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죽고 잡혀가고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다.
“마초야, 잘 잤나?”
습관처럼 강아지를 챙기려고 문을 여니 저 앞쪽 현주씨네 지붕이 하얗게 다가왔다.
(벌써 서리가 왔나?)
맨팔에 선들선들한 한기가 스미어 긴 옷을 찾아 입고 나오니 무, 배추도 잔디밭도 하얗게 서리에 덮여 있었다. 좀 조밀한 곳에서 무를 하나 쑥 뽑아 수돗물에 대충 씻어 식탁위에 올려놓고 전화를 걸어
“부산에는 서리가 안 왔제?”
아직 잠이 들 깬 영순씨에게 물으니
“이 양반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좀 하지마소. 서리는 무슨 서리?”
“서리가 내리면 김장때가 다가온단 말이지. 그리고 무시에 맛이 들어 생 무를 낫으로 깎아서 먹으면 달고 구수하지. 그리고 무시 이파리를 막장에 찍어 먹어도 들큰한 맛이 나고.”
“알았어요. 젓갈이나 양념 같은 김장준비도 하고 김장멤버구성도 해야겠네.”
하고 서재에 들어가 두어 시간 글을 쓴 뒤 바깥에 무슨 소리가 나서 나오니 금찬씨가
“동생 니 서리 온 거 아나?”
하고 씩 웃더니
“마초 들들 뜨는 거 좀 봐라. 마초 집 바닥에 이불쪼가리라도 좀 깔고 문에도 바람 안 들어가게 방침을 좀 하고.”
“예.”
하는데 방안의 전기밥통에서 쉬쉬! 김이 배출되는 소리가 나는지라
“밥 안 묵었지요? 오늘은 무시이파리하고 쌈 사 묵을라고 한 포기 뽑아놨는데.”
“밥이사 묵었지만 동생니가 하는 말이 괘심해서라도...”
하고 방으로 들어오다
“기왕이면 배추도 하나 뽑아 묵자.”
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놈 하나를 뽑아 낫으로 뿌리를 자르고 칼로 가운데를 잘라 두 쪽이 된 놈을 수돗물에 씻어
“야야, 소구리 하나하고 물 받칠 그륵 하나 도라.”
해서 상위에 놓고
“오늘은 다른 반찬 필요 없겠다.”
하면서 배추이파리에 밥과 막장을 듬뿍 얹고 옹차게 먹어대더니
“월깨가 있었으면 매쩟에다 초장에다 갖춰서 묵을 긴데.”
하면서 이번엔 무 잎을 하나 떼어 막장에 찍어 먹어보고
“맛 들었네. 꼬시다. 동생도 묵어봐라.”
해서 열찬씨도 먹어보니 고소하기가 어릴 때와 다름이 없었다.
“계절이 참 희한하제? 옛날부터 무시, 배추는 서리가 내려야 맛이 든다고 했는데 어제까지 별 맛이 없던 무배추가 간밤에 서리 쪼깨 왔다고 이래 맛이 확 달라질까?”
“맞아. 서리를 맞아야 채독(菜毒)에 안 걸린다고 했제?”
그래 그 때는 마실마다 채독에 걸려 얼굴이 노랗게 되어 맥을 못 추는 사람이 많았지.“
하는 사이 찬장을 뒤져 고추장을 찾아낸 열찬씨가 밥사발에 막장을 반쯤 담고 그 위에 고추장을 몇 숟갈 놓고 식초와 매실즙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숟갈로 이리저리 섞는 걸 보고
“내 동생이 살림꾼 다 됐네. 기왕이면 마늘 다진 것 하고 고춧가루를 좀 넣으면 깊고 칼칼한 맛이 난단다.”
해서 영순씨가 일일이 까서 납짝한 덩어리를 만들어 랩을 씌워 냉장고에 보관중인 마늘 다진 것과 고춧가루까지 넣어 쌈장을 만들어 먹으니 한결 맛이 나았다.
“아이구, 잘 먹었다. 이병철이 안 부럽네.”
숟갈을 놓는 금찬씨를 보며 커피 물을 올리던 열찬씨가
“그렇게 잘 먹는 밥을 와 생각이 없다캤노?”
