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8 가을의 노래 - 소강냉이의 시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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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 22:20 | 최종 수정 2021.10.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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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적엔 자기 밭에 옥수수를 심을 만큼 땅이 넓은 집이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란 열매에 갈색 알맹이가 몇 개 박힌 맛있는 옥수수를 먹는 아이가 늘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그리고 장날 해거름에 어쩌다 한 번씩 어머니가 사다주는 강냉이박상을 깨어진 바가지에 담아 몇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서로 많이 먹으려고 투닥거리고...
그래서 촌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옥수수만 생각하면 늘 군침이 도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잘 사는 시대가 되어 빵과 과자. 피자와 햄버그가 넘쳐흘러 그렇게 옥수수에 군침을 삼키는 아이는 별로 없습니다.
단지 우리 같은 중늙은이나 시장이나 도로변에서 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사먹으면서 추억에 잠길 뿐 아이들은 주로 옥수수 칩이나 폰후레이크로서 옥수수와 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 키우는 집이 많은 명촌리의 고래뜰이나 이불뜰, 바들뜰에는 이제 벼대신 옥수수를 심는 집이 많습니다. 짧은 기간에 왕성하게 자라는데다 영양가가 풍부한 열매까지 콤바인으로 따로 알맹이를 탈곡하지도 않고 단번에 잘라 소의 영양식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골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대량으로 심고 무심하게 베어버리는 이 옥수수를 <소강냉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어릴 적에 소를 보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소먹이기>와 <쇠꼴베기>그리고 소를 먹이며 씹어 먹던 단물이 줄줄 흐르던 옥수숫대인데 이제 명촌리에선 그런 모습을 전연 볼 수가 없습니다. 보릿고개의 아이들이 군침을 흘리던 옥수수가 이제는 식용보다는 사료용으로 심는 면적이 더 많은 불편한 현실, 바야흐로 <소강냉이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멋쩍은 일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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