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1장 뜻밖의 귀촌(6)

거기다가 공사를 맡기로 한 또식씨의 사정도 급했다. 그가 제대로 된 건물이라고는 한 10년 전쯤 여기 저기 교회의 첨탑이나 지으러 다니던 시절에 형 일식씨의 집, 그러니까 자신이 나고 자란 등말리의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지은 일이 유일했다. 당시 브라운관을 주로 생산하던 삼성전관이 이제 브라운관이 없는 텔레비전이 대세가 되면서 생산라인을 조정하고 일부 직원을 수원공장으로 발령 낼 때 일식씨가 해당이 되자 장남인 자신이 어머니 금찬씨를 두고 멀리 떠나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표를 낸 뒤였다.

대기업이라 적잖은 퇴직금과 퇴직수당을 탄 일식씨가 우선 11조로 자기가 다니던 덕천교회에 이천만원을 헌금하여 직장생활을 무난히 마치게 해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두 남동생을 불러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의논할 때였다.

우선은 퇴직금이 있으니 농공단지를 비롯하여 자그마한 공장이 많은 언양바닥에서 명색 대기업출신인 일식씨는 원서만 넣으면 금방 취직이 되고 아내 천집사도 시난고난 병을 앓아 늘 병원에 다니면서 간병사자격증을 따둔 것이 있어 부업사마 생활비일부를 보탤 수 있어 먹고사는 일은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여태 장남인 자신이 어머니 금찬씨와 떨어져 산 것이 마음 아팠던 일식씨가 이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형님, 엄마 집을 새로 짓지. 구신 나올라카는 헌 집을 헐고 산뜻하게 2층을 올리는 거야.”

차남 또식씨의 말에

“그래 맞아. 난 늘 엄마 혼자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참에 새집을 짓고 형님이 엄마를 모시고 살면 우리가 얼마나 안심이 되겠노?”

삼남 외식이도 거드는 것이었다.

“거기 쉽겠나? 집도 지어본 사람이 짓는다 카던데? 돈 문제도 그렇고.”

“아니 돈이사 퇴직금 탄 데다 지금 사는 대진아파트 팔면 또 돈이 나오고.”

“그래 집 짓는 거는 내가 한번 해볼게. 우리 엄마가 살 집인데 남보다는 알뜰히 안 짓겠나?”

두 동생이 반색을 하는 바람에 금찬씨를 찾아가 집을 짓겠다고 하자

“나도 너거 식구하고 살면 좋기는 좋지만 나가 사는 아들하고 합치는 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천태엄마 천집사도 도 늘 엄마 걱정인데 같이 합치면 안심도 되고 안 좋겠나?”

“돈이 많이 들 건데?”

“돈은 그럭저럭 돌아갈 끼다.”

“그러면 간단하게 농가주택신청하지.”

“아니요. 엄마, 그건 표준설계에다 집이 좁아 우리 같이 3대가 살면서 명절날 많은 형제들이 식구를 데리고 오기에는 부족해. 엄마 방, 천태, 만태 두 형제 방에 우리 내외가 거처할 방과 넓은 거실에 손님방까지 2층으로 짓고 싶어.

“몰라. 내가 아나?”

굳이 싫다고 할 이유가 없는 금찬씨가 모른다는 말 자체가 승낙이었다.

그렇게 승낙이 떨어진 며칠 뒤 금찬씨의 생일날이었다. 이제 집을 새로 짓기는 확정이 되었는데 누구에게 공사를 맡길 것이냐가 문제였다. 생일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면서

“그라면 집을 짓기는 누가 짓지?”

일식씨의 말에

“형님, 내가 한번 지어보자.”

또식씨가 나서자

“니가?”

“내가 이것, 저것 하면서 보이 집짓는 거 뭐 별 거 없더라. 요새는 자재도 잘 나오고 웬만한 건 모두 조립식이라 아무 걱정할 것 없다.”

“니가 진짜 잘 할 수 있나?”

“내가 우리 형님이 엄마 모시고 살 집을 짓는데 최선을 안 하겠나? 마 걱정하지 마소.”

“그래. 그럼 엄마생각은 어떻소?”

“내가 뭐로 아나? 내가 시집 오이 시아부지부터 집 짓는 현장에 왔다갔다 하고 너거 아부지도 반 목수라 집안이 목수집안이라 뭐 잘 안 되겠나?”

“그라면 그래 하든지.”

승낙이 떨어지자 이튿날 날이 세자 말자 노랑머리 호동씨를 앞세우고 들이닥친 또식씨가

“엄마, 나오소. 집 뜯심더.”

하고 금찬씨의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갑시더.”

