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1장 뜻밖의 귀촌(14)

어느 새 지붕공사가 끝나니 한 갖진 들판에 오뚝하게 선 빨간 지붕을 보고 벌써 아랫마을 사광리사람들이 펜션집이 들어섰다고 펜션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어느 새 백찬씨가 장촌의 덕찬씨와 들러 사진을 찍어 <등말리 전원주택>이라는 제목으로 명촌댁이 2,3세 밴드에 올리고 열찬씨에게도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장촌의 덕찬씨가 동생이 올라온다고 엄청 신이 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요일 날 들린 영순씨가 건물 앞의 베란다격인 데크를 만든 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아저씨, 폭이 얼만데요?”

“예. 설계상으로 120인데요.”

“안 됩니다. 너무 좁아요. 적어도 2미터는 되어야 해요.”

당장 공사를 중단시키고 또식씨를 불렀다. 불려온 또식씨가 설계사에게 전화를 한 후 마침내 폭을 2미터로 넓히기로 확정되자

“당신, 추가경비는 우짤라꼬?”

“걱정 마소. 내 돈을 주어서라도 넓힐 거요.”

“아니, 당신이 그럼 이제까지 딴 주머니를 찼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내가 반찬값 아낀 생활비를 털어서라도 말이지.”

“왜 그래 데크에 집착하는데?”

“내가 그간 남의 전원주택에 가보고 느낀 건데. 전원주택은 무엇보다 베란다, 그러니까 데크가 넓고 전망이 좋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내 집을 지으면서 이런 데크를 만들 줄은 몰랐어요. 아무튼 데크만은 나에게 맡기세요.”

“아, 알았어.”

며칠 뒤 도랑에서 나온 바위로 길보다 1미터 이상 높은 오른쪽 화단과 왼쪽화단 일부에 자연석 축대를 쌓고 대문을 달 기둥을 세우고 아치형 파고라까지 설치하니 한결 전원주택의

기분이 들면서 운치가 있었다. 이제 열찬씨가 꿈꾸던 초록색 펜스를 칠 차례였다. 그까짓 것 돈백만원정도로 생각했는데 견적을 빼니 뜻밖에도 350만원이 든다고 했다. 왜 그리 비싸냐고 물으니 전부 조립식이라 자기네는 인건비밖에 남는 게 없다고 또식씨는 또식씨대로 울상이었다. 그렇게 자꾸만 경비만 늘어 가는데 마침 덕찬씨의 전화가 오더니

“동생 니가 고향에 집을 지어오니 기분은 날아갈 것 같은데 너거 자영이 살림을 틀어쥐고 있어 무엇 하나 도와줄 수도 없고...”

말끝을 흐리는지라

“걱정하지마소. 마음이 문제지.”

“큰돈 안 들이고 뭐 하나 간단하게 해줄 게 없을까?”

“보자아, 내가 한 번 연구해볼 게요. 큰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내가 해줬다고 나중에 이야기할 몫이 되는 걸 해야지요.”

“그래 알았어. 나중에 생각해보고 연락해 도. 그런데 너거 자영이나 명촌언니한테는 절대로 말하면 안된다이.”

“아, 알았어요.”

그러고 며칠이 지난 뒤

“누님, 펜스라고 말이야 울타리를 치는데 한 300만원 넘게 더는데 되겠나?”

“그래 생각보다 좀 액수가 크네. 내 힘에.”

“그래도 나중에 초록색 펜스를 볼 때마다 저건 내가 해준 것이라고 표시도 잘 나고.”

“알았다. 미진이하고 의논해 볼 게.”

하더니 이튿날 바로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당신은 좋겠다. 그래도 부자누님이 하나 있으니 돈도 몇 백 들어오고.”

“무슨 소리고?”

“나는 친정도 친정형제도 모조리 힘이 없어서...”

“새삼스레 무슨 소리! 내가 어데 그 사정을 모리나?”

“미안하요.”

“쓸데없는 소리.”

“...”

축대를 쌓고 파고라로 대문을 세워 제법 집모양이 나더니 초록색 펜스로 담장을 치자 분위기가 일신했다. 이제 제법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었다. 겨우 데크의 폭을 하나 넓혔을 뿐인데도 건물자체가 많이 넓고 여유로운 느낌도 들었다. 하루는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오후 네 시경에 비가 와서 건물안쪽에서 비를 피하다 문득 집안을 조금만 정리하면 잘 수도 있겠다싶어 마침 지나가는 또식씨를 잡고

“조카야, 이 안쪽을 치우고 내가 좀 자고가면 안 될까?”

