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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
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40) 책갈피, 장이지
책갈피 kryptonite장이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스무살이었고 어느 날 깨어보니 서른살이 되어 있었어요 친구들이 편지를 읽어주러 왔어요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를…… 시간이 저를 비눗방울 불 듯 불어댔어요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한숨……
손현숙
2024.09.14 09:00
문학예술
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5) 꿈마실 - 박완호
꿈마실박 완 호 아버지를 낳는 꿈을 꾸었다 녹슨 대못 같은 팔다리, 질끈 눈 감고만 싶어지는 흉터들이 살았을 적 그대로인 젊은 아버지가 나이 든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를 들러서 왔는지, 도깨비 풀 달라붙은 바지가 땀에 절어 풀럭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술기운에 일그러진 말소리가 수멍의 물처럼 쏟아져
조승래
2024.09.12 09:00
문학예술
대하소설 「신불산」(791)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6)
20. 평리부락 망향비(6) 그날 저녁 옥편을 꺼내놓고 컴퓨터를 캔 열찬씨가 (보자아, 또 딸을 낳았으니까, 또 우(又)자에 가화의 화자, 그러니까 우화가 되는데 그건 너무 밋밋하고...) 아들을 낳으면 가화의 가자를 돌림자로 해서 가한(可漢)으로 그러니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강한 사내, 유목민들의 왕 칸으로 지으려
이득수
2024.09.12 09:00
문학예술
대하소설 「신불산」(790)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5)
20. 평리부락 망향비(5) 망향비를 제막하고 돌아온 이튿날 통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와서 “국장님, 오늘 밭에 안 올 거요?” “예. 하루 쉬고 내일 쯤 갈라는데요.” “엔간하며 오늘 올라와서 들깨 좀 베지요. 노랗게 익어 땅에 떨어질 염려도 있지만 한 번씩 참새 떼가 지나가면 한 되씩은 먹어치울 거요.” “예. 알겠습
이득수
2024.09.11 11:04
문학예술
손증호 시인의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81) 출렁다리 - 정희경
출렁다리정희경 나 여기 출렁이면 당신 거기 받아주오 당신 거기 흔들리면 나 여기 견디리다 달빛이 이승을 건넌다 숨이 멎는 물빛 사람이 살다 보면 출렁이거나 흔들릴 때가 왜 없겠어요? ‘나 여기 출렁이면 당신 거기 받아주’고 ‘당신 거기 흔들리면 나 여기 견디리다’. 여기와 거기서 흔들리면 잡아주고 견딜 수 있게 도
손증호
2024.09.11 11:01
나의 삶 나의 생각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53) 추석 대목 앞두고 구례장에 가다
2024년 9월 8일, 오전에 전남 구례군에 있는 구례장에 갔다. 필자가 사는 하동 화개면 목압마을에서 30분가량 걸린다. 오랜만에 3일과 8일에 서는 구례장에 가는 것이다. 추석을 열흘도 남겨놓지 않은 일요일이어서 장이 많이 붐빌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에 가니 차를 주차할 곳이 없었다. 다행히 필자의 차는
조해훈
2024.09.10 14:45
문학예술
【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가을 문턱을 넘다 - 이송희
가을 문턱을 넘다이송희 연두빛 눈부신 봄을 지내고 태양빛 찬란했던 여름도 지나 이제는 은은한 가을에 선다 산다는 것이 살아 왔다는 것이 그저 숨만 쉬었던 것이 아니다 그 숨 하나 키우기 위해 손도 발도 심지어 오장육부까지 색색의 피를 토했던 시간들 고요한 겨울로 가는 바람결이 진실로 남기를 바라며 품는다 숨 하나 하나
이송희
2024.09.10 09:53
문학예술
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9) 체념증후군, 문정영
체념증후군문정영 불안의 모서리를 잊어버리고 싶어 잠의 가면을 썼습니다 나를 가둔 세상의 경계가 지워졌을까요 까맣고 하얀 점 위에서 내가 나를 쳐다볼 뿐이네요 사랑보다 불안은 몸으로 먼저 느껴져 네게 멀어져야 네가 다가오는 것을 잠으로 배웁니다 한없이 펼쳐지는 어둠에는 천사도 없습니다 꿈에서 늘 만지는 것은 어제였지
손현숙
2024.09.07 09:00
문학예술
대하소설 「신불산」(789)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4)
“안 되겠다. 여러분, 우리 잠깐씩 울고 다시 시작합시다.”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고 시선을 한 바퀴 돌리며 “예. 오늘 같은 날은 이렇게 좀 울어도 됩니다. 이제 속이 좀 후련하신가요? 다시 시작합니다.” 하고 우리 평리사람과 그 후손이 어느 땅에 가더라도 늘 번성하며 이 땅을 그리워하며 되돌아볼 애틋한 기원을 담아
이득수
2024.09.06 17:11
문학예술