“집에서 혼자 먹을라카면 참 생각이 없다. 억지로 먹어도 맛이 안 나고.”
“며느리가 제대로 반찬을 안 해주나?”
“해주기는 해주는데 가게에 쓰는 반찬은 내 입에 안 맞는다. 국도 그렇고,”
“그래도 시어마시가 밥을 제대로 먹기는 하는지 자기가 해다 놓은 밥이나 반찬이 들어가는지 마는지 보면 시어마시가 묵는지 마는지 알 거 아이가?”
“바빠서 일일이 신경 쓰기도 힘들지만 우선은 월깨만 있으면 너거 집에서 묵고 또 일주일에 두 번 노인일자리사업 청소하러 노인복지회관 가서 먹고 또 반모임하는 김권사랑 같이 먹고 하는 걸 잘 아니까 큰 걱정은 안 하는 모양이더라.”
“그래도 사람이 끼니는 한군데 정해놓고 제대로 묵어야지.”
“야아, 내가 어데 밥이 없나? 혼자 먹기가 그래서 그렇지.”
금방 표정이 안 좋아 커피를 타서 건네주며
“알았심더. 커피나 마시소.”
하는데
“근근이 무시이파리에 쌈 좀 사서 먹었기로 잔소리도 더럽게 많네.”
“아니, 누님. 그게 어데 잔소리요? 내가 걱정이 되서 그렇지.”
“마. 시끄럽다. 니도 늙어 혼자 되 봐라.”
하며 금방 눈물이 핑 도는데
“아이구 할마씨 흥감도 시럽제.”
기가 찬 열찬씨가 숟가락을 놓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튿날이 일요일이라 아침 일찍 영순씨가 올라올 줄 알고 기다리다 오지 않아 궁금한 판인데 영순씨가 전화가 와서
“당신 점심 안 묵었제?”
“마누라 오면 잘 얻어 묵을라고 아침도 대충 묵었다.”
“응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엄마, 언니 셋이 모여서 오는데 장촌형님이 전화가 와서...”
“그래서?”
“김장거리 생강하고 대파하고 좀 준다고 장으로 오라고 해서.”
“응. 그라고 보니 장날이네 오늘이.”
“그래서 고모부하고 다섯이서 점심 묵는다. 당신도 알아서 점심을 잡수소.”
“그래 알았어.”
하고 라면을 끓여 끼를 때우는데
“처남은 글은 잘 쓰는가?”
이내 고차대씨와 덕찬씨가 한 차로 영순씨와 순란씨, 미혜씨가 한 차로 들이닥쳐 비잉 둘러앉아 과일을 깎고 커피를 끓여 판을 벌이다
“아이구, 불쌍해라. 우리가 소머리 탕 묵을 때 영감은 라면을 먹었네.”
영순씨가 일부러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는데
“영순아, 낸주게 라면 한 개 끓여먹을까? 그라고 보니 라면 묵어본지가 오래네.”
“안 되지. 언니 몸에 해롭다 아이가?”
“그거 하나 먹는다고 갑자기 죽을까? 이미 골병이 들 만큼 든 내 몸이...”
하는데
“어이. 일 없소. 내 조카는 내가 지켜야지. 절대로 못 묵소.”
순란씨가 가로 막았다.
“올캐야, 우리 영감 좀 보소. 인지까지 넘의 집에 가면 10분도 못 견디고 가자고 노래를 하는 사람이 처가집이라고 여기 오면 한 시간도 진득이 잘 견디고 또 가끔은 자기 입으로 명촌에 처남은 잘 있는가 하고 은근히 가자는 신호도 보내고 말이야.”
하는데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자!”
사과를 집었던 포크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던 고차대씨가
“아이고 사돈 앞에서.”
순란씨와 눈이 마주치자 멈칫하는데
“처남 집에만 가면 국도 장도 다 맛있다고 난리네. 평생 내가 해준 밥을 잘만 묵던 사람이 요새는 반찬투정도 다 하고.”
하며 힐끗 남편 눈치를 한번 살핀 뒤
“그건 그렇다 치고 처갓집이면 처갓집이지 처남집이 뭐꼬?”
