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10)

프로야구가 끝나고 나서 열찬씨가 불을 끄고 눕자 박스 안에서 잠잠하던 마초가 가끔씩 몸을 뒤척이며 끙끙대어 다시 물을 켜고 들여다보니 눈곱인지 눈물인지 눈 밑이 지저분한 마초가 빤히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밥도 꽁치통조림도 그냥이었다.

(그렇지?)

냄비를 들고 온 열찬씨가 꽁치통조림과 밥을 담고 자기가 먹다 남은 국물까지 넣어 한참을 끓여 김을 낸 뒤 또 한참을 식혀

“자, 먹어라.”

입에 대어주니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 조금 먹기 시작했다.

“그래. 먹어야지. 안 굶어 죽을라면 지 신세 지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하던 열찬씨가 냉장고에서 식빵 한 조각을 가져와 조금씩 떼어 꽁치국물에 적셔

“묵어봐라. 내가 내 어릴 때 보다 엄청 고급으로 묵는 줄만 알고.”

하고 내미니 고분고분 받아먹었다. 배가 부른지 고개를 돌릴 때 쯤

“잘 자거라. 사람이나 개나 혼자 자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된단다.”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 불을 껐는데 다행히 더는 찡찡 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 열찬씨가

“마초, 잘 잤어?”

하고 눈을 들여다보니 말간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 내 새끼!”

덥석 안으려던 열찬씨가

“아이구, 냄새야.”

강아지만 내려놓고 개똥과 음식물이 너부러지고 오줌을 잔뜩 지린 라면박스를 통째로 들고나가 쓰레기장에 버리고 새 박스를 들고 왔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거나 아이 하나를 키우는 거나 일거리가 똑 같은 것이었다.

밭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 국을 덥혀 아침을 먹던 열찬씨가 발가락이 간질간질해 바라보니 아니, 마초라는 녀석이 열심히 빨다가 말갛게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새끼, 금방 정이 들 걸, 그렇게 낯을 가릴 건 뭐야?”

숟가락을 놓고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다시 박스에 넣어놓고 손을 씻고 의자에 앉는데 금방 따라와 다시 발을 핥는 것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저도 따라 나와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꽃과 채소, 수돗가의 물구멍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열심히 냄새를 익히고 있었다.

“야, 비켜라. 생매장 되겠다.”

삽으로 흙을 퍼 올릴 때마다 얼찐거리는 마초가 꼭 싫지만은 않아 그날은 쉴 때마다 마초를 쓰다듬어주니 외로운 줄을 몰랐다. 저녁엔 박스를 현관바닥에 놓고 방문을 열어놓아 서로 눈이 마주치게 하고 잠을 잤는데 한 번도 칭얼거리지 않고 잘 잤다.

토요일 밤에 영순씨가 차에서 내리자

“...?”

두 발을 나란히 세워 벋대면서 잔뜩 경계하던 마초가

“나, 할머니야 마초야!”

영순씨가 손을 내밀자 금방 꼬리를 흔들며 안겼다.

“귀여운데, 당신 소일거리가 되겠어.”

데크에 불을 켜고 탁자에 마주 않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데

“아이구, 깜짝이야!”

그새 발가락을 핥아대는 마초를 들어 올리며 영순씨가 웃었다.

준비도 없이 시작한 일로 그럭저럭 집은 완공되었으니 이제 여기저기 가까운 사람을 불러 집들이를 하는 게 순서였다.

“누님, 내일 자영하고 올라와서 점심이나 먹읍시다.”

장촌의 덕찬씨에게 연락하니

“그래. 뭐 사 가꼬?‘

“마 그냥 오소. 전에도...”

하는 순간 영순씨가 황급히 옆구리를 질렀다. 매형이 모르는 펜스이야기라도 나오는 날이면 난리가 날 것이었다. 일요일에 하려니 교회에 가는 금찬씨가 안 되고 무심 날 하려니 직장에 다니는 백찬씨가 올 수 없어 겨우 4남매가 모이는 일이 여의찮아 백찬씨 내외는 따로 부르기로 하고

“뭘 좀 하겠노? 자영이 닭을 좋아하니 닭이나 몇 마리 고을까?”

