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2)
집안 전체의 간판격인 건물 맞은편의 화단을 거의 짜 맞춘 열찬씨가 곰곰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지. 여러 종류 돌의 특성을 살려 테마를 구성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는 좀 고색창연(古色蒼然)하거나 고졸(古拙)한 맛이 풍겨야 할 것이야!)
무릎을 탁 치면서 작업을 중단하더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돌멩이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오래 묵은 집터와 밭과 도랑물이 침수된 황무지를 파헤친 탓으로 참 많은 돌이 나오기도 했지만 여러 종류의 돌이 나온 것이었다.
우선 가장 대종은 회갈색의 일반 화강암 종류로 마치 감자나 고구마처럼 길쭉한 것도 있고 모난 것도 있고 한쪽이 기울거나 꼬리가 길거나 둥글납작한 것도 있었다. 또 주홍 또는 주황에 가까운 붉은 색을 내는 널찍한 돌도 더러 나왔는데 희한하게도 조개껍질 비슷한 형상으로 구부정한 옆줄이 여럿 나 있었다. 또 아주 자잘한 점이 박힌 새파랗고 매우 단단하며 무거운 돌, 즉 돌팔매를 하거나 물수제비를 뜨는 조약돌의 어미 같은 돌도 있었고 푸석푸석 잘 부서지는 약간 붉은 색의 모래가 붙은 마사토계통의 돌도 있었고 층층이 돌비늘이 쌓인 석벽의 조각이 떨어진 듯 숫돌이나 도마처럼 새파랗고 납작한 돌도 있었고 옛날 사람들의 들돌처럼 완전한 구(球)형에 가까워 도무지 들 수가 없는 돌, 또 옛날 구들장을 놓던 돌인지 시꺼먼 숯 검댕이 붙은 돌, 옛날 담장을 쌓은 돌인지 오래 볕을 받아 시꺼멓게 그을거나 파란 돌이끼나 돌 옷이 핀 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깬 흔적이 뚜렷한 경치석도 여럿 나왔다.
(가만있자? 이걸 도대체 어떻게 활용할까?)
한참이나 연구하던 열찬씨가 대문정면에서 우측의 삼각형 제1화단은 이끼나 돌 옷이 핀 돌로 옛날식 담장을 쌓기로 하고 왼쪽에 이미 제법 높은 석축이 쌓인 제 2화단은 별 특색 없이 다른 화단이 설치된 후에 남은 돌로 무질서하게 쌓아 자연미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집안전체는 물론 화단의 간판이 될 10미터나 되는 정면 제 3화단은 특색 있는 돌을 골라 한 서너 개의 테마로 구성하기로 하고 마지막 창고 쪽으로 휘어지는 제 4화단은 둥근 우물뚜껑이 하나 있는 것을 활용해 아라비아의 모스크나 알라딘이 신화의 분위기가 풍기는 둥글둥글한 지붕과 뾰족한 첨탑을 살리는 형태로 만들기로 기본구상을 마쳤다.
7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고추를 따기 시작했는데 언제 장마가 시작될지 늘 조마조마 했다. 물을 지극히 싫어하는 고추는 장마가 오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지 고추열매에 반점이 생기면서 녹아내리는 탄저병에 걸리기 십상이고 그 탄저병에 걸리기 전에 얼마만큼 수확을 하느냐가 흉풍(凶豊)의 관건이었다. 이만 하면 한 30근은 되겠다고 영순씨가 비로소 만족한 미소를 띠울 때쯤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 장마가 얼마나 갈지 또 장마 틈에 간간 하늘이 드러날 때 얼마나 더 수확을 할지 또 장마 뒤에 바로 탄저병에 걸리지 않느냐에 따라 한 열 근정도의 추가수확이 달려 있었다.