“이 사람아, 장인장모가 계시는 집이 처갓집이고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큰 처남, 큰 처수씨가 사는 집이 처갓집이지 차남인 너거 집은 암만 나이가 들어도 처남 집 아이가?”
“그라면 우리 집에 올 때는 손우인 자영이 묵을 거고 뭐고 다 사오소. 올 때마다 국밥 간에 잘 자시고 가면서 처남집이 뭥교?”
하는데 열찬씨의 무릎을 꾹 눌리던 영순씨가 냉동실 문을 열고
“아주바님 좋아하는 고등어 몇 동가리 가져 가이소.”
강해순씨가 박스채로 선물한 포장고등어 여남은 개를 꺼내주니
“우리 처수씨는 음식도 맛있지만 이 고등어도 어데서 구하는지 참 맛이 좋아.”
하는 순간
“고등어사 내 말고 누가 더 잘 묵는다 말이고?”
금찬씨가 들어서서
“형님도 가실 때 가져 가이소.”
영순씨가 따로 몇 마리를 덜다 유심히 바라보는 순란씨를 보고
“아, 엄마 것도 따로 드릴 게.”
하는 순간
“나는?”
미혜씨가 웃으며 나서자
“언니 니는 부자 아이가?”
“그래 맞다. 내가 나중에 몇 상자 더 사오까?”
하다가
“그래도 저녁에 한 마리 꿉어도고. 나도 고등어 묵을 줄 안다.”
하는데
“당신은 안 일나고 뭐하노? 처갓집에서 자고 갈 끼가?”
“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 시방 처갓집이라고 했나?”
“그래 원하면 처갓집 하면 되지 뭐. 영주까지 처갓집이라고 갈 일도 아이고.”
고등어가 든 봉지를 들고 기분 좋게 일어났다.
손님을 보내고 나자
“보소. 당신 바깥 솥에 불 좀 피우소.”
“와?”
“당신의 부자 자영이 큰 선물을 했다.”
“뭔데?”
“생 족발 2만 원 어치.”
“응?”
“장날마다 생 족발이 나오는데 만원에 한 대여섯 개씩 주는데 그걸 고모부가 사다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수시로 먹는다 안 카나. 오늘 장에서 만난 고모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기 것 만원어치 사면서 당신 거 2만원어치를 사서 주더라 아이가?”
“야, 오래 살다 볼 일이네.”
“말은 안 하지만 우리가 와서 처갓집이라고 갈 데도 있고 밥 한 끼 때울 데도 있고 또 나이는 좀 어리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남이 농담을 슬슬 붙이며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거도 억시기 좋은 모양이라고 형님이 말하더라.”
“그런가? 고맙네. 아마 돌아가신 형님 포함 우리 3형제 중 자영이 족발 사준 사람은 나밖에 업겠네.”
하고 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피자
“가서방은 나오소. 아궁이에 불 때는 것은 소야사람 내가 전문 아이가?”
순란씨가 나서는데
“고모만 소야사람이가? 내가 함 때보면 안 되겠나? 나는 정말 텔레비전에서 이래 불 때는 거 보면 억수로 해보고 싶었거든.”
하고 미혜씨가 부지깽이를 잡고 마침맞게 열찬씨가 피워준 불에 마른 나무를 넣으며
“참 따시고 포근하다. 저승에도 이런 데가 있겠나?”
하고 소녀 같은 표정을 짓는데
“야야, 니 그 기 무슨 말이고? 고모 앞에서 할 말이가?”
다라이에 족발을 담고 영순씨와 같이 핏물을 빼던 순란씨가 발끈하는데
“그런데 부지깽이로 불을 피우면 와 자꾸 그런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날꼬? 옛날에 우리 엄마가 덩치가 커다란 사람이 이렇게 어깨를 숙이고 큰솥에 불을 때서 밥하던 생각이 안 나나?”
“언니야, 그런 생각 말고 재밌는 이야기나 하자. 언니 바가지 쓴 거.”
“뭐? 국밥 값 말이가? 그거사 내가 한 번 사면되지 뭐.”
“그 기 아이고 사돈 잘 만나서 오늘 점심 잘 묵는다고 언니는 남자도 안 시키는 만 삼천 원짜리 특탕 시켰다 아이가?”
