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진보규

한 이틀 묵으시고 불현듯 가신다니

간곡히 만류하며 붙잡아 보련마는

손사래 거듭하시며 지팡이를 앞세웠소

열댓 평 밭뙈기에 뿌린 씨앗 눈에 밟혀

떠나 실 채비하며 챙기시는 두루마기

빛바랜 소맷자락이 애처로워 외면했소

예부터 못 속일 건 핏줄이라 하더니만

할부지 옛 모습이 영락없는 아버지라

저 또한 나이 먹으면 아버님을 닮을 테죠

한평생 흙을 읽고 흙과 더불어 살아오신 아버지. 열댓 평 밭뙈기지만 그곳에는

아버지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생명의 밭에서 숨 쉬고 있는 씨앗은 아버지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살아오신 길은 이미 뿌리를 내렸고

우리는 그 중심부 깊숙이 들어와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김석이 시인

◇김석이 시인

▷2012 매일신문신춘 당선
▷2013 천강문학상, 2019 중앙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비브라토》 《소리 꺾꽂이》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
단시조집 《블루문》 동시조집 《빗방울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