마침내 조명공사를 해 거실과 방에 전등을 달고 동쪽 창 위에 둘 남쪽 데크 위에 여섯, 서쪽 창고 문 위에 두 개씩 도라지꽃처럼 생긴 조명등을 달아 야간에 불을 켜면 마치 어둠을 뚫고 장난감 열차가 달리는 것 같았는데 벌써 아래쪽 사광리와 들 건너 안산마을에서는 펜션 집 공사가 끝나니 골티골짝의 경치가 확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피치를 올리고 있는 목욕탕의 설비공사와 부엌의 싱크대설치가 끝나면 사람이 들어와 살아도 무난한 정도였다. 그런데 50대 초반의 두루뭉술하게 사람 좋게 생긴 설비공이 사업을 갓 시작한 사람인지 아니면 본래 손재주가 없는 사람인지 공사자체가 뭔가 매끈하지 못 한 느낌이라
“여보, 아무래도 화장실이 이상해. 양변기와 세면대와 목욕탕의 샤워기와 가운데의 유리벽이랑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영순씨의 말에
“그래 맞아. 싱크대의 수도손잡이도 왜 오른 쪽이 아닌 왼 쪽에 달았는지 모르겠네. 우리 식구 누구하나 모두 왼손잡이도 아닌데.”
마침 또 추가공사비가 났다고 우는 소리를 하러 들린 또식씨를 보고 영순씨, 열찬씨가 차례로 불편사항을 호소하자
“아, 큰일이네. 설비하는 사람이 같이 상북면 의용소방대에서 형님동생 하는 사이라 할 수 없이 일을 주었는데 이렇게 서툴 줄은 몰랐어요.”
하면 왼쪽에 달린 수도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목욕탕 타일바닥에 물이 고인다고 그게 세면기에서 새는지, 변기에서 새는지 알아서 다시 시공하라는 말에
“야, 큰일이네. 그 형님이 자기 솜씨 없다는 소리는 안 하고 추가공사비만 요구할 텐데...”
한숨을 푹 쉬면서
“외삼촌공사라 나름대로 신경은 쓰지만 그렇다고 외삼촌이나 외숙모가 만사 만만하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하며 애매한 표정을 짓는 것이 지난 번 싱크대와 찬장이 뭔가 허술하다고 항의를 한 영순씨가 이대로는 절대로 안 된다, 추가로 비용을 대더라도 바꾸자고 재료 상에 갔다 온 뒤
“세상에! 내가 뭐 A급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한 B급 정도라도 만족할 텐데 이건 숫제 C급도 아닌 최하급모델만 사용하다니? 조카는 자기가 고른 것이 아니고 설비공사 하는 사람이 골랐다고 발뺌을 하지만 세상에 청부업자치고 믿을 사람이 없다더니 조카가 더 무서워.”
하고 혀를 찼고 하는 수 없이 싱크대와 찬장을 바꿔 단 또식씨는 또식씨대로
“물론 주부의 취향에 따라 색상이나 디자인이 다른 물건을 바꾸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물건전체를 등급을 올려 바꾸는 경우는 없는데...”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는데 조카가 돌아가자
“절대로 아는 사람에게 일 맡기는 것이 아니라더니 우리 조카도 영판 그러네. 현주집이랑 물건 넣는 것이 너무 수준차가 난다고 평당 50만원씩 750만원이나 더 받아놓고도 최하품이라니 말이야.”
하고 열찬씨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지
“당신집안은 왜 다 그래?”
작심하고 한 마디를 하는데
“봐라. 업자가 재료에 남겨먹고 일정을 단축해서 임금에서 남겨 먹는 것이 먹고사는 길 아이가? 남도 아닌 생질인데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지.”
자신도 못 마땅하지만 억지로 참는데
“해도 해도 어지간해야지. 뭐 외삼촌이 봉도 아니고.”
“그래도 정석 장가보낸다고 아파트 내부 수리할 때 산우회친구들 보다는 낫잖아. 다문 말이라도 고분고분하고.”
“진짜, 건축업 하는 사람들은 왜 다 그런지 모르겠네?”
“그게 먹고사는 방식이겠지.”
그러든 말든 이제 모든 공사가 끝나 마을이 상수도와 연결하여 물만 나오면 당장 입주할 정도가 되자
“영순아, 어서 우리 집에 짐 좀 싣고 가라.”