“그래 기왕 시킬 판이면 간에 기별을 가도록 시켜야지.”
“하여간 언니는 간도 커. 남자인 시매씨도 8천원짜리 시키는데. 그래서 내가 속으로 배 큰 언니를 만나서 오늘 5천원 더 나간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지. 먼저 밥은 묵으러 가자고 해도 족발을 2만원어치나 사준 사람이 또 밥값을 낼 턱도 없고. 그래도 집에 가서 새삼 더운 밥 해 먹이는 거 보다는 그 기 낫겠다 싶어 말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언니가 돈을 냈어?”
“응 밥을 한참 먹다가 생각하니 남자도 8천 원짜리 보통으로 먹는데 여자인 내가 만 삼천 원짜리 특으로 먹는 기 좀 그렇기는 하데. 그래서 뭐 그렇지.”
하며 깔깔 웃다 족발을 앉힌 솥에서 김이 나자
“영순아. 도매하고 칼하고 랩 좀 가져 온나.”
솥에서 족발을 건져 다라이의 찬물에 담근 후에 다시 도마 위에 건져 올리던 미혜씨가
“이런 건 왕년에 고깃집 했던 내가 하지 누가 하겠노? 간만에 갑장제부한테 뭔가 좀 해주기도 하고.”
하며 아직도 김이 물씬 풍기는 족발을 먹기 좋게 썰더니
“영순아, 막장하고 마늘하고 소주 좀 가져오너라. 니는 이 좋은 안주 있으면 서방 생각이 안 나나?”
“아이구, 나는 원청 술에 디서 말이야.”
하면서 금방 챙겨 와서 소주까지 한잔 부어주며
“잡수시오오.”
웃다가
“엄마도 잡사볼랑교?”
“언제 안 묵을란다. 막내이 영아 놓고 젖이 안 나온다고 우리 엄마가 사다 고와주던데 맛도 없고 목에 넘어가지도 않아 너거 아부지만 소주 사다가 터분했다.”
하는 사이 미혜씨는
“보소, 갑장. 내가 이 족발을 요렇게 딱 넉 점씩 넣어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놓을 테니까 술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소주 한 반병씩만 마시소. 손님이 오면 두세 개 꺼내고.”
하면서 일일이 포장을 해서 세어보고
“전부 스물두 개네. 한두 달은 묵겠네.”
손을 탈탈 털더니
“야, 불 좀 더 때고 싶다. 영순아, 뭐 더 삶을 거 없나?”
“별로 없는데 시래기나 좀 삶아보까? 나중에 엄마랑 언니랑 좀 가져가게.”
해서 열찬씨가 다시 장작을 한 소쿠리 들고 온 뒤 솔잎 갈비를 아궁이에 넣고 후후 불어 불을 살린 뒤 물러서자 눈을 반짝이며 불앞에 앉은 미혜씨가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부지깽이로 옆의 장독대를 탕탕 두드리며 노래를 하더니 이내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도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바른 언덕에...”
본래 타고난 음치라며 이 나이가 되도록 노래 한 곡 제대로 끝까지 불러본 게 없다면서 절대로 노래방을 안 가던 사람이 무슨 노래를 다 하나 싶어 모두 들 멍하니 바라보는데
“야야, 니 노래가 와 그래 심란하노?”
순란씨의 말에
“그래 언니야, 차라리 송아지나 산토끼를 해라.”
하니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부지깽이를 탁탁 두드리며 노래하는 걸 보며
“야야, 니 그래 부지깽이 뚜드리는 기 영판 둘째 새이 너거 엄마다.”
“그렇제? 나도 나이 들수록 덩치 큰 거도 남편 좋아하는 거도 또 당뇨가 있고 일찍 병이 드는 거도 다 울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그래 딸 서이 중에 기중 많이 닮았지.”
“거기다 살만 하면 죽을 병 걸리는 거는 와 또 닮아서...”
“무슨 소리고? 너거 엄마 육십 아홉에 죽었으면 옛날사람치고는 제북 살았다 아이가?”
“나는 언자 육십 다섯인데 엄마만큼도 못 살고 말이야.”
“야야, 그 기 무신 소리고? 니 겉이 씩씩하게 병 잘 이기는 사람이 어딨는데?”
