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세상】
1억 년 ‘자연사 박물관’ 반구천
글 = 윤현주 『인본세상』 편집위원
사진 = 백성욱 사진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5년 7월 울산 언양 반구천 암각화(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명문·암각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이곳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지인 몇과 나들이 삼아 반구천을 찾았다. 만추(晩秋). 부쩍 높아진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햇볕이 몸과 마음을 가뿐하게 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가우디의 말처럼 산과 산 사이 아홉 굽이를 이루며 수만 년, 아니 어쩌면 수천만 년의 비밀을 품은 채 묵묵히 흘러온 반구천.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먼저 들렀다. 향유고래 모습을 형상화한 박물관에서 암각화의 실물 모형을 보고 관람을 시작하는 게 반구천 탐방의 요령.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친절한 해설사가 상주한다. 해설사에 따르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 뒤 이곳을 찾는 탐방객이 최소 3배는 늘었다고. 박물관에서는 특별기획 ‘세계유산:우리가 사랑한 반구천의 암각화’ 전이 2026년 2월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반구천 상류의 천전리 명문·암각화(국보 제147호)를 보고 하천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천전리 명문·암각화는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를 거쳐 신라 때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캔버스’이다. 신석기의 구체 그림과 청동기의 기하학적 추상 그림, 그리고 신라의 글씨가 한 바위에 구획 지어 새겨져 있는 독특한 암각화이다. 하천 건너편에는 1억 년 전 전기 백악기 시대의 초식공룡 발자국 130여 개가 뚜렷이 남아 반구천의 지질·생태학적 가치를 웅숭깊게 한다.
반구천 옆 산길을 따라 반구마을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딘다. 1km 남짓 거리. 늦가을 적막 속에 돌올해진 계곡 물소리에 귀가 씻기고, 천변의 갈대와 억새의 하늘거림에 눈이 부시고, 머리 위로 어지러이 휘날리는 형형색색의 낙엽에 마음이 시리다. 여태 사람의 손을 안 탄 반구천은 원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돌도끼를 든 선사인이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올 듯한 환상에 빠진다.
반구마을 집청정(集淸亭)을 찾아간다. ‘맑음을 모으는 정자’라는 뜻의 집청정은 반구천의 과거와 현재를 집약한다. 1713년 운암 최신기가 세운 정자로, 수많은 시인 묵객의 창작과 소통의 공간이었다. 집청정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는 계곡과 맞은편 우뚝한 반구대의 풍광이 빼어나다. 1970, 71년 열혈청년 문명대 연구원(현 동국대 명예교수) 팀이 두 암각화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 정보와 숙식을 제공한 이가 바로 집청정 주인 최경환 씨(고인)였다. 지금은 그의 아들 최원석 씨와 이도경 씨 부부가 30년 가까이 살며 선조들의 옛 정신을 되살리는 데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예술가 부부는 암각화를 주제로 한 서각과 그림 등 작품 활동을 할 뿐만 아니라, 움집·선비·전통차·국궁 체험 등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집청정은 반구천 문화예술의 허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청정에서 주인장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다리품을 쉬었다가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만나러 간다. 1km 남짓 흙길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가는 길 왼쪽 암면(巖面)에 써진 ‘대곡리 연로개수기’라는 명문에 눈길이 간다. 1655년 2월 18일에 이루어진 연로(硯路, 벼룻길) 공사의 시주·화주·석수의 이름을 새겨놓았는데, 1655년 이전에 이미 이 길이 개설되었음을 입증한다. 반구천 일대는 최고급 벼룻돌 산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나무다리를 따라 형성된 자연제방과 동매산 자연습지를 거쳐 호젓한 대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금세 반구대 암각화 앞에 다다른다. 암각화 앞까지는 진입 금지. 대신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며 그림들을 찾아보지만, 사실 암각화박물관의 실물 모형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사연댐 건설로 수십 년 동안 물에 잠기기를 반복하다 보니 많이 훼손된 탓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유네스코와 약속한 대로 사연댐 제방 높이를 낮춰 더 이상 암각화가 침수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재 너머 한실마을의 ‘은행나무집’에 잠시 들렀다. 은행나무집은 동행한 백성욱 사진가의 별장이고 한실은 백 작가의 고향. 1965년 사연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향을 등지는 아픔을 겪었던 백 작가는 이후 초등학교 분교를 매입해 가정집으로 꾸몄다. 수구초심. 향수를 달래려는 속내였다. 14회를 맞이한 반구대산골영화제가 바로 은행나무집에서 태동했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마당에는 은행잎이 속절없이 쌓여 온통 노랑 세상이었다. 우리도 노랗게 익어갔다.
글 = 윤현주(편집위원 / 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사진 = 백성욱 사진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