미혜씨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재촉이었다. 식기를 비롯한 전기밥통, 믹서기, 전자렌지 등은 이미 영순씨의 자동차로 몇 번이나 싣고 와 거실바닥에 쌓아놓았는데 덩치가 큰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세탁기, 식탁과 의자세트까지 자기네 거실바닥에 쌓아놓고 일요일이 되자말자 용달차를 불러서 짐을 싣는데
“언니야, 이렇게 우리 다 주면 언니는 뭐로 밥 해묵노?”
“우리 두 식구 잘해야 집에서 같이 밥 묵는 기 하루에 아침 한 끼 정도고 각자 지 팔뚝 지가 흔들고 댕기면서 알아서 해결하는데 뭐. 어차피 한일아파트로 가면 앞으로 내가 죽고 없어도 너거 형부나 둘째 승관이가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식으로 다 바꿀 텐데 뭐. 어제 아침은 모처럼 냄비에 라면을 끓여서 반찬이라고는 딱 김치하나를 놓고 둘이 마주보고 밥을 먹으니 꼭 신혼 때 놀러간 기분이 다 들더라고.”
하면서 신이 나서 농장까지 다녀와 이리 놓아라, 한 쪽이 기우니 뭘 받치라면서 현장지휘까지 열을 올리다가 문득 또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 수도는 언제 들어오노? 구장은 뭐라 카더노?”
장질 박장로에게 전화를 하자
“그 것 참 희한하게도 허락을 안 하네요. 내가 알기로 그 지하수는 물이 넉넉해 여남은 집 더 묵어도 까딱없을 낀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뭐 마을발전기금을 좀 내라는 뜻이거나.”
“아임더. 절대로 그런 처지가 아이지요. 원래 우리 등말리사람들은 저 언덕아래 샘물을 묵고 살았다 아잉교? 물이 좋아 마을사람들이 장수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사광리사람들 하고 어불러서 지하수를 개발하면 부뚜막까지 수도꼭지에서 바로 물이 나온다는 바람에 군에서 지원을 받고 마을사람들도 일부 돈을 보태 지하수를 개발할 때 마침 그 땅이 우리할아버지 산소 옆에 물린 땅이라 할아버지산소를 이장하고 우리 땅에 지하수를 팠다 아입니까?”
“그래? 그럼 그게 진짜 너거 땅, 토지대장에 있는 너거 땅이가?”
“아, 그건 아니고요? 우리 할배가 밭 우에 터가 좋다고 묘를 써달라고 했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 땅인데 그게 울산의 어느 대학교수에게 팔려서 측량을 하는 바람에 밝혀져서 아무래도 이장을 해야 될 판이기도 하고...”
“그래서?”
“울산의 대학교수는 앞으로 자기 땅이 개발되거나 값이 올라가려면 도로도 나고 물도 있어야 되니까 일단 승낙을 했지요. 그렇지만 산소 옆에 있던 밤나무는 우리엄마가 끝까지 못 비라캐서 아직 우리 밤나무로 물탱크 담 안에 서 있다 아입니까? 이장이나 반장은 물론 마을사람 누구도 우리 여동생이 이사 오고 외삼촌이 이사 오는 데 물을 안 준다면 사람도 아니지요.”
“그럼 내가 한 번 이장을 만나볼까?”
“아임더. 그 정도야 제가 해결해야지요.”
한 것이 또 일주일이 흘렀다. 열찬씨는 이미 거의 부산에 내려가지 않고 새집에서 자는 판이라 세수는 물론 라면하나를 끓여도 일일이 돈 주고 산 생수로 끓여야 할 판이니 불편하기보다도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집 앞에 웬 지프차 하나가 주차해 창문으로 내다보던 열찬씨가 공무수행이라고 쓰인 표시에 저도 모르게 친밀감을 느끼며
(군청직원이 나왔나?)
하고 데크로 나가니
“할아버지, 이집 주인이세요?”
30대중반쯤의 여자가 행정수첩을 들고 다가오더니
“여기 홍영순씨 댁 맞지요?”
“예. 내가 영감인데요.”
“그런데 어르신 언제부터 여기서 기거하신 건가요?”
“기거라니? 간혹 자고가기는 하지만 아직 수도도 안 들어오고 해서 뭐 기거라고 할 것까지야.”