“그래 언니야. 마 다 괜찮을 기다.”
그렇게 삶은 시래기에 멸치와 된장을 넣고 끓여 저녁을 먹는데
“야, 우리 동생이 진짜 음식은 잘 하네. 생 무시, 생 배추 쌈 사묵는 거 하고 차원이 다르네.”
미혜씨의 말을 받아
“내 딸이기는 하지만 음식하나는 참 잘 하지.”
하던 순란씨가 열찬씨와 눈이 마주치자
“그래도 태산 같은 우리 가서방 안 만냈시면 우째 이래 갖추고 살겠노?”
급히 말머리를 돌리다
“참, 고모 오시라카지.”
하는 순간
“내가 너무 딱 맞게 왔네. 안 그래도 시래기 찌지는 구수한 냄새가 칼치못 우에 까지 진동해서 말이야.”
금찬씨까지 가세해서 가뜩이나 손이 큰 영순씨가 넉넉하게 지진 시래기된장을 기어이 다 먹어치웠다. 과일을 먹으면서 아홉시 십 분까지 주말연속극을 다 보고 금찬씨가 돌아가자 열찬씨는 서재로 들어가고 셋은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한참이 지나 열찬씨가 잠이 설핏 들었나 싶었는데
“욱!”
거실에서 무얼 올리는 소리가 나며
“언니야, 와 그라노? 어데 아푸나?”
영순씨가 다급하게 소리치는데
“괘안타. 시래기를 맛있게 묵은 기 얹칬는가?”
대답하던 미혜씨가 연속으로 욱,욱, 괴로운 소리를 내자
“영순아, 냉수에 매실즙 한 숟가락 타서 가 온너라.”
순란씨가 토닥토닥 두드리다 매실즙을 먹이자 차츰 가라앉아 다시 다들 잠이 들었는데 새벽 다섯 시경 다시 욱, 소리와 함께 안방이 소란해지더니
“안 되겠다. 날 새면 갈라캤디마는 응급실이라도 가봐야겠다.”
영순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것저것을 챙기더니
“처형이 갑자기 와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오는 열찬씨에게
“당신 아침은 알아서 잡수소. 냉장실에 당신 좋아하는 콩자반하고 명란젓 사다 논 거 있다.”
하고 서둘러 셋이 떠나버렸다.
(큰일인데. 암 환자는 통증오기 시작하면 안 된다는데...)
하며 곰곰 생각하던 열찬씨가
(일 년 산다 했는데 벌써 일 년이 훨씬 넘었네. 워낙 잘 먹고 갈 견디니까 조금은 더 살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 죽을 판인데
“당신 아침은 챙기 묵었소? 언니는 다시 부산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렇게 급한 것은 아니고 한 일주일 입원하면 많이 좋아질 거랍니다.”
영순씨의 전화가 왔다.
(아아 우리 처형이 마침내 떠나갈 모양이구나. 아직 창창한 나이에 그 먼 길을 떠나다니,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도 않고 만날 수도 없다니...)
같이 마음을 터놓고 지낸 지가 불과 십여 년. 그렇지만 나이 50이 넘어 세상살이를 좀 알게 되면서 그간 먹고사느라고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 소원해지고 새삼 낯선 사람을 사귀기도 망설여져서 늘 허전한 상태에서 문득 가까이 다가와 마주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편한 사람을 가까이 두고서 왜 늘 혼자라고 생각하며 외로움을 탔을까?)
하며 급격히 가까워진 사이였다. 사실 미혜씨와 남편 예소의씨는 마흔도 채 안 된 나이에 커다란 상가건물을 가지고 이제 아무 것도 않고 집세와 이자만으로 먹고사는 알부자로 소문이 나면서 20명 가까운 4촌들 간에 어딘가 건방지고 냉정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결혼식 같은 집안일에 만나도 서로가 소 닭 쳐다보듯 했다.
