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14)

설거지를 마친 열찬씨가 화단공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돌을 손수레로 실어 나르다 이상하게도 일손이 잡히지 않아 손을 놓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어딜 다치거나 동티가 나지.)

하고 데크 계단에 앉아 장화와 양말을 벗는데 쪼르려 달려온 마초가 장화를 입에 물려다 무거운지 한참이나 끙끙 거리다 양말 한 짝을 벗자 잽싸게 물고 내빼더니 금방 빈 입으로 돌아와 나머지 한 짝을 물고 갔다. 이제 제법 키가 커서 앞다리 둘을 나란히 뻗고 몸을 곧추 세운다든지 꼬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린다든지 강아지 꼴이 나는 지라

“우리 마초가 참 귀여운 강아지지?”

하고 영순씨에게 물으면

“나는 짐승을 안 좋아하지만 귀엽기는 해. 아니 못 난 구석이 하나도 없어.”

하는 반면 금찬씨는

“그 놈의 강생이 귀여우면 뭐 하노? 작다고 개장사도 안 가져가는 걸.”

하자 영순씨가 피식 웃더니

“그래도 어머니 보다는 낫네. 어머니는 용두산 비둘기를 보고 저것 참 묵을 것도 없겠다 하시더니 형님은 그래도 표현이 점잖네요.”

했다. 바야흐로 세상의 모든 냄새에 눈을 뜨고 그 중에서 밥을 챙겨주는 열찬씨의 냄새에 집착해서 열찬씨가 벗어놓은 양말, 장갑, 운동화, 모자 따위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아 늘 여기저기 엉뚱한 곳에 물어다 놓기도 했지만 일하다가 밭에 두고 온 모자를 얌전하게 방까지 물어다주기도 했다. 양말과 장갑을 물고 저 혼자 왔다갔다하던 마초가 심심한지 열찬씨의 얼굴을 쳐다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이번에는 옆구리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야가 와 이라노? 간지럽다.”

열찬이가 떼내려고 했지만 떼를 쓰듯 기어이 뒤로 집어넣은 머리를 앞쪽으로 빼내고 올려다보는 놈의 콧등을 탁 튕기면서

“가자!”

등산스틱을 집어 들자 신이 난 마초가 저 먼저 대문을 나가 어느 쪽으로 갈지 한참이나 기다리다 열찬씨가 스틱을 들어 도자기집쪽을 가리키자 재빨리 달려 나가다 뒤돌아 오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향나무그늘을 지나 또식씨 집앞 4거리에 이르러 유모차를 밀고 오는 노파 두 사람을 만나자

“할매 밭에 가능교? 두 동서 간에 사이도 참 좋심더.”

“아이고, 일식이 외삼촌 운동 가는가베.”

앞에 섰던 몸매도 넓고 얼굴이 넓은 노파가 고개를 들면서

“참 부지런해. 영판 모친을 닮았어.”

“예에! 우리 어머니를 알아요?”

“알다마다. 우리 젊을 때 복숭 이고 와서 우리 시어마시 방에서 자고가기도 했지.”

열찬씨의 트라우마에 가까운 괴로운 기억을 들고 나왔다. 몸피도 가늘고 키도 작은 할머니가

“형님. 마 옛날이바구는 안 하는 기 좋지요. 듣기 좋은 꽃노래도 아이고...”

열찬씨의 눈치를 살피는데

“내가 뭐 없던 이야기를 하는 거도 아이고. 모친이 참 부지런하고 경우 바르고 착했다는 이약을 할라카는데.”

눈을 한번 붉혀 단번에 제압하고

“일식이외삼촌은 많이 배운 사람이라 그런지 우째 누님하고 그래 다른고? 경로당에서 놀러갈 때 돈을 20만 원이나 냈다면서요?”

“아, 그거사 이사 온 인사 삼아서.”

“참 같은 탯줄에 난 성제간도 다 다르제? 일식이애미 50년 넘게 등말리 살아도 수박 한 덩거리 안 내던 거로...”

큰동서는 신이 나는데 작은 동서는 열찬씨 눈치를 보느라 사색이 되었다. 누님 집 바로 위에 나란히 밭을 부치는 동서 간으로 집은 길 아래 사광리에 있고 몇 년 전 각각 남편을 잃어 앞뒷집에서 서로 의지하고 산다고 했다. 그 큰할머니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서 하루는

“그 참 부산 새댁이가 살성도 희고 인물도 참한 기 시어마시가 후해서 아들이 복을 받는 기라.”

