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12)

다음 목요일 여보산악회의 애순씨로 부터 여자들끼리 따로 하는 연동회라는 모임에서 명촌집을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닭백숙을 하기로 하고 장터의 윤씨닭집에서 토종닭 세 마리를 사오게 하고 열찬씨는 미리 가시오가피와 엄나무, 뽕나무를 잘라다 야외에 걸린 솥에 불을 때어 약물을 빼는데 닭을 사온 영순씨가

“세 마리가 너무 많은 것 아냐? 여자들이 배가 그리 큰 것도 아니고 또 닭죽도 먹어야 되고.”

“아니야. 백숙이라면 역시 닭다린데 두 마리 고면 다리가 넷뿐이잖아?”

방문객이 여보산악회의 애순씨와 순기씨, 구서동 밭을 소개해주었던 사진관집 계순씨에 도화숙이라는 여장부의 넷이니 영순씨와 자신까지 여섯 식구에 여섯 개의 다리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물에 빠진 닭 잘 안 먹잖아?”

“그런 걱정 하지마. 금찬씨라는 계원이 있잖아?”

“형님이 올까?”

“지금 노인일자리사업 일하는 상북면노인회관에서 여기 못 와서 똥줄이 타고 있을 걸. 우짜면 부산손님보다 먼저 올 수도 있다.”

“그런가?”

“그 특별게스트는 닭다리 말고는 날개도 잘 안 먹잖아?”

“별난 누님 두셔서 좋겠소?”

“와 이라노? 평소에는 날 따돌리고 둘이서 잘도 놀면서?”

“그럼 고모 말고 이 골짝에 나랑 놀 사람이 어데 있소?”

하는데

“올캐야, 부산손님 왔나?”

금찬씨가 데크에 올라서는데 빵빵, 도자기집 앞 향나무그늘로 승용차하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오이소!“

열찬씨와 영순씨가 달려 나가자

다섯 명의 회원중에 유일한 싱글인 모화숙여사가

“안녕하세요?”

운전석 창밖으로 인사하자

“제부!”

“제부!”

해순씨와 순기씨가 반갑게 손을 흔들자

“제부!”

머뭇거리던 계순씨도 처음으로 제부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집이 참 예쁘네. 그리고 이 펜스 안이 전부 제부네 땅이요?”

“예. 그렇지요.”

“농사한번 원도 없이 짓겠네요. 구서동에서 그 놈의 밭 동가리 하나 때문에 유세를 떨고 괄세를 당하고 하다가 말입니다.”

“그렇지요 뭐.”

하는데

“제부!”

이번에는 순기씨가 자동차 트렁크를 열면서 짐을 꺼내는데 두루마리화장지가 두 뭉치, 밀감과 토마토가 한 상자, 사과와 한라봉이 든 봉지에 떡이 한 상자였다. 전에 한 번 와본 해순씨와 순기씨를 뺀 모화숙씨와 계순씨가 화장지뭉치 하나씩을 사고 나머지 과일은 곗돈으로 또 떡은 회장인 해순씨가 별도로 한 되 맞춘 것으로 짐작한 영순씨가

“왠 토마토는?”

묻자

“제부가 과일은 토마토만 먹는다면서. 당뇨에 좋다면서.”

하고 들어오던 해순씨가

“화단에 나무 두 그루만 심어도 훨씬 태가 나네.”

하며 뒷집 기연씨에게 얻어 심은 키 큰 편백나무를 가리키는데

“우리 제부 능력 있네. 정석이엄마가 이렇게 부자인 줄 몰랐네.”

덩치도 크고 얼굴도 시원시원하게 생긴 도화숙씨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이렇게 다 갖춘 사람인 줄 모르고 내가...”

새삼 미안한 표정으로 열찬씨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부잣집의 막내딸로 귀하게 자란 도화숙씨는 경찰관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키우며 아무 모자람도 없이 연동국민학교자모회의 한 멤버로 내로라고 살았는데 40대 초반에 갑자기 남편이 간암으로 죽어버리자 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거느린 가장이 되어버렸다.

대범하고 활달한 성격이라 금방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녀는 남편의 퇴직금 외에도 전부터 상당한 저축이 있어 집장사를 하려고 부동산중계소에 들락거리다 마침내 얼굴이 멀쩡하고 말주변이 좋은 중계사에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식으로 참담한 배신을 맛보고 카페를 경영하다 손님이 있을 때는 치근대는 남자들 때문에, 없을 때는 사람이 그립고 쓸쓸하다는 생각보다 당장 혼자 있기가 무서워 비로소 인생살이가 서글프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한동안 쉬는 동안 열찬씨와 아래위층에 세를 사는 병민이엄마 강수정씨의 권유로 병민이아빠의 고향인 충북 옥천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마침 주말이라 영순씨와 열찬씨도 자연스레 동행하게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아직 조그만 고물상을 하면서 자금이 달리면 열찬씨의 가계수표까지 빌려 쓸 정도의 병민이아빠는 1톤짜리 봉고트럭뿐이어서 부자가 망해도 3년이라고 당시에 제법 알아주던 프라이드승용차를 도화숙씨와 병민이 아빠가 차례로 몰아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도담삼봉을 돌아 옥천의 어느 산골마을에 도착, 병민이아빠 고향사람의 집에 자며 토종닭을 삶아먹고 돌아올 때는 금강을 따라 강경으로 내려가 서해안 한 바퀴를 빙 돌아오면서

“정석이아빠는 아무리 쳐다봐도 잘난 구석이 없어. 저 대충 생긴데다 친절하지도 않고 섬세하지도 않은 사람과 영순씨는 뭣 때문에 결혼한 걸까?”