대하소설 「신불산」(788)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3)
20. 평리부락 망향비(3) “자, 시작합시다. 볼륨 좀 줄이고.” 열찬씨의 신호에 따라 유락씨가 “평리부락 실향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옥토 버든마을, 구시골마을이 고속철업무부지에 편입되어 울며불며 정든 고향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옛사람들의 시에는 보통 세월이 지나 고향에 돌아오면
이득수
2024.09.05 10:28
문학예술
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4) 복노인을 기리다 頌福老 - 김기호
복노인을 기리다 頌福老김 기 호 푸른 산의 봄은 알리지 않고 와도 알겠고 동쪽 이웃 노인들은 해 저무는 걸 절로 아네. 고요하게 어둠 내리니 사립문을 닫고 두견새 소리 들으며 새벽부터 절구에 쌀을 찧네. 며느리 나가서 아이 부르고 또 부르니 초당에서 일하는 아이 게으르게 일어나는구나. 빗질하는 흰머리에 비스듬히 햇빛
조승래
2024.09.05 10:14
문학예술
손증호 시인의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80) 꽃받침 - 임성구
꽃받침임성구 오로지 그댈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다 온몸이 짓물러도 달 보는 마음으로 그대를 환하게 피우리다 어여쁜 나의, 금(錦)이여! 꽃받침은 꽃피울 대상을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존재로 꽃받침의 소멸은 아름답고 귀한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꽃받침으로 이 한 몸 기꺼이 바
손증호
2024.09.04 10:26
문학예술
【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죽음 앞에서 - 석정희
죽음 앞에서석정희 세상에 올 때는 환영하는이도 기뻐 하는이도 많아 즐겁게 시작했지만 인생이란 덧없이 흘러 외롭게 홀로 남는것 언젠가 부터 외로움에 치떨고 육신이 아품에 인상 그리고 누군가 불러 보지만 자식 조차도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겠
석정희
2024.09.02 08:38
문학예술
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8) 그 바다로 가는 길, 김성오
그 바다로 가는 길김성오 아내가 해산에 들어간 방문 앞에서 함께 들어가지 못한 나는 문이 가장 완벽한 벽임을 본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듯이 아내도 아내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나는 자꾸만 떨렸다. 무작정 열릴 때를 기다려야 하는 문은 겨울이었다 추웠다 적이었다 덜덜 떨며 등을 돌린 채 안을 엿보는 것이
손현숙
2024.08.31 09:00
문학예술
대하소설 「신불산」(787)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2)
20. 평리부락 망향비(2) 마침내 제막식 날이 되어 열찬씨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언양으로 향했다. “보소. 제막식 하고 기분 좋다고 너무 마시지 마소. 내가 물가에 아아를 세워 논 것처럼 안심이 안 되지만 현서때문에 갈 수도 없고...” 영순씨가 영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오늘 같이 의미심장하고 엄숙한 날에 내 그럴
이득수
2024.08.30 16:40
문학예술
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3) 아버지의 청명주 - 유수화
아버지의 청명주유 수 화 아버지가 즐겨하던 청명주를 채주 하는 날 추적추적 비는 오고 빽빽하기도 헐렁하기도 한 아버지의 시간이 용수에 출렁이던 그날, 술방처럼 층층이 쌓아놓은 술병상자에 눅눅한 습기가 아버지 모습으로 오종종 앉아있다 췌장암 수술을 완강하게 거절하시는 아버지 집을 팔 수는 없다며 등을 깊이 기울여 호주로
조승래
2024.08.29 10:09
문학예술
대하소설 「신불산」(78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1)
20. 평리부락 망향비(1)와중에 평리부락망향비를 제막식을 거행한다고 고추친구 영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릴 때 서로 담이 붙어 저쪽 집 감나무의 가지가 뒷밭으로 넘어오는 집의 동갑친구에 생일마저 서로 보름간격이라 하루도 빼지 않고 보던 동무였다. 당시 영관이의 아버지 상천엄손과 지금은 치과의사가 된 영호의 부친 이까리
이득수
2024.08.28 14:07
문학예술
손증호 시인의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79) 미등을 켜다 - 김석이
미등을 켜다김석이 가끔씩 내 위치를 당신께 알립니다 안개 속을 지나갈 때 어둠 속을 뚫고 갈 때 행여나 걱정할까 봐 빛 한 줄기 보냅니다. ‘안개 속을 지나갈 때’나 ‘어둠 속을 뚫고 갈 때’ 그대가 ‘걱정할까 봐’ ‘빛 한 줄기’ 보내는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신호를 보내지 않는
손증호
2024.08.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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