지나가는 영순씨를 보고 말을 거는지라

“할머니 지금 저 보고 이야기하셨어요? 우리 어머니 이야기예요?”

묻자

“하믄. 집에 시어마시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경우 바르고 착했다고.”

하면서

“그래 요새 시너부 시집 산다고 고생이 많지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예에?”

“지는 저거 시너부가 참 착하다고 자랑삼아 하는 말이 만날천날 동생 집에서 밥 묵고 커피 묵고 과일 묵고 잠자고 오는 이바구만 하이 그 기 지 정신 있는 사람이가?”
“...”

“그렇다고 지가 평생 넘한테 콩 한 쪼가리를 주는 사람도 아이고.”

뭔가 이상한 기미를 느낀 영순씨가 말을 않고 헤어져 그날 저녁 금찬씨를 만나

“형님 집 우에 농사짓는 큰 동새 할매말임더. 그 할매 잘 아능교?”

“와 니보고 뭐라 카더나? 혹시 내 욕은 안 하고?”

해서 영순씨가 그냥 웃자

“보나마나 내 욕 했을 기다. 그 할마시가 욕심도 많고 입이 험해서 내캉 적수다. 덩치가 작은 저거 동새 작은 할매는 점잔키만 한데 그 할마시는 덩치 값도 못 하고.”

“...”

“또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측량을 해서 자기 단감밭에 들어간 우리 땅은 줄 생각은 않고 우리 울타리 뒤의 땅은 기어이 다 받아서 울을 치고 말이야.”

“...”

눈치 빠른 영순씨가 더 이상 말을 않은 적이 있었다.

“보소. 일식이 삼촌! 요새도 누님이 날수금 집에 와서 밥 묵고 자고 가능교?”

“예. 누님이 동생집에 와서 밥 묵는 거야 뭐...”

“그 기 아이지. 형제간에도 서로 주고받고 경우가 있어야지. 보나마나 자기 집에서 밥 묵자는 소리는 평생에 안 할 거로.”

듣기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그냥 가버리기도 뭣해 등산스틱을 짚고 우두커니 섰는데

“요새 경노당에 오면 맨날 동생집에서 밥 묵고 과일 묵는다고 자랑이 늘어졌는데 자리만 뜨면 서발 줄 욕을 얻어먹는다 아이가.”

“와요?”

“평생 남 줄 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그렇게 나날이 동생 집에 밥 얻어묵는다는 이야기가 너이나 되는 자기 자식들에 며느리사우 욕믹이는 이야긴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요새는 며느리도 안사는 시집살이를 같이 늙어가는 환갑 넘은 월깨한테 시키고 말이야.”

“아, 예. 저는 바빠서 그만.”

괜히 마초를 스틱으로 쿡 찌르고 논길을 지나 도로를 건너 버스정류소에 앉은 열찬씨가

(그렇게 동네사람과 못 지내나? 하긴 아이 다섯 먹여 살리느라 공장 댕기고 농사짓고 이웃하고 노닥거리고 살 시간도 없었지만 또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하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뭔가 찜찜해

(암만 그래도 그렇게 까지나?)

하다

(아하, 그렇구나. 남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흙고물 묻을까 봐 바로 받아치우는 말투도 그렇고...)

하다 한 번 씩 경로당 이야기가 나오면

“그놈의 경로당 밥은 당최 맛이 없어 안 넘어간다.”

밑에 집 대산할매는 한글수업이나 웃음치료 등 교육이 있을 때마다 미리 경로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수업을 받는데 금찬씨는 꼭 열찬씨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급할 때는 영순씨의 자동차로 경로당에 가는 것이 이상해서 물어볼 때마다 음식타박이었다.

“그라면 솜씨 좋은 누님이 좀 해먹이지.”

“야야, 내가 미쳤나? 내 집 밥도 안 하는 사람이.”

“누가 하든 일단 밥은 묵어야 안 되나?”

“그럼 니는 굶고 살겠나?”

“그럼 누님도 여자니까 밥은 해야지. 우째 평생 넘이 한 밥을 얻어묵노?”

“일 없어. 내 정지출입 안 한지가 십년이 넘었는데 경로당 밥을 할까?”

“거게 노인네들 나이가 대충 얼만데?”

“평균 한 팔십은 넘지. 내보다 젊은 칠십 아래는 서이도 안 된다.”

“그라면 당연히 누님이 경로당 밥하고 청소할 나이네.”

“일 없다. 그래서 내가 경로당 밥 안 묵지.”

