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33)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41)

이득수 승인 2024.04.23 16:00 의견 0

가슴이 철렁해진 열찬씨가 조심스레 안방을 들여다보니 마침 영순씨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가늘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비로소 안심을 하고 거실을 건너 서재의 의자에 앉아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뚜뚜 소리가 나는 걸 보아 일부러 꺼둔 것 같았다. 이튿날, 그 이튿날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도 여전히 받지 않아 어디 해외나 멀리 여행이라도 간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자꾸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저쪽에선 달리 연락이 없었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여행을 갔더라도 하마 돌아왔을 텐데 메일의 끝에 보낸 사람 이름까지 영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차라리 영어공부에 매몰되어 만사를 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도 했다.

14. 송도와 진주여자(41)

구정이 지나고 입춘도 지난 지 또 한참이 지나 하마 대운산 내원암계곡에 도록도록 소리 내며 얼음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버들강아지가 눈을 뜨고 성급한 가재가 기어 다닐지도 모르는 초봄의 어느 일요일 열찬씨는 김몽룡씨와 로구로 박, 화장지 박과 넷이 모처럼 등산길에 나섰다. 노포동 시외버스정류소에서 만나 평소에 서로가 서로를 <덕계시민여러분>이라고 놀리듯 그 날도 웅상면 덕계리로 향해 천성산 무지개 폭포나 벽동골 방향으로 오르는가 싶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대원산으로 갈까? 내려오는 길에 남창장에서 선지국에 회도 좀 먹고 기차도 타고.”

김몽룡씨의 말에 서창까지 내려가 서창시장에서 김치찌게를 끓일 돼지고기와 소주에 막걸리를 넉넉히 사고 찌게가 끓기 전까지 술안주로 먹을 족발까지 사서 대추만디 날카로운 고개를 올라가다

“아이구, 화장지야, 내 죽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니가 한 병만 더 묵자 칼 때 그만 일어서는 건데. 목에 두른 수건에서 술 냄새, 송장 썩는 냄새가 등천을 하네.”

로구로 박사장이 너스레를 떨더니

“작은 형님, 그 좋은 목청 두고 죽으면 아깝을 낀데 그만 뒷동산에 딱따구리나 한 번 하소.”

하는지라 안 그래도 숨이 들숨날숨해 죽을 판인 열찬씨가

“야, 이 사람아, 남은 지금 숨이 차서 죽을 판인데 노래는 무슨 노래? 힘 좋은 자네나 하소.”

하자

“하긴 그러네. 힘 좋은 막내 유동식이가 온 것도 아이고. 할 수 없지.”

하더니 <뒷동산에 딱따구리는>을 길게 뽑고 부산근교 3대 악산(惡山)으로 꼽히는 깔닥고개를 잘도 넘어가 해발 610미터 대추만디에 짐을 풀어놓고 여전히 헤매는 열찬씨와 몽룡씨의 베낭을 받으러 왔다. 다섯이 정상에 오르자 주변을 한번 둘러 볼 틈도 없이

“화장지야, 아까 그 막걸리하고 족발 좀 꺼내봐라. 등산이고 나발이고 다 묵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목마르고 숨 가쁜데 한 잔 안 묵고 우짤끼고?”

화장지 박 사장의 말에

“거기다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열찬씨가 받자

“거기다 친구 좋고 안주도 좋고.”

하면서 화장지 박 사장이 배낭에서 막걸리 두 병을 꺼내면서

“내 이럴 줄 알고 과매기를 좀 사왔지.”

하면서 봉지에서 과매기와 초장, 김과 미역줄기, 된장과 자른 파까지 알뜰히도 챙겨온 것을 꺼내 늘어놓자

“화장지 니는 죽어 존 데 갈 끼다. 이기 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는 티켓이 아이고 뭐겠노?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 하나 잘 한 것도 없고 기껏 남은 것이 아직 못 받은 공사대금하고 못 갚은 술값밖에 없으니...”

큰 형 김몽룡씨가 첫 잔을 받으며 웃는데

“그래도 동네 아지매들 울리는 마구로보다는 낫지.”

열찬씨도 두 번째 잔을 받아 냉큼 마시는데

“더러븐 영감쟁이들 내가 그 험한 깔닥고개를 도로 내려가 짐까지 받아지고 왔는데.”