“아직 전기, 수도도 안 들어와 자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일꾼들 일하는데 안 걸거치도록 되도록 출입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사람아, 만장 같은 집 놔두고 이 빗속에 부산까지 갔다와야 되겠나?”

“아, 예. 할 수 없지요. 오늘은 제가 언양차부까지 모시다드릴게요.”

하고

“외숙모는 언제 오시는데요?”

“와?”

“외삼촌한테 이야기하면 욕만 묵을 일이지만 외숙모한테 이야기해서 해결할 일이 있어요.”

“뭔데? 이 사람아.”

“절대비밀입니다. 예기도 꺼내기 전 볼기만 맞기는 싫으니까요.”

“그러나? 그런데 전기수도는 언제 넣노?”

“전기는 임시전기가 있는데 준공허가 들어갈 때 쯤 한전에 신청하면 금방 될 겁니다.”

“수도는?”

“예. 마을의 지하수가 물이 엄청 좋아 마을사람들은 딸네 집에 가면서도 명촌 등말리 물을 병에 넣어 가지고 갈 정돈데 말입니다.”

“그런데?”

“우째 된 판인지 이장이나 반장이 새로 들어오는 네 가구에 수돗물을 나누어주면 원수(原水)자체가 모자란다고 허락을 안 한단 말입니다.”

“이 사람아, 너거 집안이 이 골짝에 산 기 얼마나 오래 되는데 물을 안 주노? 이장, 반장한테 단디 이야기하지. 세상에 물을 안 갈라먹는 법은 없단다.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물을 묵어야 살고 또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그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샘은 특별히 정해놓은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사람이면 누구나 묵고 살 수 있는 법이란다.”

“암만 그래 이야기를 해도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가는 것을 우짭니까?”

“내 생이 박장로는 뭐라카더노?”

“형님도 뭐 마찬가지지요. 우리 외삼촌 말로 세상에 물을 안 갈라먹는 법은 없다고 세상에 사람 먹고 사는 물은 옛날 임금도 막지 않았고 지금도 사람이 집을 짓고 마을이 들어서면 1차로 본인이 해결하겠지만 그게 어려우면 정부차원에서 샘을 파거나 수도를 넣어주고 그게 만약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라면 급수선(給水船)을 보내서라도 국민을 목말라 죽게 하는 법이라고 말이다.”

“알겠심더. 형님 오면 이야기해서 같이 한 번 더 가지요.”

다음 일요일 영순씨가 올라가자 보직을 맡은 집사라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갔던 또식씨가 허겁지겁 달려와

“외숙모 오셨습니까?”

“그래 고생 많제 박집사. 날 보자캤다면서?”

수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예. 외삼촌한테 이야기를 하면 혼쭐만 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뭔데 말해봐라.”

“처음에 이 집을 지을 때 외삼촌이 농막삼아 거처하고 책보고 글이나 쓸 집, 남자 혼자 거처할 공간이라 아주 검소하게 평당 250만원에, 그러니까 거의 창고나 사무실 짓는 수준으로 계약을 했는데 옆에 현주집하고 김사장씨집은 평당 350에 계약을 해서 집안에 들어가는 수도꼭지나 형광등, 싱크대, 하다 못 해 문고리하나까지 수준차가 많이 난단 말입니다.”

“그렇지. 그 사람들은 살림집이고 우리는 농막이니까.”

“그래도 그 기 아입니다. 일단 집이라고 지으면 집 구경하러 손님들도 오고 또 슬비, 정석이 자식들도 가족을 데리고 와서 자고갈 건데 너무 싼 물건을 날림으로 공사한 것이 대번에 표가 나서 말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 가격으로 물건을 넣으면 최고급, 상, 중, 하 네 등급 중 외삼촌은 하로 현주나 김사장은 상으로 넣으니 누가 봐도 너무 차이가 나고 어렵게 지은 외삼촌 집은 도무지 빛이 안 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얼마나 더 돈을 달란 말인데?”

“평당 50만원씩은 더 주어서 평당 300만원은 치어야 남 보기에 억수로 후지지는 않지요.”