“맞아. 그런데 고모부는 보통 사람은 질겨서 묵도 못 하는 토종닭이나 폐계 닭만 자신다는데.”

“그거는 걱정 없다. 언양장에 토종닭 파는 집이 있다.”

금찬씨의 말대로 장터의 윤씨닭집으로 가서 한 마리에 만 팔천 원 씩을 주고 커다란 장닭 두 마리를 사면서

“이 닭은 어데서 오능교?”

“저 전라도 완돈가 어디 외딴섬에 방목해서 키우는 자연사 아잉교?”

“맞아. 찔기기는 틀림없는 토종닭인데 고신 맛이 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금찬씨의 옆구리를 영순씨가 질렀다.

“와 이라노? 올캐야, 말을 바로 해야지.”

“주인 말이 맞겠지요. 또 그렇게 생각하고 묵으면 그런 맛이 날 기고.”

“맞다. 맛만 좋겠다.”

열찬씨도 나서서 금찬씨를 끌고 나왔다.

“암만 해도 폐계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전에 뒷산에 양계장 한창 할 때 우리가 폐계 닭은 좀 사다 묵었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 마리 천원이지만 우리는 마실사람이라고 천원에 두 마리씩 주더라. 너거 자형이 워낙 솜씨가 좋아서 낱낱이 쫒아서 지져도 묵고 폭 고와서도 묵고...”

“장촌자영 한테는 폐계란 소리 하지마소.”

“고서방도 안다. 그 집 닭 자주 사다 묵는다.”

무엇이든지 확실한 걸 좋아하고 조바심이 많은 고차대씨가 이튿날 아직 닭이 익기도 전인 11시에 올라와

“야아 내가 숭군 무시기 잘 나기는 났는데 화단에 무시 심은 사람은 첨 봤네.”

하고 빙긋 웃더니

“배추모종 잘 크고 있다.”

하는 순간 불을 때던 금찬씨가

“명촌사람들은 어데 김장 안하나? 어데라꼬 배추모종 없을까 봐.”

노골적으로 질투심을 드러내는 시누이를 보며 영순씨가 픽 웃었다. 처음 배추모종이야기가 나왔을 때 배추씩 무씨 종자 값이 비싸니 어쩌니 해서 자기네 배추 모종은 사다 심기로 하고 무씨는 한 통을 사면 씨알이 천 개나 되니 우리 것 심고 남는 건 형님께 주겠다고 역 제안을 해 금찬씨가 기뻐하는데 하필이면 그 때 고차대씨의 전화가 와서

“처남, 너거 무시 안주 안 숭갔제? 우리 꺼 숭구고 남은 씨가 있는데 내가 시방 올라가서 숭가주께.”

하고 곧바로 올라와 심어주고 간 일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상해 괜한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아따, 잘 익었네. 처가 집에 가면 장모님이 씨암탉 잡아준다는 말이 무슨 말인 줄 몰랐는데 나이 칠십하고도 다섯에 둘째 처수씨가 닭을 잡아주네.”

영순씨를 쳐다보며 히쭉 웃는 고차대씨의 코가 덜렁했다. 열찬씨와 둘이 금방 살찐 닭다리 하나를 들고 뜯는데

“나도 한 다리 하까?”

금찬씨도 야무지게 달라붙었다.

“나는 이빨도 시언찮고 낸주게 닭죽이나 묵을까?”

젓가락으로 고기부스러기를 주워 먹던 덕찬씨가
“윌깨야, 니는 안 묵나?”

“예. 저는 원래 물에 빠진 고기는 잘 안 묵습니다. 나도 나중에 죽이나 먹지요.”

