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6 가을의 노래 - 억새꽃 가을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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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22:19 | 최종 수정 2021.10.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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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을이 다가옴을 어디에서 느낄까요?
아침저녁 소매 끝을 스치는 선들선들한 바람결에서, 마당 한 구석에서 식어버린 모깃불에서, 발갛게 익어가는 대추와 사과에서,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에서 또 흥감스런 개옻나무와 산마덩굴의 단풍에서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은백색의 질감 좋은 긴 이삭에 자줏빛의 정갈한 꽃을 피워내며 길가에 선 억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무르익는 가을은 어디에서 느낄까요?
황금빛 벌판과 알밤, 꼬투리가 말라버린 누런 호박이나 높푸른 하늘과 한가위의 둥근 달에서도 느끼겠지만 구름이 얼룩덜룩한 하늘을 배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광인처럼 머리를 풀고 일렁이는 억새를 보며 세월의 스산함과 인생의 신산(辛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진은 고래뜰 억새를 깨운 가을바람이 바들뜰에 서걱대는 억새꽃을 잡고 하소연하는 모습입니다. 또 한 해가 기울고 있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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