하면서 화장지 박과 건배를 했다. 금방 막걸리 두 병이 바닥나자

“형님, 기왕 시작한 거 소주 두어 병 하고 족발도 풉시다.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그게 그건데 이렇게 간에 기별도 안 가게 홀짝거려서야...”

하면서 자기 가방에 든 족발과 소주를 두 병 꺼내서 따르면서

“반갑습니다. 숨 가쁜데 좀 쉬어가소.”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술도 권하고

“아이구, 새댁이는 어데서 왔능교? 빨간 잠바 색깔이 아주 죽이네.”

하고 여자들에게도 말을 거니

“아이구, 귀한 과메기가 다있네. 파에 미역에 마늘에 김까지 남자들이 참 알뜰히도 챙겨왔네.”

호호 웃으며 옆에 앉아 소주까지 얻어 마신 여자들이 과일을 깎아오고 사내들이 버너를 꺼내 커피까지 끓여 금방 산꼭대기에서 열 명도 넘는 등산객들의 파티가 벌어졌다. 족발과 과메기는 물론 다섯 병 사온 소주가 동이 나자

“이거 큰일이네. 나중에 점심 먹을 땐 술이 모자라겠네.”

이제 남은 술이 됫병짜리 소주 하나뿐인 걸 떠올리며 열찬씨가 걱정하자

“아, 그거야 술이 떨어질 만하면 큰형님, 작은 형님 베낭에서 늘 비상용 소주가 나오잖아? 화장지배낭에서 중국사위가 사준 배갈이 나올 수도 있고.”

마지막 잔을 털어 넣는 로구로를 보고

“자, 이거.”

웬 사내하나가 2홉들이 소주병 하나를 꺼내주며

“잘 안마시지만 그래도 산에 올 때 술이 없으면 허전해서 가져온 건데.”

로구로에게 건네자

“아니, 아재는?”

“저는 혼자 살살 다니는 편인데 오늘 사람 좋은 아재들을 만나서 벌써 술을 두 잔이나 마시고 숨이 가빠 죽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해서 바라보니 정말 얼굴이 빨갰다. 빨간 점퍼가 예쁘다는 아주머니와 일행들이 다 떠나고 혼자 온 사내도 어슬렁거리며 대운산 방향으로 떠나자

“야, 장사 잘 했네. 소두 두 잔 마신 사람한테 일곱 잔 반이 나오는 소주 한 병도 얻고.”

화장지의 탄성과 함께 그들도 일어났다. 순간

“형님!”

열찬씨가 김몽룡씨를 부르며

“이상하게 오늘 장안사쪽으로 가고 싶네. 그 쪽으로 가면 안 될까?”

하고 바라보니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옹고집 김몽룡씨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하긴 매번 남창장에 선지국밥만 먹을 것이 아니라 장안사 메기탕도 좋지.”

하고 순순히 반대 방향 불광산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시명산 못 다 가서 삼각산 방향으로 코스를 잡으면 바로 장안사 입구 화장실 옆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는 것이었다. 오후 두 기가 훨씬 넘어 장안사계곡 상류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소주 됫병을 다 비우고 다시 열찬씨가 예비로 가져온 플라스틱 병에 든 4홉 들이를 비우고 다시 뒷동산 딱따구리를 부르며 하산하다 척판암을 지나며

“인자 메기탕은 가국장이 살 끼제?”

“맘에만 들면 어데 메기탕만 사겠나?”

하던 열찬씨가

“우리 장안사 구경이나 합시다. 매운탕 먹고 또 술 먹기에는 아직 술도 덜 깼고.”

하면서 오늘도 산신각에 가서 산신할배한테 절이나 하려고 입구를 들어서던 열찬씨가

“수가령천도제라 별 희한한 프랭카드가 다 있네. 절도 장사라더니 신도들 돈 빼먹으려고 별 희한한 제도 다 만드네.”