“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문제가 돈이지.”

하는 순간

“이 사람들아, 열다섯 평에 50이면 무려 750인데 돈 750만원이 어데 아아이름이가?”

펄쩍 뛰는 열찬씨에게

“당신은 좀 가만 있어보소. 사실 나도 그 걱정을 했는데 만약 50만원을 더 주면 우리 집도 어느 정도는 갖추되 특히 싱크대는 나랑 같이 보러가서 사기로 할까?”

“예. 그러지요. 뭐.”

“역시 외숙모가 화통하십니다.”

하고 다시 교회를 가려고 나서는 사람을 잡고

“조카 보소. 우선 외삼촌이 급하면 하루씩 잘 수 있도록 서재 방 정리하고 전기 넣고 등 달고 해주소. 내가 급한 대로 이부자리하고 책상하나, 밥 끓여먹을 가스렌지와 냄비정도는 챙겨다 놓을 게.”

“예. 그러지요.”

“아니 말만 예, 하지 말고 언제까지, 아니 한 3일 후엔 준비해서 주말엔 하루 자게 해주소.”

“예.”

하고 또식씨가 떠나자

“사람이 대답은 시원시원 잘 하는데...”

“말이라도 쉬우면 좋지.”

“그게 아니라 말이 쉬우면 약속을 지키기가 어렵지.”

하면서 온갖 자재가 흩어진 데크로 나와

“보소. 데크가 넓어지니 얼마나 편하고 분위기가 사노?”

“그런가? 나는 이 데크에서 바라보는 저기 봉꼴산꼭대기 송신탑이 너무 좋다.”

“참 이상하제? 같은 부부로 40년을 살고도 이렇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을까?”

“그게 시인과 주부의 차이야.”

“아니야. 정상인과 돌아이, 미녀와 야수의 차이이지.”

“...”

펜스를 치기 전에 토사와 바위, 베어낸 나무 등걸과 대나무뿌리를 대충 치워 대문 앞쪽 장영희씨의 매실밭에 태산같이 쌓아놓는 덕분에 일단 열찬씨의 땅은 경계가 드러났다. 대문을 기준으로 왼쪽 현주씨 집으로 가는 6미터 도로를 따라 반듯한 초록색 펜스가 보기 좋았고 오른 쪽은 45도쯤의 둔각으로 한 10여 미터를 지나 비로소 반듯한 직각으로 김사장집으로 길이 났으니 집채가 앉은 부분을 뺀 나머지 마당부분은 정확한 직사각형으로 아주 반듯한 땅이었다. 이미 현주씨집, 기연씨집도 건축허가가 나자 자신도 직업이 포클레인 기사인 위쪽의 김사장은 직접 포클레인을 가져와 자기집터를 고르고 정지작업 중에 나온 바위들로 축대를 쌓기 시작하니 덩달아 열찬씨의 땅이 반듯하고 넓어졌다.

좀 늦기는 해도 6월초에 모를 부은 들깨모종을 7월 중순까지 열찬씨가 평평한 곳만 삽으로 고른 여기저기에 조금씩 모종을 낸 게 모조리 잘 활착을 해서 새파랗게 윤기가 나고 한 50평의 땅을 골라 100포기 남짓 심은 고추모종도 잘 자라 벌써 빨갛게 첫물고추가 익어가고 있었다. 금찬씨와 또식씨가 볼 때 마다 새 땅에는 특히 고추가 병(病)없이 잘 될 것이라고 하면서 열찬씨의 농사솜씨가 제법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제 마당과 장독간 공사를 한다며 어디서 마사토를 여러 차 싣고 와 태산처럼 집 앞에 부어놓은 또식씨가 정식으로 전기가 들어와 계량기를 다는 날, 형제가 또 한 번 이장과 반장을 찾아갔지만 역시 반응은 냉담하다고만 했다. 전기배선을 하는 날 또식씨가

“외삼촌, 어차피 전공이나 설비공이 왔을 때 인터넷과 텔레비전 유선과 수도파이프로 깔도록 합시다. 설령 산수도를 못 넣고 지하수를 파서 사용하더라도 일단 싱크대와 욕실과 장독간에 수도꼭지를 달고 물탱크도 세워야 되니까요?”