죽은 태자씨와 같은 사촌 남숙씨가 보기에 미혜씨는 6남매 중에서 비교적 잘 사는 쌀집의 딸로서 아무 걱정 없이 호의호식하며 자라 시집을 가자말자 떼돈을 벌어 새파란 나이에 놀고먹는 사람, 뭔가 마뜩찮고 괘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지목당한 미혜씨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은 왜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제 앞가림을 하고 살면 될 것을, 무엇이든 부지런히만 하면 먹고살고도 남는 이 좋은 시대에 왜 저리 궁상을 떨며 자들끼리 입을 맞추어 괜히 남을 손가락질하거나 흉을 보기에 열중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넉넉한 부모 밑에서 귀하게 자라면서 단 하루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진지하게 돈을 벌 생각도 없이 어영부영 살다 부모덕에 장가까지 들어 처자식을 거느린 처지가 되어서도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고 늘 허덕이다 부모가 죽자 누나인 자신을 만나기만 하면 손을 벌리는 세 남동생, 맏언니, 큰형부이면서 형제를 돌보기는커녕 무슨 일이 있어 자신이나 남편 예소의씨를 만나면 그날 먹고 마시는 경비일체를 떠맡기고 단돈 1원을 안 쓸 뿐더러 헤어질 시간이 되어도 미혜씨가 택시비를 주지 않으면 결코 집에 들어가지 않을 사람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큰 언니에 힐끗힐끗 눈치를 보면서 줄기차게 술만 마셔대는 형부에다 서울의 유명신문기자라는 말에 속아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 남편이 사기로 시도 때도 없이 경찰서를 들랑거리는 바람에 수차 목돈이 날아간 여동생 진미씨를 비롯한 자신의 5남매가 모조리 살려고 노력은 않고 힘들여 부자간 된 자신에게 손을 내밀다 주면 히히거리고 안 주면 저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해대는 일에 이력이 난 지라 같이 형제계를 하면서 가까이서 보니 하나같이 먹고살기에도 힘들고 생각하는 자체도 어리석거나 비굴한 것 같은 사촌들이 꼭 자신의 형제들만 같아 모임은 같이 하도 이런 저런 말을 섞지 않고 밥을 먹고 회비를 내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영순씨나 열찬씨도 처음엔 미혜씨와 예소의씨가 정말 그런 사람인줄 알았는데 같이 모임을 하다 보니 어쩌다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좀 퉁명스럽기는 해도 하나같이 경우에 맞을 뿐 아니라 손톱만큼이라도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 마음이 통한 데다 집이 같은 연산동이라 영순씨의 자동차로 연산로터리 집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차츰 가까워진 것이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면서 알기로 미혜씨가 남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거만한 사람도 아니고 단지 눈빛이 날카롭고 말이 퉁명스러울 뿐이지 사실은 아주 섬세하고 여성적인 감각을 가진 천성으로 타고난 여자였다. 특히 체격이 왜소한 남편 예소의씨에게 “만이아부지, 만이아부지!”를 연발하며 덩치에 맞지 않게 너무나 다소곳하고 복종적인 모습을 보인다든지 집안에 먼지 한 톨을 허용하지 않는 깨끗한 성격이 영순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형부 예소의씨는 만나면 그저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나 할 정도지 남이 말을 시키지 않는 한 말 한마디도 없이 조용하게 있다 모임에 참석을 하거나 돈을 써야할 경우가 되면 절대로 빠지는 일이 없이 빈틈없이 처리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이 너무나 신사적인 것이었다.
미혜씨 역시 덩치나 외모나 남편과 자식들까지 다 크게 빠지지 않는데다 양순한 성격으로 별 말없이 조용히 잘 따르는 영순씨가 살갑기도 했지만 당시 서예에 빠져있던 터라 시를 써 책을 내고 한문에도 능통한 동갑내기 제부가 또 그럴 수 없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예소의씨 역시 상냥하고 차분한 영순씨가 친 처제 이상으로 마음에 들어 가끔 회나 고기를 사며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재미를 붙였는데 영순씨네와 만나면서 유일한 불만이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적은 열찬씨가 아내 미혜씨와 갑장타령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 챈 영순씨가 예소의씨가 없는 자리에서 두 사람에게 말해 서로가 조심을 하자 어느 날은
“희한하다 두 사람이 인자 갑장소리를 안 하네. 내가 뭐라 칸다고 갑장이 아닌 것도 아닌데?”
평생 안 하는 유머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