하는 사이에 셋은 무슨 전쟁이라도 치르듯 맹렬한 기세로 먹어치우다

“아이구, 처남댁은 열무김치도 맛있게 담네.”

고차대씨가 흘낏 덕찬씨를 바라보는데 괜히 열찬씨가 뜨끔했다. 마음 하나 순하고 태평한 걸 빼면 얼굴이나 몸맵시도 음식솜씨도 손재주도 무엇 하나 야무진 데가 없는 누님을 저 멀쩡하게 생긴 매형이 타박 한 번 않고 평생을 살아준 것이 너무나 고맙고도 황송한 것이었다.

“아이구, 잘 묵었다. 이병철이 안 부럽네. 올캐야, 인자 죽 줄라나?”

닭다리를 찢어 발겨 맛있는 고기만 뜯어 먹고 너덜거리는 물렁뼈가 붙은 채로 젓가락을 놓은 금찬씨를 보며

“새이야, 음식 좀 알뜰하게 무라. 만든 사람 생각해서.”

덕찬씨가 힐난하자

“나는 맛없는 거는 목에 안 넘어간다.”

“사람이 우째 맛있는 거만 묵고 살아지노?”

“가시나야, 그럼 니는 맛없는 거 목에 넘어 가더나?”

“...”

괜히 분위기가 싸한데

“남은 다리 아무도 안 묵을 끼 제?”

고차대씨가 남은 닭다리 하나를 챙겨갔다.

기왕 시작한 일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시골에 집을 지어 반쯤 이사를 왔다고 인사는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열찬씨의 말에

“말은 맞네. 그렇지만 당신은 마음만 내면 되지만 나는 얼마나 일거리가 많고 돈이 드는데...”

묘한 표정으로 웃는데

“그라면 안 하고 넘어갈 끼가? 소문은 뭐 같이 났을 낀데.”

옆에 있던 미혜씨가 거드는 바람에 우선 장모님과 처가 형제들을 초청하기로 했다. 월내의 오리농장시절엔 옥수수랑, 감자랑 먹을 것도 많은데다 난생처음 넓고 편안한 밭 가운데서 다들 그렇게 비가 창대같이 쏟아져 바람에 사정없이 펄렁거리며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정색 그늘 막 아래서 몇몇은 우산을 쓰거나 비닐 우의를 입고 어떤 사람은 등산용 점퍼의 모자를 쓰고 등에 빗물이 흘러내릴 때까지 방부목 데크에 둘러앉아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밤에 옥수수와 삼겹살을 궈 먹는 것은 평생처음이라며 아무도 방에 들어갈 생각을 않고 엄청나게 먹어대다 술이 오른 사내들의 선창으로 밤하늘에 대고 노래까지 부른 생각이 나면서

“오리농장 생각을 하면 갑자기 우리가 부르주아가 된 것 같아. 허술한 움막이 그림 같은 집이 되고 넓은 데크와 탁자와 투명한 방수 지붕에 휘황한 조명이 다 구비되었잖아? 장난꾸러기 마초도 있고.”

“나는 그것보다 끓여 먹이는 것이 너무 편해서 좋을 것 같아. 웬만한 건 주방에서 익히고 고기정도만 밖에서 구우면 되고 또 비가 오면 바로 방으로 철수하면 되고...”

“그래. 빨리 한번 해 봐. 그래야 나도 오랜만에 사촌 제부들이랑 고모얼굴도 한번 보고.”

미혜씨가 신을 내자

“엄마야, 친정식구들 초청할라캤는데 언니 니는 와?”

“와, 나는 친정식구 아이가?”

“언니는 친정이 아이고 사촌 아이가? 형제 계 할 때 초청대상이지.”

“그렇지만 군식구도 하나 있어야 재미가 있다.”

당연하게 참석하는 것으로 못을 박더니 하루 전 반여농수산물시장에서 장을 볼 때 제발 삼겹살과 목살을 조금만 더 사라며 통사정을 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