해서 승낙했더니 그날로 장독대를 만든다고 뚝딱거리는 지라

“뭐 특별한 설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편리하게 잘 설치하게. 너거 외숙모 눈이 매운 건 알지? 다시 뜯어내고 재공사하는 일 없도록.”

하고 돌아온 뒤 이틀 만에 갔더니 빗면인 석축을 감안해서 골, 세로 3미터의 널찍한 장독대를 시멘트콘크리트로 시원하게 잘 만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대문에서 장독간 앞을 지나 데크에 이르기까지 20평도 넘는 부분을 레미콘으로 덮어 마당을 만들어놓았다.

“이 사람아, 마당이 너무 안 크나?”

“아입니더. 요새는 주차장사마 마당을 넓게 하는 기 대셉니다. 외숙모 차 하나는 만날 댈끼고 간혹 손님차도 올 것 아입니까?”

“그렇지만 대문에서 데크까지 직선으로만 포장하면 스무 평짜리 채전밭이 하나 나올 판이었는데 그만 밭 한 뙈기가 날아갔잖아?”

“어차피 전원생활 하러 들어오시는 건데 밭보다는 화단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스무 평짜리 밭 보다야 일곱 평짜리 화단이 더 안 좋습니까?”

“하긴. 다시 걷어낼 수도 없고.”

하면서 기왕 화단으로 결정된 장독간 밑의 화단을 제1화단으로 하고 맞은편 제법 높은 석축을 따라 직선으로 건물의 끝부분 까지 4미터를 띠우고 주욱 일직선으로 그어 화단을 하되 밭이 너무 넓고 골이 길 것 같아 밭 가운데로 일직선으로 길을 내고 그 길 좌우로 화단을 갈라 제2, 제3화단을 내고 건물 끝에서 2미터쯤을 띄워 ㄷ자형으로 우물에 이르도록 또 한 5미터의 화단을 만들어 제 4화단으로 했다.

“박장로, 우리가 클 때 옛날 부잣집을 보면 붉은 벽돌을 서너 장 높이로 담처럼 쌓아 그 안에 흙을 채우고 꽃나무를 심고 벽돌위에 나지막한 철책을 친 화단 있지, 그런 화단을 주욱 만들면 돈이 얼마나 들까?”

하며 자신이 구상한 1,2,3,4화단을 걸어가며 설명하자

“와아, 화단이 장난 아니네요. 붉은 벽돌도 비싸지만 제대로 된 조적공 미장이 불러와야 되면 인건비도 많고 해서 견적이 적어도 150에서 200은 나올 거고 어쩌면 그 보다 훨씬 더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이구, 몸서리야! 입만 열면 돈뭉치가 빠져나가는 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때

“외삼촌 오셨능교?”

오랜만에 나타난 일식씨에게

“박장로는 오래 만이네.”

“예. 딴 데 일자리 좀 알아본다고요.”

“와? 형제간에 싸웠나?”

“아, 아입니더.”

일식씨가 씩 웃으며

“동생 밑에 일하는 거 아이데요.”

하자

“형님 모시고 일하는 거도 아이데요.”

하고 형제가 마주보고 웃었다. 처음에는 남 쓰느니 형님을 쓴다고 쓰고 형의 입장에서도 공사장의 인부들이 함부로 물건을 버리고 정리정돈을 안 하는 것이 맘에 걸려 자신이 들어가면 동생의 힘도 덜고 물자도 아낀다고 의기투합한 것이 막상 현실이 되니 사정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냥 노느니 동생을 도와준다고 들어갔지만 일 자체가 이런저런 허드렛일이나 청소나 정리작업인 데다 기술자들이 바쁠 때는 현장에 자재를 대어주거나 잠깐잠깐 뒤모도라는 보조역할도 해야 되는데 명색이 사장의 형님이라 일꾼들로 만만하지가 않고 스스로도 뭔가 어색한 것이었다. 거기에다 회사에 오래 다녀도 직접 노동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기계를 보던 사람이라 무엇보다 힘이 처져 입술이 부르트기에 이르러 마침내 그만두기에 이른 것이었다.

“어이, 조카들 내 좀 보자.”