“뭐 사람이 별 거 있나? 같은 집에 살아보니 마음하나는 진국이야.”

어느 휴게소화장실 앞에서 주고받는 것을 영순씨가 나오나 찾아오던 열찬씨가 듣는 바람에

“에그머니나!”

하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 했다. 그러고 세월이 한참 흘러 어느 구청에서 방위병으로 전입하는 도화숙씨의 둘째아들이 회계학을 전공하며 회계사를 꿈꾸던 청년이라 마침 구청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열찬씨가 떠올라 영순씨에게 복무 중에 단지 책이라도 좀 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물은 적이 있었다. 마침 그 구청의 방위병업무를 담당하는 시민과장이 동기생인 열찬씨가 전화를 해서 마침 한 자리가 비어있는 재무과 경리계 회계보조 자리에 넣어준 일이 있었다.

“야, 그 시큼털털 농촌스럽게 생긴 영순씨신랑이 그렇게도 끗발이 좋은 사람인줄 몰랐네!”

황소처럼 씨익 웃으며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찾아왔는데 1년쯤 지난 뒤

“홍여사, 이 은혜를 다 우째 갚을꼬? 너거 신랑 덕에 우리아들이 회계사에 붙었다.”

전화에 대고 감격에 겨워 흐느끼는 도화숙씨에게

“은혜라니?”

“글쎄 구청 경리계가 회계사시험공부하기에는 학원보다 몇 배 낫더라 안 카나? 일반 지출행위는 물론 예산의 확보와 의회의 승인절차 또 지출결산에 회계심사에 이르기까지 실습을 안 해본 일이 없었다는데.”

하자

“야, 당신 능력 있네. 도화숙이 둘째 회계사 붙었단다.”

“그래 잘 됐네. 내 그럴 줄 알았지.”

“어떻게. 자기 과장한테 그 애 근무 잘 하는가 물어보니 일도 열심히 잘 할 뿐더러 배우려는 의욕이 대단하고 또 사무실 사람들 하고도 잘 지낸다고 말이야. 암튼 희망이 보이는 아이라고 칭찬이 대단했어.”

하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는데 며칠 뒤 어디서 곰탕용 쇠고기꼬리를 한 상자 사들고 인사를 온 화숙씨가

“고맙습니다. 절대강자를 몰라보고 실언을 해서.”

하고 사내처럼 껄껄 웃으며 술잔을 채워주더니 명절마다 소꼬리를 사오는 걸 이러면 친구도 아니고 자주 얼굴 보기도 힘들다며 영순씨가 사양한 일도 있었다.

“명예로운 정년퇴직에 훈장과 연금에 글을 쓰서 책을 내고 별장도 짓고...”

화숙씨가 커다랗게 소리치며 열찬씨를 추켜세우다

“서당개 3년이라고 공사 제대로 했는지 기왕 온 거 집이나 구경할까?”

새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부동산에 카페에 하는 족족 실패를 거듭한 화숙씨가 어느 날 건축현장에서 커다란 대야에 모래나 자갈, 심지어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콘크리트를 가득 이고 다니는 여자인부들을 보다

“아줌마, 그거 내가 한 번 여보면 안 될까요?”

“아이구, 옷 베릴라. 뭐 노가다는 아무나 하는 줄 알고.”

하는 아줌마를 제끼고

“영차!”

단번에 머리위로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아줌마, 여자요, 남자요? 곱상하게 생겨서 덩치 값은 하네.”

하는 소리를 듣고 곧장 공사판에 뛰어들었다. 힘도 좋고 성격도 화통한데다 승용차까지 몰고 다니는 사모님인부에 대해서 짓궂은 노가다사장들이 치근거려도

“우리 시동생이 경찰서장이야. 함부로 덤비면 다친다.”

하고 웃으며 시원시원 잘도 넘어가 나름대로 배려를 해준다는 것이 대야를 이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대신 자재를 부어놓은 좁은 도로에 서서 지나가는 차량들에 수신호를 하는 일로 바뀌면서 성격 좋고 힘 좋은 여장부라고 소문까지 나면서 차츰 아파트나 상가빌딩 등 공사규모도 크고 4대 보험이 다 되는 공사장에 출입하자

“아줌마는 힘이 좋아 도배를 하거나 유리를 닦거나 청소를 하거나 뭘 해도 다 잘 할 테니 인자 다라이는 졸업을 하소.”

