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는 21세기 지정학의 윤곽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 정치에서 2025년은 오래된 질서가 종식된 해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재편에 착수한 만큼이나 수십 년 된 규범과 제도를 극적으로 무너뜨렸다. 그의 관세는 다자간 무역 시스템을 강타했다. 유엔부터 해외 원조에 이르기까지, 국제 외교 시스템은 미국의 자금 삭감으로 타격을 입었다. 오랜 안보 동맹은 거래 중심의 관계로 재편되었고,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적 영향력은 이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 세기만에 가장 광범위한 행정권 행사를 감행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도시에는 군인들이 투입되었고, 대학들은 위협과 자금 삭감으로 굴복 당했다.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미국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독립적 기관-옮긴이 주)의 독립성은 공격을 받았고, 정부 조직은 대통령의 적들에 맞서 배치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어,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조치들은 경직된 시스템에 절실히 필요한 교란이었을까, 아니면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에 대한 공격이었을까? 거래적 협상은 일을 처리하는 혁신적인 새로운 방식이었을까, 아니면 장기적인 전략적 지혜를 짓밟은 마피아 전술(mafioso tactics, 폭력·협박·보호비 요구 등 범죄 조직이 쓰는 강압적·거래 중심의 방식-옮긴이 주)의 승리였을까?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주요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 부패, 독립 기관의 정치화가 초래하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 팀이 법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불안감도 커졌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소프라노스”식 리더십(“Sopranos”-style leadership, 미국 HBO 드라마 『소프라노스』에 나오는 마피아 두목의 방식으로, 폭력·협박·거래 압박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리더십을 비유함-옮긴이 주)은 실제 성과를 가져왔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가자지구 휴전이었다. 이는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많이 조롱 받던 그의 뉴욕 부동산식 외교(New-York-real-estate style of diplomacy, 마치 뉴욕의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처럼 즉각적인 이익을 앞세우고, 강경한 흥정과 거래 압박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방식-옮긴이 주)가 정당함을 입증했다.
NATO 동맹국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1년 전만 해도 거의 상상도 못했던 국방 예산 증액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소규모 국가들 간의 갈등에서, 노벨 평화상을 갈망하고 관세 위협과 무력 개입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는 분쟁을 해결하거나 적어도 은폐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분명한 실패도 있었다. 전략적으로 볼 때, 인도(러시아산 석유 수입에 대한 징벌적 조치라는 명목)와 브라질(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재판에 회부했다는 이유)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두 결정은 모두 이 국가들을 중국과 더욱 가까워지게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시진핑 주석에게는 밀렸다. 중국은 2025년 무역 벼랑 끝 전술의 확실한 승자였다.
2026년에는 새로운 세계의 윤곽이 세 가지 주요 영역에서 훨씬 더 명확해질 것이다
다행히 관세가 세계 경제를 침체시키지는 않았다. “해방의 날”(Liberation Day,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대규모 관세를 발표한 날) 이후 6개월이 지난 지금, 관세로 인해 발생한 세수는 미국의 실질 평균 세율인 10%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4월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보복 조치는 제한적이었고, 1930년대와 같은 무역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대신에, 각국은 협상을 통해 거래를 성사시켰고, 관세 부담의 상당 부분은 수입업자들이 떠안았다.
한편 트럼프 팀은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하고, 암호화폐에 대해 열광하며, 그리고 미국이 인공지능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무모할 정도의 집념을 확고히 했다. 이로 인해 눈에 띄는 주식시장의 호황을 이끌어냈다. 이는 놀라울 만큼 회복력이 강한 경제를 떠받쳤다.
이러한 호황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재계 지도자들 사이에 획일적인 인식을 형성했다. 세상이 어디로 향하든, 집단적 시각은 미국 경제가 번영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특히 공개적으로는 더욱 그랬다.
옛 질서가 무너지면서 2026년에는 새로운 세계의 윤곽이 세 가지 주요 영역에서 훨씬 더 명확해질 것이다.
첫째,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미래이다. 11월 중간선거는 미국이 준권위주의quasi-authoritarianism)의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를 보면,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시대가 아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인기가 훨씬 낮다. 게다가 행정부가 미국의 선거 시스템에 개입하려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미국 외교 정책이 향하는 방향에 대한 가장 명확한 신호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올 것이다.
