 집보다 낫겠다. 영순이 니는 무슨 복이 집을 두 개나 다 지니노?”
“언니야, 그런 말 하지마라.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 째진다고 돈이 째치서 못 살겠다.”
“그래도 우리 사촌간에 이런 별장 있는 사람은 니뿐이다.”
“세상에 열다섯 평 짜리별장이 어딨노? 그냥 전원주택 아니 농막이다.”
하며 차를 마시고
“보자, 마 점심을 비싼 식당에 가지 말고 여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
영순씨의 말에
“그래 삼겹살은 내가 살 게. 너거 조카들 하고 일꾼들도 다 불러라.”
“아이구, 우리 언니는 부잣집 마나님이라고 목통도 크제?”
“죽고 나면 썩어질 몸, 그렇다고 돈을 지고 갈 것도 아이고.”
하고 셋이 메가마트로 가서 삽겹살과 양념장, 술과 음료수도 사오고 혹시 돼지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있을까 봐 소고기도 조금 사와서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포식을 했다.
유난히 마당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심해 가만히 살펴보니 바로 화단 앞에 있는 들깨 밭에 하얀 꽃이 만발해 셀 수도 없이 많은 벌과 나비, 심지어 커다란 파리까지 그 조그만 꽃에 들어붙는 걸 보면 아무리 꽃이 작아도 명색 흰 꽃이라 아카시아처럼 꿀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배추는 한 20일 뒤에 지금 뒤지는 땅에 모종을 사다 심기로 하고 정면의 길이 10미터 폭 2미터가 넘는 화단에 씨를 뿌렸다.
“화단이 넓으니 무시 심기는 좋지만 우째 화단 자체의 맵시가 없다. 꼭 덩치는 산만하고 맵시가 없는 여자처럼 말이다.”
영순씨의 말에
“가시나, 시방 니 내말 하는 거제?”
영순씨보다 덩치가 훨씬 큰 미혜씨가 웃으며
“시래기무시가 맛도 좋지만 암환자한테도 좋다던데...”
좀 심으면 안 되겠냐는 투라 전에 한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열찬씨가
“그건 저 뒤쪽 우물 양쪽의 화단과 공터에 심을 건데 내가 씨를 사다 놨으니 처형 손으로 함 심어보소.”
하니
“그라까?”
신명을 내었다. 준공허가가 났다는 소리를 듣고
“아이구, 인자 내 동생이 여게 저게 피난 안 댕기도 되겠네.”
하면서 검정비닐봉지를 꺼내주는데
“뭥교?”
“머구다. 울딸 밑에 심어라.”
해서 호미를 들고 기연씨집쪽 축대 밑에 머위를 심는데 마침 놀러온 금찬씨가
“동생 니는 뭐 하노?”
“머구 심심더.”
“머구는 왠 머구를?”
“장촌서 가왔심더.”
“미쳤나? 이놈의 가시나가! 명촌에는 어데 머구가 없나? 개작은 데 놔두고 말라꼬 가왔노? 마 팍 빼 떤지뿔라!”
하고 성을 내다 제부 고서방과 눈이 마주치자 멈칫했다.
“처형은 와 그래 왕성같이 골로 내요? 이래 봐도 내가 우리처형 줄라꼬 밤새 낚시를 한 고기를 몽땅 들고 왔는데.”
“낚시? 요새도 고기 무는 못이 있덩교?”
“모단못.”
“그라면 그 불루길인가 뭔가 묵을 것도 없고 손만 많이 가는 고기?”
“그래도 언양, 상북바닥에 우리 처형만큼 불루길 잘 다루는 사람도 없지.”
“아이구, 또 처형 부려묵을 연구네.”
하고 다듬는 사이 전기밥솥에 밥을 하던 영순씨가
“아이구, 일은 또 내일만 늘었네.”
하면서 재빨리 매운탕 꺼리를 챙겼다. 뼈를 빼고 나면 거의 먹을 것도 없는 불루길매운탕이지만
“그래도 국물하나는 시원하네.”
여섯 식구가 부지런히 숟가락질을 하다
“너거 배추는 얼매나 숭굴라 카노?”
덕찬씨의 말에
“땅만 빨리 매조지면 한 200포기는 되어야 두루두루 김장을 하지요.”
“그래. 그라면 우리가 모종 부을 때 두 판 더 붓지.”
덕찬씨가 신이 나는데
“가시나가 미쳤나? 택 밑에 누나 두고 장촌까지 갈 끼 뭐 있노?”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늘 티격태격하는 자매를 바라보다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며
“명촌형님이 참 이상하제?”
“와?”
“내가 배추모종이야기를 몇 번 해도 씨 값 많이 든다고 입도 뻥긋 안 해서 우리 거는 우리가 붓거나 나중에 모종을 살까 생각했는데 장촌서 해준다카이 마 질투가 나서 말이지.”
하고 영순씨가 웃자
“그래 이미 다 심은 머구를 빼떤지뿐다는 것 좀 봐라.”
미혜씨의 맞장구에
“아이구 골 아파라.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영순씨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 기 아이라 찬스다. 뭐 아쉬운 것이 있을 때는 시누 둘이 다 불러놓고 이바구를 해라. 그라면 서로 할라 칼 끼다.”
미혜씨가 실실 웃는 것이었다.
하얀 들깨꽃의 향기가 수그러들면서 정면의 3번 화단에 심은 김장무가 소복하게 싹이 트더니 이내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가는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오른 쪽 장독간 아래의 1번 화단은 비스듬하게 경사진 마당과 같은 각도에 대문에서 보면 앞쪽은 좁고 뒤쪽은 넓은 역3각형이라 도무지 맵시가 나지 않아 우선은 그냥 두기로 하고 정문의 왼편은 평토작업 때 생긴 돌, 소나무둥치, 대나무뿌리를 비롯한 온갖 폐기물을 빼내고 대문 쪽에 커다란 돌로 석축을 쌓아 성토한 밭이었다.
그냥 밭농사를 지어도 되지만 전원주택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대문, 파고라입구부터 농작물이 보이는 것이 뭣할 것 같아 위쪽의 3번 중심화단과 같은 폭으로 화단을 내기로 하고 우선은 거기까지 밀려온 돌중에서 포클레인으로 실어낼 정도가 아닌 중간치 돌돌을 나란하게 윗면을 채웠다. 그리고 대문에서 바라보면 정면이 되는 3번 화단과 잔디밭의 끝 4번 화단은 그냥 동그랗거나 길쭉하지 않고 뒤틀리거나 끝이 뾰족한 좀 이상한 돌들을 주욱 늘어놓았다. 앞으로 한 2,3개월 뒤 김장 무를 뽑을 때까지 아이디어를 내어 겨울한철을 소일거리로 삼을 참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