“아이요. 나는 아랫배에 힘 한번 딱 주고 다라이 들어 올려 사다리 올라가는 것이 딱 체질이요.”

“그래도 사람이 인품이 있지. 척 봐도 다라이 일 사람은 아니야.”

하며 여러 사내들의 호의로 마침내 해운대에 짓는 수십 층 대형빌딩의 건축현장에서 엘리베이터로 실어 올리는 사람이나 짐을 검색하는 최고급의 노동에 종사할 정도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이었다. 이제는 장남은 농구심판으로 차남은, 회계사로 남부럽지 않게 살며 어머니에게 더 일 할 필요도 없게 용돈과 생활비를 준다 해도

“내가 아직 힘이 펄펄한데 왜 자식신세를 지노? 그라고 노가다판에서 땀을 한번 흘리고 시원하게 샤워하는 재미로 내가 산다 아이가?”

하며 거부했다.

이리저리 주방을 돌아보던 화숙씨가

“영순씨, 이 싱크대와 찬장이 와 이러노?”

“왜? 우리 시누이아들이 건축업잔데 좋은 것 넣는다고 추가경비까지를 줬는데.”

“허허 참, 수, 우. 미, 양, 가 다섯 등급이 있다면 겨우 양이야.”

“그래? 웃돈 더 안 주었다면 가 등급으로 넣을 뻔 했네.”

혀를 끌끌 차며 화장실 문을 열더니

“아이구야! 요즘도 이런 변기가 나오나?”

“와, 또?”

“이거 단종 된 변기다. 재고처리 잘 했구먼.”

혀를 끌끌 차더니 미장도 타일도 다 날림공사네. 이기 어데 기술자가 한 공사 맞나? 발로 한 거도 아이고...“

하고 문을 다고 나오며

“아는 놈이 더 무섭다고 아무리 조카라도 노가다 말 믿으면 안 된다 안 카나?”

하는 순간

“아이구, 형님!”

얼굴이 홍당무가 된 영순씨가 입술에 X자를 그리는데

“손님들 오싰는가베.”

“야.”

한참이나 얼굴을 바라보다 못 들은 것 같아 안심을 하며

“언니들, 우리 애들 고모님.”

“안녕하세요?”

“왔는가베요?”

인사들 하고 천연스럽게 상에 둘러앉으며

“닭 고나? 들어오니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

“예. 궁금해서 이제까지 우째 참았능교?”

“안 그래도 올캐집에 손님 오는가 하고 몇 번이나 바라보이 좀 전에 낯선 차 대놔서 왔다 아이가?”

“동생이 가까이 이사 오니 좋지요?”

“좋고말고! 날마다 마당에 우리 올캐 차 있는가만 쳐다보며 살지요?”

“올캐가 그래 살갑고 좋은 가요?”

“그 기 아이고 우리 올캐가 있어야 밥이고 과일이고 커피고 얻어 묵을 기 있지. 또 심심하기도 하고.”

하면서 영순씨가 들고 온 백숙의 다리를 하나 부욱 찢어

“야, 이기 손님 덕인지, 동생 덕인지, 올캐 덕인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맛만 좋네.”

부지런히 뜯어 살코기를 발라먹고

“올캐야, 나는 죽 조라.”

하고 닭죽을 한 그릇 비우고 숟갈을 내려놓았다.

“아, 그 다른 사람과 같이 천천히 좀 드소.”

“아, 배부르면 그만이지.”

“그래도 사람이 우째 맛있는 것만 쏙 빼묵고 숟가락을 놓능교? 날개도 먹고 가슴살도 먹고 고루고루 먹어야지.”

“나는 날감지 살 싫다. 궁디살은 터벅거리고.”

“허허, 그 참!”

열찬씨의 탄식에 모두들 손을 놓고 한참이나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동생 니 겉으면 맛없는 기 넘어가나?”

하고

“올캐야, 그 과일이나 좀 깎아 봐라. 요즘 이 귀한 한라봉에 메롱까지 다 사왔네.”

천하태평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여럿이 붙어 재빨리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상을 차려 과일을 깎아 커피까지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눈치를 살펴도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없어 애순씨의 눈짓신호를 받은 영순씨가

“형님, 이건 해순이언니가 사온 고등어염장세트인데 형님 가지고 가소.”

하고 금찬씨가 제일 좋아하는 낱개로 포장된 고등어 살 여남은 개를 봉투에 담아 건네주자

“거게 놔나라. 갈 때 가져가지.”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없어

“누님은 마 일나소. 내 하고 무시나 솎으러 갑시다.”

“혼자 하라 뭐. 나도 오랜만에 남의 이야기 좀 들어보자.”

절대로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하하호호, 남이 웃을 때마다 다 따라 웃으며 미적거리다 기어이 좀 이른 저녁을 먹고 손님들이 일어나자

“조심해서 가이소. 자주 놀러 오이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보였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