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93 가을의 노래 - 해국(海菊), 나는 떠나고 싶어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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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3 20:59 | 최종 수정 2021.10.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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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바닷가 언덕에서 만난 바다국화입니다.
깎아지른 바위틈에서 바람에 날려 온 아주 소량의 흙에 뿌리를 내리고 세찬 바닷바람에 부러지지 않게 가장 낮은 자세로 웅크리고 살아가는 꽃입니다. 어쩌다 비가 오면 재빨리 수분을 섭취하게 위해 가장 넓게 잎과 줄기를 펼치다 가을이 오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꽃을 피웁니다.
그렇지만 늘 영양이 부족해 꽃과 줄기가 아래쪽 육지국화 구절초에 비하면 형편이 없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 보릿고개의 문설주에 서서 막연히 도회를 동경하던 소년소녀들이 대부분 대도시의 공장과 시장바닥으로 흘러왔듯이 환경이 열악한 저 바다국화도 늘 좀 더 비옥한 땅, 바람이 순한 땅을 꿈꾸다 기회만 되면 민들레 홀씨처럼 나그네가 되어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부산 송도나 기장의 바닷가에도 어김없이 저 빈약한 해국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어느 한 곳도 파도가 치지 않거나 해풍이 불지 않는 곳이 없어 거기에 피는 꽃들도 여전히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나그네를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나그네는 길에서 잠들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저 바다국화나 우리 인간이나 영원히 떠도는 나그네이면서 단 한 번도 그 고달픈 길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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