하면서 아래쪽 잔글씨를 바라보다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사산, 조산, 낙태아, 영아사망자...>

그러니까 아직 태어나지 못 했거나 태어나지도 못 하고 비명에 죽었거나 태어났지만 이내 죽은 어린애들의 영혼, 아직 제 발로 걷지도 못 해 하나의 영가, 저승 가는 수레도 탈 형편이 안 되어 그림자처럼 제 어미를 따라다니는 영혼을 천도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아, 영가(靈駕)라 영가... 그러니까 따를 수(隨)자, 가마 가(駕)자, 영혼 령(靈)자겠지 아마...”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등줄기가 찌릿하며 옥자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옥자씨가 한 여자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 배어본 아이, 그렇지만 태어나지도 못 한 아이, 그 불행을 초래하고도 그 어린 생명을 보내는 버리는 순간까지 그 사실을 모르던 아비, 무책임한 사내가 바로 자신인 것이었다.

“아하...!”

저도 모르게 내쉬는 한숨에

“새야 니 표정이 갑자기 와 그러 노? 뭐 못 볼 것을 봤나?”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로구로박의 질문을 건성으로 넘기고 휘적휘적 진입로를 건너 도로로 나오는데

“형님, 가리 느까 술이 오르요? 걸음걸이가 다 휘청거리네.”

화장지박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아니. 간혹 이럴 때가 있어.”

공포에 질린 창백한 옥자씨의 얼굴, 싸늘한 철 침대와 하얗게 빛나는 메스, 그리고 천사가 되어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조그만 어린이, 나팔을 불면서 빛다발 가운데로 사라지는 붉은 볼이 통통한 천사가 아닌 서럽디 서러운 표정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뒤를 있는 겨우 750그램의 조그만 아이, 정석이 낳은 지 불과 몇 달이 되지 않아 들어서서 전치태반이라는 병에 걸려 태어나자 말자 죽은 아이였다.

그 바람에 돌이 갓 지난 정석이를 제 이모 영옥씨에게 맡기고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기도나 많이 하라는 일신부인병원 여의사의 말을 듣고 얼이 빠져서 수술실 앞을 지키다 들었던 이야기로 그 아이는 겨우 750그램이지만 자연분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겨우 두세 번 숨을 쉬고 죽었지만 어미의 목숨을 구했다는 계집아이의 모습, 아니 얼굴형상도 아닌 핏덩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퇴원하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들어선 아이, 어찌 된 셈인지 눈만 마주쳐도 아이가 생기는 것 같아 산부인과에 데리고 가서 유산을 시키고 제 발로 보건소를 찾아가 정관수술을 하게 한 불과 서너 달이 된 핏덩이, 그리고 보니 자신으로 인하여 생긴 수가령이 조산아 하나에 낙태아가 둘이나 되는 것이었다.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는 자책감에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하더니

(...)

어떻게 메기탕집까지 도착했는지 몰랐다. 거푸 소주 석 잔을 마셔도 가슴속에 무엇인가 묵직한 것이 걸린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잠봉해서 꿀꺽꿀꺽 한잔 마시자 비로소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아 눈앞에 어른거리는 조그만 아이의 환영을 애써 지우며 천천히 숨소리를 고르게 회복했다. 얼마를 더 마셨는지 어떻게 도로까지 걷고 역까지 걸었는지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탔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차리자 양옆에 부축을 받으며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낯선 풍경과 웅성거리는 소음에 한참이나 사방을 둘러보던 열찬씨가

“여가 어데고?”

묻자

“어데고는 부산하고도 동해남부선 부전역이지.”

김몽룡씨가 씨익 웃더니

“오늘 잘 하면 5잡이 4잡으로 줄어들 줄 알았더니 다시 살아나네. 두 박사장이 택시를 태워 집에 보내소.”

하고 지하철부전역을 향했고

“형님 정말 괜찮겠나?”

로구로 박이 걱정스레 묻는 사이 부지런한 화장지 박이 술 깨는 약이라며 알약하나와 컨디션 한 병을 사와서 억지로 먹였다.

“무슨 일은 없었나? 헛소리를 하거나 실수를...”

조심스레 묻자

“사이나 먹은 꿩처럼 술 먹다가 고대로 술상에 콕 고꾸라지던데요. 그리고 뭐라 몇 번 지껄이다가 금방 잠이 들었어요.”

화장지의 말에

“형수이름이 옥자씬가? 뭐 옥자씨하고 우리 애기 소리를 몇 번 한 것 같은데.”

하며 택시 문을 열어 태우고

“기사님, 망미주공 아파틉니다. 형님, 조심해서 가세요.”

하고 문을 닫았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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