대서양 건너편(유럽)에서는, 2026년 유럽의 주요 경제 대국들에서 ‘MAGA식 포퓰리스트 민족주의자들’(MAGA-style populist nationalists, 트럼프의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비롯된, 반엘리트·반세계화 성향의 대중영합적 민족주의 정치 세력을 지칭-옮긴이 주)이 권력의 문턱에 서 있는지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
영국에서는 나이젤 패라지의 영국개혁당(Reform UK party)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는 그 지지율이 실제 표로 이어질지, 그리고 차기 총선이 치르질 때 ‘총리 패라지’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가늠하게 해 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역사를 볼 때, 2026년에 또 다른 정부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의회 선거가 강제로 치러지고, 아마도 조단 바르델라가 포퓰리스트 우파 출신으로는 프랑스 최초의 총리가 될 것이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에 대한 “방화벽”이 유지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분명해질 것이다.(독일 정당들이 지금까지 극우 정당 AfD와는 연정이나 협력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불문율을 지켜왔는데, 이를 “방화벽”이라 부른다. 따라서 “2026년 독일 정치에서, 기존 정당들이 극우정당 AfD와 거리를 두는 장벽이 계속 유지될지, 아니면 무너져서 극우 정당 AfD가 권력에 더 가까워질지 판가름 날 것이다”라는 뜻이다.-옮긴이 주)
두 번째로 명확해질 영역은 지정학이다. 2026년 트럼프식 거래주의는 전 세계 곳곳에서 변덕스러운 평화 중재, 미국 뒷마당(중남미)에서의 강력한 개입주의, 그리고 중요한 공급망을 둘러싼 기회주의적 거래가 뒤섞인 기묘한 혼합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노벨 평화상에 대한 트럼프의 열망은 그를 중동 문제에 계속 관여하게 할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면전에 다시 돌입하는 것을 막고,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사면과 어쩌면 우아한 정치적 퇴진을 추진할 것이다.
트럼프는 다른 지역에서도 ‘평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 다만 그 깃발 뒤에는 언제나 계산서가 숨어 있다. 특히 희토류 거래를 챙길 수 있는 곳이라면, 평화의 이름으로 등장해도 결국은 자원의 냄새를 좇는 장사꾼의 발걸음일 뿐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완강한 태도에 직면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유럽에 맡길 것이다. 포퓰리즘 우파의 부상에 흡수된 유럽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외교 정책의 방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신호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 나올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거래를 하려는 욕망 때문에 대만에 대한 지지를 위험할 정도로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의도적인 무관심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미국 경제가 약화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대규모 무역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경우에는 더 그러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서반구(이 글에서는 라틴아메리카를 의미-옮긴이 주)에서는 미국의 힘이 거칠게 사용될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와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같은 이념적 동조자들에 대한 지지와, 이념적 적수들에 대한 거리낌 없는 압박을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정권 교체 시도가 예상되고, 콜롬비아에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예상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호전적인 태도는 이민, 범죄, 마약 문제에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대통령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라틴 아메리카에서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면, 국내 유권자들에게 “트럼프는 국경을 지키고, 범죄와 마약을 단호히 막고 있다”는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옮긴이 주)
세 번째 명확성은, 좋은 나쁘든, 경제에 있을 것이다. 심각한 조정이 있든 없든, 급등하는 주가는 2025년처럼 신뢰를 뒷받침하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혁신하는 영향력도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빠르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관세로 인한 피해는 더욱 뚜렷해지고, (관세로 인한) 소비자에 대한 압력은 한층 무거워지며, 미국의 재정 적자는 지속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의장을 누구로 지명하느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끝났는지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연방준비제도는 미국의 중앙은행으로, 전통적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원칙이다. 대통령은 의장을 지명할 권한이 있지만, 트럼프가 만약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인물을 의장으로 임명한다면, 이는 중앙은행이 더 이상 독립적이지 않고 대통령의 정치적 도구로 전략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옮긴이 주)
다른 부유한 나라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감안하면, 달러 이탈(stampede from th dollar, 세계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달러를 대거 팔고 다른 통화로 옮겨가는 현상-옮긴이 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다른 선진국 경제가 혼란스러우니, 달러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지로 남아 있다는 뜻-옮긴이 주)
그러나 2026년 말쯤에는 미국 경제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지금까지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성장성이 높아 “예외적”으로 평가 받아 왔다. 그러나 2026년 말에는 관세와 무역 갈등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 증가, 재정적자 확대로 인한 지속 불가능성 노출, 경제 성장 둔화와 공급망 불안정 등으로 미국 역시 점차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며 “유일한 안전한 경제”라는 이미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뜻-옮긴이 주)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좋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경제가 약화되면, 민주당이 하원 탈환의 기회를 잡고, 미국 민주주의에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되살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동시에 불안한 금융 시장은 백악관의 혁명가들(White House revolutionaries, 트럼프 팀의 강경파 참모들과 정치적 동지들의 은유적 표현으로, 이들은 주로 미국 정치제도와 헌법적 관습을 흔들거나 무시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이다-옮긴이 주)이 가장 악랄한 헌법 위반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가로막는 억지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경제가 약해지면,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더 큰 실용주의를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용감한 기업가 한두 명이 미국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 단기적인 어려움은 나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재니 민튼 베도스,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