조카 둘을 시원한 그늘로 불러

“이장, 반장이 수돗물을 못 준다고 하면 세상에 물을 안 갈라먹는 법은 없다고 막연하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고 가서 그대로 설명을 해보게. 우리나라 헌법에는 생존권이란 것이 있어 누구나 물을 마시고 공기로 숨 쉬면서 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아무도, 특히 정부도 말릴 수가 없어 빚이 많아 차압을 해도 최소한 밥을 해먹을 솥단지나 숟가락, 며칠간의 양식이나 이부자리는 차압할 수가 없고 또 무허가로 지은 집을 철거해도 노약자나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있다면 강제로 집행하지 않는 법이라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먹는 물에 있어서는 법에 유수인입권(流水引入權), 이게 한자라 말이 좀 어렵지만 흐르는 물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는 권리,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 사는 마을의 물, 저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샘을 파서 먹는다든지, 논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짓거나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고 또 물고기를 잡아 반찬으로 먹는 일은 몽리(蒙利)민, 그러니까 그 산 아래나 강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허용해야 하며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일세.”

“예. 외삼촌 우리가 그렇게 조목조목 유식하게 이야기는 못해도 세상에 샘을 막거나 물을 안 갈라먹는 법은 없다고 누누이 설명해도 이제는 마을유지들이 반대한다고 말을 돌리데요.”

“마을원로들은 와?”

“그 기 참 골치 아픈데요.”

“그래 설명해 봐.”

“옛날에 사광리 사람, 등말리사람들이 간월이나 배내쪽에 나무 해다 땔 동네 산을 많이 사두었는데 요새는 집집이 나무도 안 때고 해서 감감 잊고 있었는데 어디서 동산이 개발된다고 팔라면서 수십억 돈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토박이주민들 끼리 저들끼리만 나누려고 스무 집도 안 되는 토박이끼리 심지어 몇 해 전에 이사 간 사람도 빼고 저들끼리 만 쉬쉬하며 나누려는데 이 사실을 안 들어온 사람들, 그러니까 도자기집이나 외삼촌처럼 객지서 들어온 사람들과 사광리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 여남은 집이 자기네들로 나눠달라고 제동을 걸었지요. 그래서 토박이들이 사광리새마을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회원들만 동산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정관을 만들어 법인등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객지서 들어온 사람들은 세상물정에도 밝지만 사과밭영감처럼 깡이 좋은 사람도 있어 왜 ‘너거만 사광리 새마을회냐, 우리도 사광리에 사니 새마을회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시비를 걸어 재판을 걸었답니다.”

“그래서?”

“새마을회는 누구나 가입의사만 있으면 가입하는 임의단체이니 전체주민에게 공평하게 나누어가지라는 판결이 나왔답니다.”

“그래? 나도 몇 년 일찍 들어왔으면 횡재했겠는데?”

“아이구, 그 기 또 골치가 아픕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고 뼛골이 쑤신 영감들이 이번에는 사광리발전위원회를 결성하고 마을발전을 위해 가구당 5천만 원도 넘게 돌아가는 돈을 2천만 원씩만 내어주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어둔 것이지요. 그리고 다들 욕심은 굴뚝같지만 외지서 들어온 사람들까지 늘 감시를 하는데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회장은 회장대로, 총무는 총무대로 근 십억의 돈뭉치가 꼭 제 것 같지만 차마 손을 못 대고 허송세월만 하고 그러다가 발전위원회위원 노인들은 하나둘 죽어가고, 그 참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자네들도 일단 돈맛은 봤네?”

“예, 그렇지요, 뭐.”

“그러니까 토박이들이 이사 오는 뜨내기들에게 감정이 좋을 수가 없겠구나. 그러면 이제 작전을 바꾸자?”

“어떻게요?”

“우선 현주가 있잖아? 여기서 나고 시집갈 때 까지 자란 명촌의 딸 아닌가? 아무리 인심이 숭악해도 제가 나고 자란 땅에 아직 친정이 있고 엄마가 살아있는 마실에서 물을 안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이야.”

“예. 그건 그렇지요.”

“또 내만 해도 그렇지. 우리 어머니가 이 마을 사람이라 너거 외할매 택호가 명촌댁이고 또 바로 옆에 누님이 사는데 이 동네하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마실 물을 안 준다카이 명촌동네는 부모형제도 없는 마실인가 하고 따지란 말일세. 부모형제를 알고 세상이치를 아는 사람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고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정 어려우면 내가 이장을 만날까?”

“아, 아입니다. 우리 손에서 해결을 하지요.”

“그래 너거가 장로고 집사고 하니까 그만한 일이사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예. 알겠습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