“아닙니다. 건물사용허가가 나기 전에 사전입주를 했다고 이웃에서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사전입주라는 민원이, 아니 어느 얼빠진 사람이?”
“대충 짐작하실 텐데요.”
“하긴. 이웃집 들어오는데 환영은 못 할망정 담을 쳐서 길을 막는 사람이 무언들 못 할까.”
저도 모르게 진정인을 지목하며
“저 아랫집 여자?”
“예.”
“일단 여기 좀 앉으소.”
데크에 일단 앉히고 명함을 건네주며
“나도 정부미 40년 먹은 사람이요. 우리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하나씩 마시면서
“내가 알기로 사전입주라는 것은 극장이나 시장, 공장 같이 사람들 이용이 많은 공공시설이나 안전상 위험요소가 있는 경우에 적용하는 안전장치이지 주거용 건물을 지어 자기가 입주해 살 집에 미리 불을 켜고 잠을 자고 밥을 해먹는 것은 일종의 사전점검차원인데 그걸 다 물고 늘어진단 말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법이 물이 흐르듯 편안하고 자연스런 것이라면 그 법을 집행하는 행정은 더더욱 시민이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불필요한 간섭을 않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민원이 들어오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나도 직접 민원을 담당하거나 민원실장을 하거나 또 민원감찰을 하는 감사업무도 오래 봤는데 이런 경우에 공무원이 참 애매하지. 처분(處分)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
“항의가 심해 꼭 행정조치를 해야 되면 하세요. 내가 알기로는 아마 사전입주과태료가 부가될 텐데 액수가 제법 되지요?”
“예. 보통은 돈 백만 원이 넘고 이 경우에도 한 50만원은 넘을 겁니다.”
“그게 담당공무원에게 부담이 되면 일단 부과를 하세요. 내가 후배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야 없지.”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태추이를 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여직원이 돌아간 뒤 머리가 띵해진 열찬씨가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주민등록법에 의한 해태, 사업이 망해 야반도주를 해 미처 전출입신고를 못 해 직권말소가 된 가난한 사람이나 거처할 곳이 없어 산비탈에 무허가로 판잣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단속해 행정처분을 하거나 또 그런 업무를 감독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자신이 그런 과태료부과대상이 되고만 것이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그럴 수도 있지만 평생 공무원으로 산 사람이 그것 하나도 해결 못 하느냐고 가뜩이나 쪼들리는데 또 벌금을 50만원 넘게 물게 되면 영순씨는 또 얼마나 역정을 낼까?)
곰곰 생각하던 열찬씨가
(아, 이렇게 한가하게 노닥거릴 일이 아니지. 오늘 저녁에도 내가 여기서 자는 지 안 자는 지 저 아랫집 여자가 살펴보고 불빛이 보이면 또 군청에다 난리를 칠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일단 그날 저녁은 여기서 자지 말고 불을 완전히 끄기로 했다. 일찌감치 부산 집으로 내려가려다가 예고도 없이 왜 왔느냐고 물을 영순씨를 속이기도 그렇고 바로 이야기해서 잔소리를 듣는 것도 마뜩치 않아 국민학교 동창 용호라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잘 지내나?”
“그래 열찬이 니는 집 다 지았나? 차로 지내가면서 보이 건물이 산뜻하게 예쁘던데.”
“그래 거의 다 지었다. 니 온 저녁에 뭐하노?”
“뭐 하기는? 백수가 따로 할 일이 있나? 낮에는 달모하고 황토방에나 다니고 저녁에는 아파트에 꼬꾸라져 자지.”
“그래. 그럼 저녁에 시간 있나?”
“시간 있는 기 아이라 남는 기 시간뿐이지.”
“소주나 한잔 할까?”
“그래. 몇 시에 니 데불러가꼬?”
“니가 차 가지고 온다고?”
“그래 운전도 안하는 친구 내가 모시러가야지 우짤 끼고”
하면서 오후 5시로 약속을 했다. 단 둘이 마시기도 뭣해 인력관리사무실을 하는 정이라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저녁 먹고 소주 한 잔 하는 것까지는 되는데 밤늦게까지 놀 수는 없다고 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