“밥은 안 먹어도 커피에 과일에 떡에 간식은 묵을 것 아이가?”

“그거사 주니까 묵지 어데 내가 줄라캤나?”

“그라지 말고 아아들 보고 과일이나 간식도 차례로 좀 사다주고 농사지으면 경로당에 쌀도 좀 기부하고 겨울철 난방 기름 값도 좀 내고 누님도 당당하게 점심밥 먹으면 되지.”

“무슨 소리고. 저거 아아들 공부시키기도 급한 아아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안 그래도 저거 아부지 죽고 내가 못 가르치고 살림도 못 내준 기 마음이 아픈데.”

“그건 자기사정이고. 넘이 우째 그걸 다 살피노? 그냥 누님 약봉지라카지.”

“그래서 주는 것만 묵지 달라고는 안 한다.”

“...”

“맛도 없는 밥 한 숟가락 얻어 묵을라꼬 찬물에 손 넣기도 싫고.”

“...”

그러고 보니 자기 집에는 맛이 있느니 마느니 거의 아침밥을 안 먹고 점심, 저녁을 열찬씨네 집에서 때우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아침 여덟시 경에 찾아온 금찬씨를

“형님, 아침은요?”

“집에서 한 숟가락 묵었다.”

하면서도 하도 시장기가 역력해

“보소. 오늘은 언간이 하고 좀 일찍 마치소.”

서재 문을 열고 다그쳐 컴퓨터를 끄고 나오면

“자, 형님 식사하입시더.”

하면 황급히 숟가락이 오고가다 문득

“잘 묵었다.”

하고 숟가락을 놓으면 영순씨가 커피 물을 올렸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밭에 가고 나면

“아마 어제 저녁도 안 묵거나 부실하고 오늘 아침도 귀찮아서 말고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너무 배가 고파 온 모양 같네.”

영순씨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흙이 잔뜩 묻은 발로 들어와

“올캐야, 밥 좀 도라. 속에서 꼴도랑 물 내러가는 소리가 난다.”

하고 식탁에 앉으면

“누님도 참! 밭은 누님 밭 매고 밥은 우리 밥 먹고.”

열찬씨가 웃으면

“니는 배았다 아이가? 시집오는 그날까지 늘 공장에 댕기거나 동생들 돌보다가 무식꾼한테 시집와서 못 사는 내가 배운 동생 집에서 밥 좀 묵으면 안 되나?”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마, 시끄럽다. 내 여게 아이면 밥 묵을 데 없는 줄 알고!”

화를 내고 나가버리는 지라

“당신 무슨 말로 그래 하요?”

“당신 보기 미안해서 안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이고.”

“마 내 핑계대지 마소.”

“그 기 아이라 내가 마음 묵고 누님한테 말 좀 하면 가로막고 나서지 좀 마라. 당신이 두둔하면 자기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 옳은 줄 안다 아이가?”

“그래도 불쌍하지 않소?”

“불쌍하기는 와 불쌍하노? 고래 등 같은 집이 없나? 자식이 너이에 장로가 하나에 집사가 서이라고 자랑이 얼마나 늘어지는데.”

“그래도 일단 자기 말로 우리 집에 하숙생이라고 하니 밥은 줘야지요.”

“하숙생은 무슨? 하숙비도 안내면서. 그냥 빈대 붙는 거지.”

“형제간에 빈대가 무슨 빈댕교?”

“그래 그건 내가 너무 심했다. 그렇지만 동생이라고 찾아오면 내 말은 듣는 시늉이라도 내야 되는데 자기 나오는 데로 말을 하니 말이지.”

“우짜겠능교? 시매씨 돌아가시고 20년 넘게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라...”

하다

“참 현주가 밥은 줄라나?”

“글케 말이다. 지가 암만 술 묵고 새벽에 들어와도 지 애미 밥이야 주겠지.”

하고 앉았는데

“현주 그 가시나 내 딸 아이다. 저거 아부지 박수진이 딸이다!”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개진 금찬씨가 들어오는데

“와요? 딸이 밥을 안 주덩교?”

“밥이 뭐꼬? 술 퍼묵고 잔다고 눈도 안 뜨더라.”

“알았심더. 어서 앉으소. 내 밥 차릴 께.”

“그래. 내가 참 속도 없제? 금방 다시는 안 볼 것 같이 나가서는.”

“형제간에 그런 기 어딨능교?”

“마 동생보기는 미안해도 배가 너무 고파서 말이다.”

“...”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