아이들이 오글오글 하는 자기 집으로 옮기고는

“야야, 천천히 정신 좀 차리고 뜯자.”

할 틈도 없이 허술한 슬레이트집의 문짝을 빼고 벽을 차고 순식간에 넘어뜨렸다. 소식을 듣고 현장에 온 일식씨가

“야. 박력있는데.”

감탄할 틈도 없이

“형님은 돈이나 한 1억 준비하소.”

“1억이라 견적이라도 봐야주지.”

“형제간에 견적은 무슨 견적이요? 내가 어데 없는 돈 들었다 카겠나?”

“그래도 대충 내역은 있어야지.”

“그건 나중에 내가 돈 들어간 대로 계산서 드릴 게. 오늘 우선 한 3천이라도 주소.”

“그래. 도대체 전체 얼마나 들겠노?”

“호동이하고 내하고 대충 견적을 빼보니 한 1억 1,2천 들것 같은데 공사라 카는 것이 하다 보면 좀씩 더 들어가니 한 1억 2,3천.”

“그래. 알았다.”

은행에 가서 현금 500만원과 백만 원짜리 수표 25장을 합쳐 3천만 원을 찾아오자 그 사이 등말리에는 커다란 포클레인이 벌써 4대째 살아온 동향으로 지은 3칸 겹집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야, 내동생이지만 우리 박집사가 박력이 있네.”

하고 공사가 한 3일 진행된 지 문득 뚝 그치는 지라

“지희애비야, 와 공사에 무슨 문제가 있나?”

“아니, 그게...”

“와?”

“노총각 호동이 그 자식이 손에 돈만 있으면 술집에 퍼지는데 어제 임금 80만원을 줬다 아이가?”

“그람 호동이 없으면 공사가 안 되나?”

“그렇지 뭐. 지는 일 하고 나는 자재 넣고 뒤처리 하고.”

“아니, 이 사람아 1억이 넘는 집을 짓는데 무슨 공사가 인부하나에 사장 하나고?”

“요새 인부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긴데...”

“허허, 그 참!”

또식씨의 말대로 호동씨는 사흘간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은 몽땅 헐어놓고 공사는 중단되니 가뜩이나 분위기가 산만한데 오후엔 비까지 질척댔다.

“호동이 안 나오면 내일 집안 청소라도 하자. 포클레인 불러라.”

하는데 이튿날은 돈이 떨어진 호동씨도 돌아오고 키가 자그만 영감도 하나 나타났는데 예순이 다된 조선족출신이었다. 거기다 평소 건축공사장도 드나들고 깊은 산에 돌아다니며 약초나 송이버섯도 채취하다 정 일이 없으면 인력시장에 나가 날품도 팔던 산전에 사는 중학교후배하나도

“형님, 당분간은 여게서 나도 일당이나 좀 법시다.”

하면서 합류하니 아연 활기가 넘쳤다. 일식씨의 말대로 본채가 있던 자리를 포클레인으로 말끔하게 밀어붙이는데 와장창 사기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난초무늬도 좋은 꿀 항아리 하나가 박살이 난 파편이 흩어진 곳에 누런 한지 한 뭉텅이가 쏟아져

“웬 문종이고? 어릴 때 우리 4형제가 몽땅 정끼맨들어서 씨가 말랐을 긴데.”

하며 4형제가 수진씨가 옛날 엽전구멍으로 문종이라고 불리는 한지를 꿰어 만들어 준 제기를 차던 일을 떠올리다 종이뭉치를 주욱 펴보다

“아이구, 골 아파라. 전부 한문밖에 없네.”

낱장으로 된 문서, 책으로 된 것, 또 붉은 도장이 찍힌 것 까지 한참이나 나배 보다

“요거는 옛날부터 보던 족보고 나머지는 모리겠다. 부산 외삼촌이나 읽을 수 있을지.”

하며 족보만 따로 챙기고 나머지는 똘똘 꿍쳐 넣어 나중에 열찬씨에게 보냈다.

그렇게 시작해서 넉넉잡아 두 달이면 끝난다는 공사가 석 달이 넘어도 마감될 기미가 없자

“공사가 와 이래 늦노? 돈도 자꾸 추가경비가 나고?”

일식씨가 볼멘소리를 하자

“명색이 2층집인데 그래 쉽게 딱딱 되겠나? 돈이사 요새 물건도 좋은 물건이 나오고 인건비도 올라가고 하이 그렇지.”

1억 1,2천이면 충분하다는 공사비가 벌써 1억 5천이 넘어가고 있었다. 대진아파트에서 작천정과 화천마을을 지나 광대고개, 덕고개를 넘어 등말리로 들어오기만 하면

“형님, 돈 한 700 급히 주소.”

