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0 가을의 노래 - 다래덩굴을 사랑한 산마덩굴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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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18:42 | 최종 수정 2021.10.1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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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생 다래덩굴은 소나무든 참나무든 붙잡을 데만 있다면 어디든지 감고 올라가 사람이나 짐승의 손이 닿지 않는 아득히 높은 곳에 열매를 매답니다.
그 아래로 여러해살이 덩굴이긴 하지만 해마다 새순이 나는 산마덩굴이 결사적으로 다래덩굴에 매달려 손바닥만 한 하늘공간을 차지하고 햇빛을 받아야 합니다.
“날 좀 붙잡아 줘. 사랑해 다래덩굴아, 우리 같이 가!”
애타는 산마덩굴의 애원에 제 앞길이 급한 다래덩굴은 반응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득히 높은 물푸레나무를 올라가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사랑도 얻지 못 하고 동반자도 없는 가여운 삶, 결국 산마덩굴은 아직 추석 전인데도 이 숲속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들고 말았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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