“야야, 뭐 하는데 또 700이 드노?”

“요새 타일이고 마감재가 전부 빛깔 좋은 고급으로 나와서 안 그러나?”

도로 반문을 하고

“새이야, 지붕공사하는데 1천 2백 더 들어간데이”

“그거는 와?”

“기왕이면 길에서 봐도 눈에 확 뜨이는 빨간 지붕으로 해야될 것 아이가? 요새는 그게 기와가 아닌 기와무니 마감지가 나오는데 엄청 비싸다 아이가? 그렇지만 먼데서 보면 은은한 색깔이 죽인다 아이가?”

“알았다.”

마침내 1억 7천이 넘어가는 날

“또식아, 좀 엔간히 해라. 더는 돈이 없다.”

“형님아, 그래도 엄마가 살 집인데 하는 김에 말끔하게 해야지. 그래야 교회 목사님이나 신도들이 와서 봐도 우리 박집사가 엄마 모시는 정성이 갸륵하다 할 것이고.”

“아이고, 몰라. 인자 이기 마지막이다. 더는 묵고 죽을라캐도 돈이 없다.”

500만원을 던져주자

“형님, 택도 없다. 새이 니는 문짝도 안 달고 공사를 마칠 기가?”

“그래 딱 얼마면 남은 공사가 끝나겠노?”

“한 3천은 있어야 되겠는데.”

“아니 이 조그만 집에 공사비가 2억이나 든다 말이가?”

“아니, 아래층만 마흔 평이 넘는 2층집에 그 돈이 안 든단 말이가?”

“처음 약속하고 틀리잖아?”

“대한민국의 모든 공사, 문고리 하나 다는 공사도 처음 견적대로 되는 공사는 없는 법이다.”

해서 성격이 곧은 일식씨가 연구 끝에 칼치못 위의 땅을 조금 떼어 팔기로 했다. 원래 증조부시절에는 집앞 논 너마지기와 못둑 밑에 서마지기에 못 위에 논 300평, 밭 300평, 골티논 150평등 2천 평이 넘는 전답이 있었고 수진씨가 살았을 당시까지 암만 살기가 딱해도 농사꾼이 땅을 줄이는 것은 고만 살고 죽겠다는 말과 같다며 절대로 땅 한 평을 팔지 않았는데 막상 수진씨가 죽고 나자 어릴 때 할머니 조동댁의 등쌀을 못 이겨 부산으로 나가 온갖 고생 끝에 택시운전사가 된 키가 작고 말이 두서없는 큰 아버지가 초상이 끝나기도 바쁘게

“제수씨, 보소. 그라고 일식이 니도 들어라.”

하고 비록 제수씨지만 자기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금찬씨를 보고

“원래 옛날부터 부모재산은 장남이 물려받고 지차(之次)는 부모가 살았으면 부모가, 돌아갔으면 큰 형님이 알아서 조금 떼 주는 것이지요. 내가 별난 할매 등쌀에 못 이겨 일찍 부산에 나가서 외톨이로 사는 동안 동생이 그 별난 할매를 모시고 살아 내가 말은 안 했는데 이제 동생도 죽고 나도 나이 환갑이 다 되어 남의 셋방살이를 하는 판에 곧 아들딸 출가도 시켜야 하니 논을 좀 팔아가서 집을 사야겠심더.”

하면서 큰엄마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양자를 들였다고 듣기는 해도 아직 얼굴도 보니 못한 남매를 들먹이며
“그래 문쇄를 다 내놔봐라. 얼매나 되는지?”

하고 한문투성이의 문서를 뒤적이다

“아이구, 모리겠다. 전부 진서(眞書)투성이네.”

어디서 한문문서를 진서라고 부르는 것은 들었는지

“내사 학교 문턱에도 안 갔지만 가방끈 긴 일식이조카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제?”

하고 바라보자 얼굴이 발개진 일식씨가
“아임더. 우리는 한글전용세대라...”

한발 물러서자 금찬씨가 대뜸 나서며

“아니 꽁 잡는 기 매라고, 또 가물치 판돈 궤짝 안에 있지 어데 가겠냐고 죽도록 고생만 했지 양식거리도 늘 달리는 그놈의 전답이 있으면 얼마나 있어 문쇄를 다 챙기요?”

하면서 집 앞 논 너마지기와 못 밑에 서마지기, 못 우에 논 300, 평 받 300평, 골티논 150 평을 합쳐 모두 2,150평이라는 결론이 나오자

“우짤랑교? 반반으로 나눌랑교?”

“아니, 아주바님 보소. 그라면 우리 다섯 식구는 굶어죽고요?”
“암만 그래도 장남 몫은 받아가야지.”

해서 의논 끝에 집 앞 논 너마지기 중에 외로 떨어진 120평을 제한 700평을 팔아갈 때

“아주버님, 인자 논밭전지 팔아달라는 말은 하기 없심데이.”

“알겠심더, 제수씨.”

단단히 오금을 박았는데 엄궁동에 있던 그간의 단독주택 2 칸짜리 셋방살이에서 연립주택을 하나 사 이사를 하면서 가구도 새 것으로 바꾸고 평생 소원해도 한 번도 사지 못 했던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등 귀금속을 사서 치렁치렁 감아보며 한껏 사치도 부려보던 큰엄마가 또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 섣달 그믐날

“아이구, 내일이 명절인데 조상님들 굶기지나 않는가 궁금해서.”

웬 정종 병에 제사고기 몇 마리와 밀감 한 상자를 개인택시에 싣고 나타나 깜짝 놀란 금찬씨가

“아주버님, 우리는 믿는 집이라 제사를 안 지내는 데요.”

또 무슨 꿍꿍인지 애가 바짝 타는데

“제사 안 지내면 명절예배는 드린다 카던데.”

돌아가신 일식씨의 조모, 그러니까 시어머니 조동댁에게 쫓겨나간 화천댁이 말년에 엄궁의 큰 아들집에 들어가 한 해쯤 살다 죽을 때 교회에 다녀 교회 장을 치른 일이 있는 큰 아버지가 이튿날 아침 명절예배를 드린다며 제법 찬송가흉내까지 내더니

“인자, 조상님들께 명절인사는 다 마쳤으니 장손인 내 이야기 좀 들어보소.”

하고 넷이나 되는 조카와 조카며느리 둘까지를 둘러보며

“내가 암만 생각해도 집안전체가 예수를 믿느니 마느니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도 장손으로서 마음에 걸려 부산에서 제사도 지냈으면 하고 또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회사택시는 힘이 들어 개인택시하나는 빼야 되겠고...”

눈치를 흘깃흘깃 살피는 것이 보나마나 돈 이야기라 짐작한 금찬씨가

“아주바님, 전에 집 앞 논 너마지기 팔아갈 때 더 이상은 논밭전지에 손 안 된다고 했잖아요?”

“예. 그렇지만 나는 장손으로서 집터를 팔아가겠다는 이야기지요.”

“예? 대대로 살아온 집터를 요?”

“그렇지요. 대대로 살아왔으니 장손인 제가.”

“뭐라꼬요? 그럼 우리 식구는 길바닥에 나 앉으란 말이요?”

“그거사 내가 알 일이 아니고.”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데

“큰 아부지. 집터고 논밭이고 임시조치법 때 모두 우리아버지 이름으로 등기되고 또 지금은 우리 형제간에 갈라서 상속을 받을라꼬 의논을 하는 판인데.”

“그러니까 그 의논을 할 때 원주인인 장남 나한테 집터를 주라는 말이지.”

“못 주지요. 엄마랑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집인데.”

“그럼 형제간에 시비를 하고 소송을 걸아야 하나?”

“소송을 요?”

방안에 일순 납덩이같은 침묵이 흐르는데

“잠깐! 촌에서 시비 붙어서 안 망하는 집 못 봤다. 붙었다 하면 변호사만 돈을 벌고 두 집이 다 망한다 카더라.”

금찬씨가 끼어들며

“아주바님, 우리도 아아들 데리고 묵고 살아야지요.”

“그렇지만 나도 묵고 살아야지요. 환갑이 지나자 눈도 어둡고 힘도 들고, 해서 개인택시 하나는 사야지요.”

“아이구, 묵고지비, 하고지비는 감당이 안 된다디 마는...”

저렇게 체면이 없이 덤비는 데는 버틸 장사가 없다는 생각에

“아주버님, 개인택시 하나 사는데 돈이 얼마나 드능교?”

“한 7,8천만원 들지요. 차종과 사양에 따라서.”

“그라면 넉넉잡아 1억만 주면 되겠네요.“

“뭐, 그렇지요.”

“두 말 하기 없심더.”

“야.”

못 밑 논 서마지기 600평을 평당 20만원씩 1억 2천에 팔아 1억을 주고 남은 2천은 수진씨 병원비등 그간의 빚을 갚았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둘째 또식이는 집 앞의 자투리땅 120평을 주고 셋째 준식이는 골티논 150평을 주기로 했다. 죽은 성식이나 딸 현주는 제외되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